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와의 전투
일본의 날씨는 3일에 한 번은 비가 내리는 것 같다.
덕분에 거리의 나무들도 건물의 벽들도 모두 깨끗하고
자세히 보면 숲 속도 아닌데 이끼가 여기저기에 있는 것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일본을 들렀다 가면서 촉촉한 날씨에 취해 좋다는 말을 멈추지 않는데
그러면서 한국은 먼지가 많아 지저분하다고 덧붙인다.
이런 관광객의 말에 일본에서 생활을 하는 나는 그저 속이 터진다.
그 촉촉한 공기가 만들어 주는 습기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냐고..
한국에서 내가 살림을 살지 않아 한국의 삶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이제 일본에서 살아온 시간이 긴 나는 일본의 생활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은 건조한 기간이 있어 먼지가 날리고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일본은 쭉 한국의 장마기간 같은 날씨로 차분해 보이는 대신
집안 구석구석에는 곰팡이가 항상 잔치 분위기로 엉망이다.
계속 살아가는데 습기가 많은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알아야 한다.
첫아이가 태어나 첫겨울이 왔을 때의 일이다.
한국처럼 온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체 난방이란 것을 쓰지 않는 일본의 집 구조에서
전기 카펫 위에 외풍을 피하려고 한국에서 가져간 병풍을 펴 두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병풍을 치우려고 접으며 뒤를 보니
새까만 곰팡이가 아예 살림을 차리고 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병풍 안에도 곰팡이가 가득 차 어쩔 수 없이 버렸는데
나와 아이가 그 곰팡이들과 같이 숨을 슀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그때 알았다.
촉촉한 공기와 깨끗해 보이는 거리가 생활에서는 어떤 공포를 주는지..
방충제를 넣어 잘 보관한 순모의 정장들을 햇볕에 펼치니 크리스마스 장식 같은 빛이 반짝이는데
좀이 만들어 놓은 조그맣고 동그란 구멍을 본 것은 태어나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겹쳐서 빽빽하게 넣어 두었던 책들도 당연히 곰팡이와 같이 살고 있었다.
습기가 많다고 일본인 친구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 주긴 했었는데
한국을 기준으로 걱정하며 조심했던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딱 맞아떨어지는 말은 살짝 덜 마른빨래 수준!
그런 수준인 이불과 식기와 책과 전기제품을 두고 살아간다고 마음먹어야 했었다.
일본인들이 해가 뜨지 않은 날에도 이불을 너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다.
전기담요도 잘 쓰지 않는 일본은 이불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을 한다.
거의 매일 저녁에는 탕에 뜨거운 물을 담아서 나이들은 사람부터 목욕을 하는데
몸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보다는 몸을 따뜻하게 해서 자려고 하는 것이 더 커 보였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일어날 무렵이 되면
이불이 습기를 먹어서 축축해져 있는데 그것을 바람이 통하라고 널어놓는 것이다.
온돌의 생활을 하던 내가 볼 때는 왜 개선을 하지 않은지 답답해 보이는데
이들은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다.
가구는 벽과 거의 손이 들어갈 만큼 띄어 놔야 하는 것은 기본이어서
그러지 않아도 작은 방(다다미 6장의 방=3평)을 더 작게 쓰게 되고
벽장에 물건을 넣어 둘 때도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인스턴트커피가 병에 남아 있어 잘 닫아 두고 석 달만에 왔더니 습기에 다 녹아 있고
반평 정도의 벽장에 습기 제거를 8통이나 넣어두었는데 다 물로 변해 있었다.
여름엔 땀이 마르지를 않고 끈끈하게 남아 있어 불쾌지수가 엄청 높은데
더우면서도 바싹하게 마르지 않아 전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시쿰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우리나라 장마 때를 연상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더위는 땀이 나도 그대로 말라버려 견딜만했었다.
일본인 친구들.. 전업주부들의 말로는
습기는 집안으로 들어오기는 해도 알아서 나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불도 물건들도 햇볕이 나면 내다 말리느라고 약속도 그냥 알아서 취소가 되었었다.
아마도 며칠간 관광으로 왔다가 간다면 이 축축한 날씨가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날씨를 빗대어 칭찬까지 할 것은 단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