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질문에 나는시간을 끌기 바빴다. 친구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물이면서도 내가 말할 법한 선물.거듭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쉬운 답은 공책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그런 답이 돌아올 때면 나에게는 새로운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 다운 게 뭘까?
생일이 다가올 때면 여러 종류의 공책들이 책장을 채워갔다. 아무리 써도 좀처럼 줄지 않는 공책.내 답이 공책에서 네가 선물하고 싶은 물건이면 좋다는 새로운 답을 찾을 때까지 책장의 한 칸은 언제나 공책의 자리였다.
책장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공책들과 마주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학년을 거친 공책들에는 이제는 잊어버린 메모들이 가득했다. 수학 공식, 친구들과 했던 낙서, 지금은 읽을 수 없는 영어 문장까지.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책을 들춰보다가 나는 낯선 메모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익숙한 글씨로 빼곡히 채워 넣은 편지. 내가 쓴 편지였다.
편지가 적힌 시기는 일정하지 않았다. 기억하는 편지보다 새까맣게 잊어버린 편지가 더 많았다. 아무 노트의 가장 마지막 장에 흩뿌려진 편지. 감추고 싶었던 지난날의 내가 그 속에 잠겨 있었다. 전하지 못한 편지를 바라보며 나는 지난날의 나를 마주했다.
편지의 수신인은 제각각이었다.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친구였다가 엄마였다가 동생에게 화난 날에는 동생이었다가. 그러다 사춘기가 될 무렵에서야 편지의 수신인이 일정해졌다. 사촌 언니.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한 사람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 정 반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 어린 시절 내게는 언니가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았다. 내가 바라보는 언니의 세상은 자유가 가득했다. 좋아하는 걸 말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으니까. 언니와 대화하고 있을 때면 나는 세상 밖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사춘기를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사촌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멈추지 못했다. 언니의 세상은 자유로우니까. 언니의 말은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내 고민은 아무렇지 않게 털어줄 것 같았다. 결국 언니도 나보다 고작 3살 많은 아이였을 뿐인데.
시간이 흘러 명절에 언니를 보는 일이 줄어들고 포장지에 감춰 있던 언니의 진짜 세상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언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멈췄다. 한 번도 보내지 못한 편지. 수신인을 잃어버린 편지는 한동안 모습을 감춘 것 같았지만 이내 새로운 수신인을 찾아 모습을 드러냈다.
나 자신. 끝은 내가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였다. 전해줄 필요가 없는 편지. 나는 어느 날의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모순된 감정을 푸는 방법으로 편지를 택한 것이었다. 언젠가 내 고민을 쉽게 해결해줄 특별한 어른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받고 싶은 선물조차 솔직히 말할 수 없던 아이. 눈치보기 바빴던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글이라도 쓰는 것이었다. 아무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말들을 글 안에 꼭꼭 담아서 그날의 흘러넘친 감정을 눌러냈다. 감정을 쓰는 법을 몰라서 아이는 시한폭탄처럼 부푼 감정을 끌어안고서 몸만 자라났다.
다 쓴 공책을 비워내며 나는 나에게 쓴 편지를 받았다. 새로운 책이 채워질 책장 구석에 여전히 자리를 지킬 나의 감정, 나의 나날. 이제는 끌어안을 수 있어서 나는 그 자리를 남겨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