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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감생심 두리안

과일이 뭐 과일이지!

by Mong

"너무 강한 빛은 늘 더 짙은 그림자를 몰고 다녀"





고슴도치 같은 과일이 더미로 쌓여 있다.

과일의 왕, 두리안이다.


보통 두리안은 이렇게 다른 과일과 함께 팔지 않는다. 대개 별도의 매장에서 따로 판매된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리안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1킬로그램당 200바트. 태국인 하루 평균 일당의 절반이다.


두리안은 재배가 어렵다.

게다가 수율, 즉 과일 전체에서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과육 비율이 20% 남짓. 이 과일이 오래전부터 부유층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이유다.

최근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두리안은 더 귀해졌다. 중국내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가격이 몇 년 새 급등세다.


지금 전 세계 두리안의 90%를 중국이 소비한다.

태국 역시 생산물량 대부분을 중국으로 수출한다.

한때는 중국 내 두리안의 90% 이상이 태국산이었지만, 최근엔 베트남과 필리핀이 수출을 확대하며 태국의 시장 점유율이 다소 떨어졌다고 한다.


중국 인구는 워낙 많다.

그들이 한 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재화의 국제가격이 폭등하는 일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덕분에 태국 내 두리안은 그야말로 과일의 왕이 되었다. 그래도 제철인 5~7월 사이에는 가격이 다소 안정되고, 공급은 풍부해진다. 맛도 절정이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두리안의 크리미한 식감을 제대로 즐기려면 이 시기 두리안 뷔페가 제격이다.

도심의 유명 쇼핑몰의 뷔페식당에서는 450~900바트 정도에 두리안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태국의 다른 과일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싸고 풍부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리안의 가격은 관광객에게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호텔 반입이 금지될 정도로 강한 냄새까지.

한 번 맛을 들이기 전까지는 다가가기가 여간 쉽지 않은 과일이다.


그럼에도 한 번 빠진 사람은 헤어나오기 힘들다.

특유의 중독성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서너 배의 값을 치러야 하니,

태국에 오면 미친 듯 두리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두리안은 욕망의 과일이다.

현지인들이 반나절을 일해야 겨우 맛볼 수 있는 과일. 생산량의 대부분이 수출되어 흔하지 않은데, 철만 되면 누구나 열병처럼 그 맛을 찾아 헤맨다.

부자들의 식탐을 좇아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서민들에게 ‘가심비 있는 위로’이자

소소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사회 현상이 드러난다.

부자들의 소비는 흔히 ‘과시적 소비’ 혹은 ‘배블런 효과’로 설명된다.

서민들은 그 소비를 모방하며 심리적 동조와 위안을 얻고, 그 모방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가심비 소비’라는 이름이 붙는다.

결국, 여전히 부자들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최근 부자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키워드는 ‘비과시적 소비’, 이른바 Quiet Luxury다.

부의 편중에 대한 대중의 질시와 피로, 그리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소비는 더 이상 과시가 아니다”라는 자각이 이 변화를 이끌었다.

이제 부자들은 로고 대신 소재로, 화려함 대신 디테일로 품격을 드러낸다. 과시의 시대가 저물자,

‘티 나지 않는 고급스러움’이 새로운 과시가 된 셈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한국 재벌들과 치맥 회동을 하며 보여준 모습은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날 그들이 입은 옷은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았다.

각자의 시그니처룩,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복장이었다.

보여주기보다 본질을 지향하는 소비.

그것이 지금 부자들의 새로운 언어다.


온갖 SNS를 뒤덮는 명품 브랜드와 어울리는 과일, 두리안.

분명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 있는 존재다.

하지만 하이라이트 뒤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Quiet Luxury 역시 부자들의 과시일 수 있다.

다만 이번엔, 자기들끼리만 해보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지나친 모방소비로 양산되는 이른바 ‘푸어족’에게는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봤자 과일일 뿐이다.

두리안 좀 먹는다고 ‘두리안푸어’가 될 일은 없지 않은가.

비록 모방소비일지라도,

조금 더 비싸더라도,

가끔은 그들처럼 먹고 마시고 지내보는 것!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나는 두리안이 그래도 싫다.

내게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있고, 확실한 디테일이 있다.

나만의 시그니처룩과 소품들을 즐긴다.

더구나 대부분의 딱딱한 과일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수박, 귤, 망고 같은 흔한 과일을 더 좋아한다.


두리안 하나 값으로 한 무더기를 살 수 있는 그 통쾌함.

그게 나에게는 Quiet Luxury이고,

가심비 있는 소확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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