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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채용공고가 1년 내내 뜨는 학원

by anchovy

구인이나 구직을 위해 학원 관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훈장ㅇㅇ이라는 곳인데 자주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내가 일했던 학원이 어찌 굴러가나 염탐(?) 하기 위해 지금도 가끔씩 들러보곤 한다. 그렇게 눈팅을 하다 보면 1년 내내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학원을 보게 되는데 그렇게 자주 채용공고를 올리는 이유를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대형학원의 경우를 얘기해보자면 학생 수가 많은 만큼 선생의 인원도 많아진다. 30명 이상의 선생이 있는 학원에서 강사들이 이직하는 시기에 따라 채용공고를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1년 내내 채용광고를 내게 된다. 또 강사라는 직업은 일반 회사와 달리 당장 그만둔다고 통보하더라도 대체인원이 없다면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인지라 미리 충원 가능한 좋은 인력을 면접을 통해 준비해두기도 한다. 그러니 무조건 채용공고 많이 나온다고 이상한 곳이라고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형학원이 아닌 소규모 학원임에도 너무 자주 채용공고가 뜬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내 경험상 학원 경영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강사들이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곳에서는 월급 미지급에 따른 강사의 이탈이었다. 내가 면접을 봤던 시기는 중간고사 대비를 시작할 즈음이었는데 면접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주부터 당장 출근하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제시한 연봉이 작은 편도 아니었는데 바로 채용이 결정되니 좀 얼떨떨했다. 하지만 뭐 잘 된 일이라고 좋아했던 것 같다.


첫 출근 후, 뭔가 싸늘한 분위기.

5층 건물을 모두 사용하는 대형학원이라 선생님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처음 온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말 한마디 걸어주지 않았다. 텃세라도 부리나 생각도 해 보았는데 이 싸늘한 분위기의 이유를 설명해줄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지고 말았다. 옆 옆 자리 앉아있던 영재 담당 선생님께서 출근하자마자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짐을 후다닥 싸더니 홀연히 밖으로 사라졌고 그 날 그 선생님의 수업은 다른 선생님들이 땜빵을 해야 했다. 그때까지도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땜방으로 들어간 수업에서 학생을 통해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 이번 달만 해도 3번이나 영재과학 선생님 바뀌었어요. 학원 망하려나."


으잉. 이게 뭔 소리?

이 얘기를 듣고 나를 채용했던 부원장에게 문자를 해보았지만 이미 그는 학원을 그만둔 상태였고 답장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 학원은 망해가는 중이었고 난 이 가라앉는 배에 타게 된 거지. 3달 정도 지나 학원은 폐업을 하게 되었고, 학생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다른 학원으로 강사들까지 팔려가게 되었다. 새롭게 고용승계를 받은 학원에 원장은 우리의 월급에 대해 기존 금액을 맞춰줄 수 없으니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물론 나는 그곳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했고 훈장ㅇㅇ을 통해 다른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내 학원 경력의 흑역사 중 하나가 되었지. 학원이 많은 만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학원도 많고 그에 따라 수많은 피해자가 생긴다. 학원 경영을 시작하려는 분이 있다면 꼭 많이 알아보고 준비해서 절대 절대 망하지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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