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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Dec 31. 2017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제가 쓴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사우, 2017)의 내용을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332145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오직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 때 인간의 노동은 비로소 자기실현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나오는 대붕(大鵬)처럼,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듯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막상 그런 삶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평생 분투해왔다. 구속받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살아왔다. 힘들지만 자유로운 삶이었다. 힘들었던 것이 더 컸는지, 자유의 기쁨이 더 컸는지는 죽을 때 결산해봐야 알 것이다.


소년 한스의 슬픈 죽음


그런 나에게 세월이 흘러 다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바라던 삶을 살지 못했던 소년의 죽음이 이렇게 애절한 것이었구나,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게가 전해졌다.


헤세의 자전적 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는 사회와 학교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소년 한스 기벤라트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한스는 작가 헤세의 분신이다. 헤세 자신이 명문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쇠약증에 걸려 중퇴하고 말았다. 헤세는 짝사랑 때문에 자살기도까지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도 했고, 학업을 중단한 뒤 시계부품 공장의 견습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방황하던 헤세는 서점 점원이 되었고, 그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주인공 한스는 영락없는 헤세의 모습이다. 한스가 겪었던 아픔이 바로 헤세의 아픔이었던 것이다.


1900년 무렵 독일 남서부의 슈바르츠발트라는 작은 마을에 한스 기벤라트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한스는 매우 재능있는 아이였고, 그 지역에서는 영리한 아이들의 진로가 정해져 있었다. 주(州)에서 치르는 시험을 통과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뒤 수도원에 들어가고, 나중에 목사가 되거나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들 부러워하는 엘리트 코스였다.


원래 한스는 자연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자연의 풍경과 추억이야말로 한스가 진정으로 가까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부라는 수레바퀴에 치여 좀처럼 그럴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한스는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합격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선생님들과 마을 목사, 아버지, 특히 교장 선생까지 격려의 채찍질로 한스를 숨 가쁘게 몰아세웠다. 합격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한스는 신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야망과 인내심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험에 대한 불안과 승부욕은 한스에게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타인의 욕망은 그렇게 한스의 욕망이 되었다.



수레바퀴는 우리 위에도 있다


헤세의 이 소설은 흔히 학교라는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버린 소년의 이야기로 읽힌다. 하지만 꼭 어린 소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의 수레바퀴는 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우리의 꿈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스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자연 속을 거닐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한스였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학교 공부도, 아버지 곁도, 대장간 일도, 모두 자기 것이 아니었다. 생애 가운데 가장 꿈이 많을 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조차 찾지 못했던 한스는 불행한 아이였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내가 한스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법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청소년 시절에 갖게 되는 희망이 라는 것이, 자기 내면의 선택에서 나오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대개는 어른들의 바람이 그대로 아이들의 희망이 된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 서론」에서 이를 ‘부모의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했다. 남자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대신하여 영웅이 되어야 하고, 여자아이는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뒤늦은 보상으로 잘생긴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치한 속성을 지닌 부모의 사랑이란, 결국 부모의 나르시시즘을 자식이라는 대상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자신이 포기했던 나르시시즘을 부활시켜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욕망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아닌, 타자로서 부모의 욕망일 뿐이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부모들은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어느 사이 아이들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는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가 찾지도 못한 채 흘러가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도전해보지 못하는 삶을 살곤 한다. 그것은 불행한 삶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큰 행복 가운데 하나다.


나에게도 그 자유로운 삶의 행복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결단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이가 든 이후로는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 전환점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방송을 하겠다고 나선 일이었다. 두 번째 전환점은 몇 년 전부터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인문학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일이다. 


그동안 자유인으로서의 삶은 누렸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일한다. 혼자서 방송하고 글쓰고 강의하는 프리랜서였다. 믿을 것은 내 자신 밖에 없기에 항상 긴장하며 일하고 준비해야 했으며,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깨어 움직여야 했다. 공짜로 얻어지는 자유는 없고, 고생 없이 이루어지는 꿈은 없다. 그 대가를 지불할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자유인의 삶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결단에 따라서는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지금 그렇게 또 한 번 살고 있다. 아직 꿈이 있다. 그것이 욕망의 꿈이 아닌, 열매처럼 익어가고 싶은 꿈이기에 다행스럽다.

당신의 영혼을 흔들고 찌를 12권의 책

읽고 사유하는 사람만이 싸우고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내면의 힘을 키워준 책 12권을 소개한다. 단순히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오늘 이곳에서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신의 진실을 지키고 존엄을 잃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한 지식인의 자기 탐구 기록이기도 하다. 책 읽는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위대한 사상가와 온몸으로 만날 때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제가 쓴『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33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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