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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45주. 머드(2012)

2020. 05. 24 by 만정

··· 온 인생을 한 여자한테 바쳐서, 그 결과로 지금 은둔자가 되어 버린, 인생을 사랑의 불쏘시개로 써버린, 그런 사람인 거예요. ···

                                                                 - FMzine 에프엠진, 김혜리의 수요재개봉관, 2015년 12월 15일     


내 독서 인생에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최근 5~6년 간 내 영화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김혜리 기자라고 할 수 있다. 김혜리 기자는 내게 실로 엄청난 영업을 했다. 그녀는 나와 결도, 영화 취향도, 영화 외 취향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권하는 영화를 많이도 봤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떤 말들은 내 뇌나 심장 어디쯤엔가 착 달라붙었고 심한 경우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로부터 받은 영향이라는 것은 어쩌면 영화 이상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사랑의 불쏘시개로 써버린”이라는 말이 그중 하나다. 내게 달라붙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게다가 영화 ‘머드’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머드. 인생을 사랑의 불쏘시개로 써버린 인간들에 관한 영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열네 살 소년 엘리스는 미시시피 강가에 산다. 절친 넥본과 또래 소년다운 모험놀이를 하던 어느 날, 머드와 조우한다. 머드는 사랑하는 여자 주니퍼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중인 남자로, 엘리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엘리스는 그들을 돕는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돕는 또 한 사람, 엘리스의 이웃집 할아버지. 그가 바로 이 글 첫 인용구의 주인공이다. 온 인생을 한 여자에게 바쳐서 은둔자가 된 할아버지, 한 여자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중인 남자 머드, 막 사랑에 빠져 사랑이 곧 진이자 선이자 미인 소년 엘리스. 그러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랑이라면 죽고 못 사는,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랑 지상주의자 삼대에 대한 극도로 로맨틱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다르다. 나는 사랑이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종류의 사람이다. 나는 전혀 낭만적이지도, 사랑스럽지도, 사랑이 많지도 않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다시피 한, 전형적인 나만 아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런 나는 아마도 지금까지 딱 한 사람을 사랑했는데, 그것은 찬란하고 경이롭고 강렬했고, 고통과 슬픔도 그만큼 컸다.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고, 또 내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다. 물론 나를 은둔자로 만든 것도, 더구나 살인자로 만든 것도 아니다. 그저 십 년이 갔다. 그사이 함께 살기를, 함께 아이를 갖기를, 결혼할 기회와 아이를 가질 기회를 하나씩 포기했다. 헤어질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마음의 저울을 달아보면 늘 그 사람 무게가 무거웠다. 그 결정엔 아슬아슬함이 없었다. 늘 이대로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났고,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게 나의 한결 같은 대답이었다.


대단한 희생이었고, 후회한다는 말 같은 걸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늘 내년엔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결과적으로) 그릇된 희망을 품고 있었고, 그 내년이 이렇게까지 오지 않을 줄을, 시작할 때 몰랐을 따름이다. 솔직히,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나중에 혼자 사는 삶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을 북돋웠다. 그 결정이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짐 지워질 줄 몰랐거나, 알면서도 무시했다. 나는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사랑하고 있으니까. 좋은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청춘 정도는 불쏘시개로 기꺼이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옳은 결정은 어디에 있을까. 결정의 기준이 옳고 그름만은 아님을 몰라서 묻는 질문은 아니다. 감당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지금 내 몸이 말하는 답은 다르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을 해왔다고 한다.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내 자유다. 다만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그러니 그만두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이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아직 산정된 바 없으며, 얼마나 비쌀지 앞서 예측하기 어렵다. 수백 번 마주한 질문이 다시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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