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삶에 있어 최악의 순간들은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다. 가슴이 아프고 후회가 남는 추억들은 굳이 꺼내어 맞닥뜨리는 것보다 마음 속 수면 저 깊은 곳에 가만히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단 이 상자에는 일과 관련된 추억들만을 한정적으로 담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무방비 상태로 당한 사고와 같이 삶의 의지까지 뒤흔들었던 추억들을 이 상자에 담아서는 안 된다.
이 상자의 목적은 일에 있어 최악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직장 생활의 고비들을 넘길 동력을 얻는 데 있으므로 철저하게 일과 관련된 추억들만을 골라 담아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 저질렀던 터무니없는 실수, 자존감을 마구 갉아먹었던 상사의 인신공격, 이직에 대한 잘못된 선택, 철석같이 믿었던 후배의 배신 등 유형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나의 직장 생활을 몹시 힘들게 했던 추억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여 최악의 추억 상자에 넣어야 한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네
똑같은 실수를 하면 안되겠네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겠어
상자 속 최악의 추억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픔을 상기시킬 수도 있지만 그를 뛰어넘는 위로와 용기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지혜를 전해줄 것이다.
요즘도 나는 진상 상사가 납득하기 힘든 행태를 보일 때마다 일기를 쓰곤 한다. 증거 수집을 위해 기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
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나열하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과 감정을 기재하다 보면 이런 어려움을 버텨 낸 내가 얼마나 굳센 사람인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으로 대항이 가능할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최악의 추억 상자는 무형의 추억을 유형의 물질로 바꿔 담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후회와 아픔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를 성찰하고 상자 속에 모아 간직할 때, 그리고 위기의 순간 마법주머니를 열어보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상자 속 추억에 조언을 구할 때 우리는 직장 생활을 보다 수월하게 헤쳐나갈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