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건 죽어도 싫었던 여자와 귀찮은 건 죽어도 싫었던 여자의 캠핑
첫 번째 캠핑은 갑작스레 결정된 것이었으니 더러울 수 있다 생각했다. 성공적인 두 번째 캠핑을 위해선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첫째, 무조건 깔끔한 캠핑장일 것. 둘째 후기가 좋아야 할 것. 셋째, 벌레가 많을 수 있는 숲이나 계곡, 풀이 우거진 곳은 피할 것. MBTI J인 나는 캠핑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최대한 대응하기 위해 유튜브부터 블로그, 인스타그램까지 후기를 싹 긁어모아 인제의 한 캠핑장을 예약했다.
나의 예상대로라면, 우린 그곳에서 완벽한 캠핑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믿었고 믿고 싶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캠핑날이 되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날씨 확인을 못했구나.' 급하게 편의점에 들어가 우비를 사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인제에 도착하니 하늘에선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래 계획한 캠핑을 멈출 수는 없으니 이왕 온 거 재밌게 보내보자 라는 생각으로 피칭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싸구려 우비는 퍼붓는 비를 막아주지 못하고 옷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신발 안으로 빗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질펀해진 발바닥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역시 캠핑과 깔끔함은 거리가 먼 것인가? 어쩌면 나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조화를 바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더러움이 싫어서 준비한 계획적인 캠핑에 비에 홀딱 젖어버리다니 계획과는 완전히 어긋난 우린 이제 우비를 쓰나 마나 한 상황이 되었다.
분명 화가 나고 짜증이 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웃긴 거지? 비에 젖은 것도 너무 웃기고, 이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깔끔함과 캠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조화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어릴 적 다들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가?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떠드는 그런 상상.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다. 이 순간만큼은 더러움은 잠시 잊고 비 맞는 걸 즐겼다.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나고, 젖은 몸을 씻으러 들어간 샤워실을 찾아 들어갔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샤워실이 정말 너무 깔끔한 것이다. 깔끔함을 넘어서 화장실 바닥이 따듯한 게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의 계획이 반은 틀리고 반은 맞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씻고 나오니 어느새 비는 자취를 감추고 산을 넘어간 해는 어스름한 저녁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행복이었다. 더러운 건 죽어도 싫어하는 내가 질펀한 신발에 불편함을 느끼고 더러운 비에 홀딱 젖었는데 그 순간이 지나니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라니. 이때 알았다. 캠핑은 계속될 것이란 걸.
캠핑과 깔끔함, 인지부조화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