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부기 아빠 Oct 09. 2022

아내를 위한 밥상 - 미안, 낚지볶음

미안, 낙지볶음

(2022년 9월 29일 저녁식사)


  오늘은 아내가 지난 주말 처가댁에서 받아온 연어를 구워달라고 했다. 나는 연어를 먹지 않는다. 큰 이유는 없고 딱히 내켜하는 맛이 아니라서 잘 손이 안 간다. 가끔 뷔페에서 연어 훈제 구이가 나오면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주로 안 먹긴 하지만, 어쨌든 연어를 거의 안 먹는 것과 다름없다. 반대로 아내는 연어를 매우 좋아한다. 연어회, 연어구이 등 연어를 잡아먹는 곰만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안 먹지만 종종 아내에게 연어회를 사다 주거나 연어구이를 해달라고 하면 해준다. 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오늘따라 퇴근하며 매우 피곤했다. 월말이라 일이 몰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 피곤했다. 집에 도착 후 저녁 먹은 아이를 씻기고 연어를 구우려고 하니 어딘가 모르게 하기 싫은 마음이 많이 올라왔다. 대충 저녁을 차려먹고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낮에 연어를 흔쾌히 구워준다고 하였기에 쉽게 안 하겠다고 말하기도 뭐해서 미적대며 연어 요리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툴툴대는 말투로 연어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놓아 달라고 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말투와 몸짓들이 하기 싫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내가 이것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한 소리 하였다. 그러고는 본인이 하겠다며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요즘 아내를 위해 저녁을 요리해준다고 하면서 내심 생색내는 마음들과 무의식적으로 으스대는 행동들이 빈번해졌다.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는 것은 음식을 주문했을 때 결과물인 음식만 딱 식탁에 차려놓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음식을 만들고 차려서 대접하는 모든 과정임에도 그것을 잠시 잊고 식탁에 음식을 딱 차려놓고 '내가 이만큼이나 해줬다'라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며 생색내고 있었다. 아내 또한 그러한 나의 모습을 인지하고 얼마큼이나 참다가 오늘에야 한 소리 한 것이었다. 매우 부끄러웠다. 안 해주느니만 못하게 수고는 수고대로 하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했고, 또 무슨 큰일을 했다고 교만하게 있던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후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연어 구이를 준비하는 아내와 이러한 속마음들을 이야기하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 간에 속상했던 점을 어느 정도 함께 돌아보았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아내가 준비해서 차려먹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아내의 비명소리!


  '연어가 상했다'

냉장고에 3일 정도 방치하니... 연어가 상했다

  한 3일 정도 냉장고에 두었던 것 같은데, 그 새 상했다. 곰들은 바로 먹으니 상할일이 없겠지만, 냉장고를 과신하고 천천히 먹으려 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문제는 기껏 손질해놓은 채소들이 너무나도 덩그러니 도마에 놓여있었다.


연어구이를 위한 채소 손질


  나가서 집 앞 마트에서 연어를 사 올까, 아니면 다른 고기라도 사 와서 찹스테이크라도 해 먹을까 고민을 했다. 집 앞 마트에 연어가 있을지도 불확실할뿐더러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어서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고민하다 보니 냉동실에 조리된 낙지볶음이 있는 것이 기억났다. 채소를 잘 볶고 낙지 볶음과 함께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의 요리는 '미안, 낙지볶음'!!



<재료 준비>

- 연어

- 피망 1개

- 양파 1개

- 청양고추 1개(UU)

- 상추(UU)

- 아스파라거스

- (조리된) 낙지볶음

- 돌김



<시작>

1) 냉동실에서 꺼낸 레토르트 낙지볶음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녹인다.



2) 낚지와 김은 함께 먹으면 참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마침 집에 굽지 않은 돌김이 있어서 두 어장 기름 없이 구웠다.



3) 아내가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를 구워보자!



3-1) 소금 간을 하며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4) (아내가) 손질해놓은 피망, 양파를 적당히 볶는다.



5) 해동된 낙지볶음 투하!



6) 한 10분가량 센 불에서 잘 저으며 볶는다.



7) 아내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스파라거스에 치즈를 갈아서 올려준다.



8) 맛있는 낙지볶음 완성!



9) 예쁘게 접시에 담아서 올리면 끝!



* 볶음밥 추가요!

10) 낙지볶음만 먼저 김과 상추로 싸 먹은 후 절반쯤 먹은 다음 볶음밥과 김을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먹자.



11) 양념이 잘 배이도록 볶아준다.





*느낀 점

- 요리를 대접한다는 것은 음식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전/후 모든 과정이 정성되고, 진실되어야 한다. 아니라면 차라리 다음 기회로 미루자

- 생연어는 구매 후 빨리 먹자

- 낙지볶음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신선한 야채를 듬뿍 추가해서 그런지 더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전 06화 아내를 위한 밥상 - 청경채 궁중 떡볶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