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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 K의 퇴사와 노자의 도덕경

에세이 #52

by 토파즈

직장 동료 K는 몇 달을 고민하다 퇴사를 결정했다. 나와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서 가깝다면 가깝고 또 멀다면 먼 사이였다. 직장동료라는 존재는 우주에 떠 있는 두 행성 간의 거리 사이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K는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나를 찾아와 퇴사를 결심한 이유와 배경을 설명했다. 굳이 나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워 진심으로 경청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직할 곳이 연봉을 많이 올려준다고 했어요?'
'회사 복지가 좋아요?'
'어떤 업무를 맡을 것 같아요?'


K는 연봉과 업무 환경 둘 다 지금 회사와 비교해서 좋다고 말했다. 나는 K가 이미 마음을 굳힌 걸 느꼈고 내 역할은 K에게 잘될 거라는 덕담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다. 이제 일어나려는 찰나에 K가 물었다.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나는 되물었다.


'진짜 내 생각이 듣고 싶어요?'


네.


진심이었다. 그리고 나는 노자의 저서 <도덕경>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울트라 꼰대처럼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퇴사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노자라니! 솔직히 지금도 약간 후회하고 있다.)


K 씨,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잖아.

회사가 문제가 많지. K 씨가 무엇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조직이 잘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어떤 자리에 가고 싶다면 먼저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가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내 말이 너무 뜬금없는 말이지만 자주 지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주변에서 K가 어떻게 일하는지 정확히 알고 인정하고 있잖아. 조금 더 힘을 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군자는 가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거든. 우리가 사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종신 고용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생각해. 그러나 1년에 회사를 2~3번 옮기면 스스로에게 삶을 축적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거 아니겠어?

K 씨 말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이야. 그럼에도 나는 지금 K 씨가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해요. 나도 동일하게 느끼는 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K 씨 생각을 존중해요.


1주일 후, K는 회사를 떠났다.


떠나기 전 함께한 자리에서 나에게 퇴사 이야기를 꺼낼 때 팀장님이 해주신 노자 이야기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도 고맙다고 말했고 진심으로 K가 잘되기를 바랐다. 승승장구해서 다시 만나자며 서로 격려했다.


K는 조직에서 인정받고 있었으나 스스로 동의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의사결정에 지쳤다. 그리고 그것은 K에게 중요한 삶의 원칙이었다. 자기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했고 실행했다.


K가 도망가거나 회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K는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퇴사하는 날까지 일부러 휴가를 내지 않고 업무를 챙겼고 인수인계를 마쳤다. 직장생활에 고마움을 준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했고 스타벅스 쿠폰도 아끼지 않고 보내며 감사를 표현했다.


K는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났을 뿐이다. 전쟁에서 줄행랑은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커피 한 잔 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K는 말했다.


'팀장님, 지금 회사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팀장님이 인격이 훌륭한 분이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 같아요.'


K는 이직한 회사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더 좋은 상사를 만났기에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문제였다. 회사 입장에서 K는 퇴사한 것이다. 그러나 K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을 곁에 두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K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결코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물론 지금도 남아있다.


내 곁에 어떤 사람을 둘 것인가?


누구와 함께 인생을 살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은 '어떤 사람을 곁에 두지 않을 것인가?'이다. K는 회사를 떠난 게 아니라 곁에 둘 수 없는 사람을 처낸 것이다.


K와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왜 K에게 노자 이야기를 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스스로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자 애썼기 때문에.


잠시 K가 퇴사 이야기를 꺼낼 때 차라리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라고 말하는 게 훨씬 솔직하고 담백했겠구나.. 싶었다. 어정쩡하게 K를 위하는 것처럼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스스로 솔직하지 못함에 반성을 했다. 식은 커피가 옆에 놓여있고 날씨가 조금 흐린 오후였다. 구름 사이로 내려앉은 햇볕이 조금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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