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되던 어느 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던 그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물감 쪼가리들을 끌어모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라는 인간이 너무 무쓸모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으니깐.
사람을 잘 믿었던 게 문제였을까?
모든 걸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만 본 게 문제였나?
세상이 주는 회초리는 아프고 힘겹기만 했다.
그러나 나의 본능은 여전히 긍정의 힘을 믿었고,그 많고 많은 소재중 어느새 커다란 해바라기를 눈앞에 그리고 있었다.
현실은 절망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희망을, 긍정의 빛을 찾고 싶었나 보다.
숨통이 조금 트였다.
미대 졸업 후 25년이 지나는 동안 내 그림은 그린적이 별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감각이묻어뒀던 예전 느낌들이 천천히 다시 살아났다.
무엇보다 그리는 동안만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고, 심장속 울렁거림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말해주는것 같았다. 그날부터 그렇게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