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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Oct 24. 2021

4살짜리 아이가 말했다. "칵카오페이 대나여~?"

은행원 탐구생활 10화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떤 업무를 도와드릴까요?"

"네 안녕하세요~ 저 통장을 잃어버려서 재발급 좀 하려구요."

"네 고객님~ ...(중략)... 재발급 수수료가 2천원 나오는데 현금 없으시면 통장 잔고에서 빼드릴까요?"

"아, 통장에 돈 없을 텐데... 이거 OO은행 카드인데 이걸로 결제해주세요!"

"죄송해요 고객님~ 은행에서는 카드 결제가 불가합니다..^^;"


은행을 잘 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위의 대화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카드 결제가 안된다고...? 삼X페이 같은 것도 다 되는 마당에...? 그러나 그건 사실이다. 은행에서는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현금과 통장 잔액을 활용한 결제만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선진화돼있어야 할 금융기관인 은행에서 이런 기본적인 결제조차 원초적 방식을 쓴다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나도 그 부분에 대해 깊이 조사(?)를 해보진 않았기에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아마도 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면 불필요한 결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비용을 줄이는 일이 우선순위의 상단에 있을 영리법인이면서 현금과 가장 밀접한 기업이 바로 은행이다. 그런데 굳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카드결제 단말기를 써서 결제한다는 건 은행 입장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카드로 결제하면 손님 입장에선 편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선 수수료도 떼이고 돈도 바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단점도 많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 정말 많이 발달한 데다, 코로나까지 겹쳐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은행을 오기보단 비대면 거래를 주로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사람들은 온다. 부모가 직접 와서 거래해야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미성년자, 비대면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현금 거래가 많은 업종에서 일하는 자영업자나 법인고객 등이 그렇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상황에서 대출을 받는 사람들도 은행을 직접 찾아오곤 한다. 비대면과 디지털이 강조되고 있는 언택트(untact) 시대에도, 오프라인에서 직접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현금을 가져가려는 고객들도 정말 많이 줄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스마트폰, 인터넷이 잘 돼있는 우리나라에서 카카오, 토스 등의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뱅킹 시장에 뛰어든 이후 개인끼리 현금을 주고받는 일은 정말 보기 드물어졌다. 사실, 젊은 세대인 2030의 경우 이미 현금을 안 들고 다닌 지 거의 10년은 된 것 같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2010년대 초반 스마트뱅킹(스마트폰을 이용한 은행거래)이 출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임에도, 같이 점심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 뒤 n분의 1을 항상 스마트폰으로 이체해줬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처럼 몇 초 만에 샤샥 이체할 정도의 속도는 아니었지만, 매번 ATM에서 현금을 빼서 건네주고 거스름돈을 받는 번거로움에 비하면 나름 혁신적인 변화였다.


요즘 은행에 와서 현금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1. 사업상 현금이 필요한 고객(자영업자, 법인)

2. 개인적인 행사(부동산 거래, 혼수비용, 예단비 등)에 현금이 필요한 고객

3. 보이스피싱 사기범에 속아 현금을 찾으려 하는 고객


1번의 경우 누가 봐도 명백히 현금이 필요해 보일 경우엔 드리고, 애매하다 싶으면 실제로 사업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 작업을 거친 뒤 현금을 드린다. 사업의 종류도 다양하고 상황도 다양하기에 그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래의 3번 고객들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번의 경우는 조금 애매할 수는 있겠지만, 역시 적극적인 탐문(?)을 통해 증거를 수집한 후 실제로 쓰려는 용도가 확인되면 현금을 드릴 수 있다. 몇 달 전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은행을 방문한 예비신랑이 있었는데, 영업시간이 끝난 뒤였지만 너무 애처롭게 현금이 급해서 왔다고 하길래 안에서 업무처리를 해줬다. 예단 비용으로 현금과 수표가 필요하다고 해서 처음엔 약간 의심했지만, 실제로 결혼할 사람인지 확인한 후(모바일 청첩장, 예식장 계약서 중 하나를 확인했었음-기억이 안 남) 현금을 드렸던 적도 있었다.


