° 저의 집은 고아원입니다
보미와 우진이가 있던 고아원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게 큰 고아원이었다. 갓난아기인 영아부터 시작해서 대학생까지 있었고, 직원들까지 포함해서 백삼십 명쯤 되는 큰 보육원이었다.
고아원 내에 있는 각 집들은 사랑의 집, 은혜의 집, 믿음의 집, 소망의 집, 베다니의 집, 에스더집 등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로 정해져 있었고, 각 집에는 유아부터 성인까지 12~13명씩 살았다.
고아원인 영·육아원은 완전 고아들만 있는 것이 아닌 엄마, 아빠가 있어도 부양할 능력이 없으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보미처럼 한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와 만나기도 한다.
보미는 처음에 사랑의 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오던 날 들어가 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큰 언니들은 다섯 명쯤 있었고 유아는 애리 언니와 보미 그리고 지민이 지홍이 남매가 있었다.
애리 언니는 하얀 피부에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유리 느낌의 꼬마였다. 착한 애리 언니는 마음이 여리고 약해서 매번 지민이 지홍이 남매에게 당하기만 했다.
애리언니도 남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집에 살고 있었고 성질도 고약하지 않아서 지민이 지홍이 남매와 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그와 반대로 지민이 지홍이 남매는 심술보가 가득한 볼살부터 남달랐다.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아서 무엇이든 힘으로 빼앗으려 했고 안되면 드러누워 발길질을 하던 막무가내였다. 하얀 피부와 빵빵한 볼살들 속에 실핏줄이 보여서 딱 봐도 고집이 쎄 보였다.
보미가 그 꼴을 보면 애리언니 대신 싸워주었다. 보미가 대신 싸우면 말로 싸우다 못해 꼬집고 깨물어서 피가 나는 일이 수십 번이었다.
다행히도 애리 언니는 보육원에 오래 살지 않았다. 아마 부양자가 데려갔을 테지.
지민이와는 잘 지낼 때도 있었지만 심심하면 싸우고 울었다.
보미는 뭐라도 뺏기지 않으려 싸우다 보니 꼬집는 방법도 터득했는데, 오죽하면 고아원에서 '왕 모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한 날은 지민이와 싸우다가 엄마가 없다고 놀리는 것이다.
"이보미는 엄마 없대요~ 엄마 없대요~"
화가 난 보미는 받아쳤다.
"배지민은 아빠 없대요~ 아빠 없대요~"
어린 보미와 지민이는 서로 없는 것을 상처 주려고 놀렸다.
지민이는 엄마가 있어서 좋은 거고, 보미는 아빠가 있어서 좋은 건데 결국 둘 다 상처만 받고 울면서 끝이 났다.
지기 싫은 어린아이들의 오기였을지 모르겠다.
여자들만 살던 사랑의 집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다. 남동생 우진이가 영아들만 있던 영아원에서 나오면서 본관을 거쳐 함께 에스더의 집으로 왔다.
에스더의 집에서는 우진이를 지키려 얼마나 대들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여자는 때리지 않던 오빠였기에 안 맞을 수 있었지만 우선 우진이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 오빠들도 본능에서 제대로 된 사회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아이 었기에 스스로 배워가야 했다.
어느덧 보미는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한 학년에 두 개의 반만 있던 작은 학교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덕분에 고아원에 사는 것이 이상하다고 전혀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는 어느 집이고 등교를 하기 위해 나오면 학교를 가는 누군가가 있어서 항상 누군가는 함께하던 등굣길이었다.
국민학교를 가는 길에는 1km 정도 둘레의 연못이 있다. 작은 송사리와 새우부터 거북이와 큰 물고기들도 많이 있었다. 엄청 깊지는 않았지만 작은 우리들에게는 빠지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무서웠다.
그래도 겨울이면 꽁꽁 얼어서 연못 위로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두껍게 언 부분도 있었지만, 얇은 부분도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데 어린 우리들은 재미가 우선이었다.
얼음 위로 가다가 갈라지는 소리에 멈추어서 얼음 두께가 굵은 쪽으로 슬금슬금 나오기도 하고, 무작정 뛰어서 탈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빠지기도 했는데 빠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아이들이 빠질 때야 웃고 넘길 수 있었지만, 우진이가 빠지던 날에는 예외였다. 이렇게 추운데 빠져서 어떻게 하나...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잔소리를 퍼부었는지 귀가 따가웠을 것이다.
우진이에게는 그렇게 잔소리를 했으면서 보미도 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춥지 않은 여름이었을 뿐.
연못을 둘러싸고 있던 쓰레기통은 항상 무기를 정비하는 국민학생들에게 사정없이 털렸다. 허구한 날 송사리나 새우를 잡으려 연못에 손 담그는 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매번 키우겠다며 잡아가도 삼일을 못 넘기고 죽어버려서 슬펐다.
어느 날은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혼자서 연못에 손을 담갔다.
큰 계단식으로 쌓아있는 바위를 밟고 내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연못에 손을 넣었다.
튀는 듯한 새우의 움직임은 봐도 봐도 신기했고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없는 것도 신기했다. 그래서 항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못에 있는다.
종이컵을 쥐고 작은 송사리와 새우를 따라가다가 반대 방향으로 휙 들어 올리면 그것 또한 복불복이었다. 송사리의 움직임보다 빨라야 성공할 수 있었는데, 매일같이 잡다 보니 터득한 노하우였다.
그날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아무도 없는 연못에 혼자서 송사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가 풍덩 갑자기 빠져버렸다. 그 깊이도 가늠할 수 없던 연못에 다행히 수도관이 있어서 밟고 올라올 수 있었다.
고개를 너무 숙여서였을까?
체중이 한쪽으로 치우쳐서였을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빠졌는데, 그 짧은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장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리고 빠지면 물속에 가라앉아서 내 존재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무서웠다.
세차게 뛰는 심장은 보육원까지 걸어가는 내내 진정되지 않았고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하.
들어가지 않겠다가 아닌 더 조심하겠다는 게 너무 웃기다. 더 혼쭐이 나야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