3번이 중요하다. 이들을 잘 찾아낼 줄 알아야 사기범들의 손아귀에서 고객들을 구해줄 수 있다. 갈수록 범죄자들의 수법이 교묘해져서 꽤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그들의 마수에 걸려든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리기에 은행원들의 말을 듣질 않는다. 이런 사기범들 때문에 1,2번의 현금 실수요자들까지 현금을 찾기 어려워지는 불편함이 생기고 있어 안타깝다. 물론, 이번 글의 주제는 보이스피싱이 아니니 여기까지만 하고 넘어가자. 




현금의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시대에, 변화의 바람은 은행 밖에서 매우 강하게 불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삼X페이를 써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결제가 편해졌는지 실감할 것이다. 갤X시 폰을 쓰면서 삼X페이를 안 쓰면 바보라고 할 정도로 너무 편해서 나도 애용하고 있다. 아X폰은 아직 국내에서 완전히 호환되지 않기에 결제가 불편하긴 하지만 점점 편리해지는 추세라고 한다. 아X폰의 애X페이까지 국내 호환이 완벽히 이뤄지면 그야말로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거기에다 인증서까지 더 간소화되거나 완전 폐지된다면 천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삼X페이를 쓰다 보니 국내 1위의 플랫폼인 카X오의 결제 시스템인 카X오페이는 거의 써본 적이 없다. 아마도 결제 단말기에 접촉하는 방식도 아니고, 결제가 불가능한 가게들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안 쓰게 된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비상시에 써볼 만한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존재감을 다시 한번 뇌에 새길만한 계기가 있었는데, 이제 겨우 세상에 나온 지 만 3년밖에 안된 조카가 그 주인공이었다.


하루는 동서가 조카를 데리고 어떤 매장에 들렀다.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하려는데 카드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X폰 유저였던 동서는 당황했지만(아X폰 까는 거 아님) 아이가 보고 있기도 하고, 공대생 출신임을 입증하듯이(?)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유유히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직원에게 "카X오페이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 뒷 이야기는 나도 모른다. 물건 구매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만 3년짜리 귀여운 조카는 집에서 마트놀이를 할 때마다 이렇게 외친다.


"칵카오페이 대나여~~~? 영슈증 드릴까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귀엽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찌나 또박또박 말하던지, 아직도 귀에 맴돈다. 덕분에(?) 한참을 안 쓰던 카X오페이 앱을 깔고 내일 한 번 써볼까 생각 중이다. 이렇게 각종 결제 앱들이 더 활발히 사용하게 되면 은행에서도 페이 결제가 당연하게 될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굳이 은행에서 비용을 들여가며 결제 시스템 구축을 할까?'라는 의문이 남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고리타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에 부흥하고 살아남으려면 이런 니즈도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안정적인 직장보다(이제 안정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질 듯) 좀 더 많이 도전하고 변화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고 싶다. 


'혼자 열심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되려나..?' 싶다가도, 그러기엔 은행은 너무 보수적이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아직 뿌리 깊이 박혀있는 듯하다. 당장 일주일, 한 달간 실적만 뒤처져도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과연 도전적인 시도와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 


매일 일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움에 목말라 하지만, 막상 그런 판을 깔아주면 또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언젠간 도태될 게 뻔하지 않은가. 규제 때문에 잠시 카X오뱅크가 주춤한다고 해서 우리가 살 길이 트인 건 아니다. 언제라도 다시 위기는 찾아온다. 아니 이미 위기 속 영업이 진행 중이다. 나는 이런 폭풍우 속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오늘 밤 브런치에도 고뇌가 스치운다. by 행춤



(사진출처: Photo by Vojtech Bruze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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