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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를 취소한 아빠의 마음

아빠육아 #19

by 토파즈

첫 딸이 태어나고 6개월 뒤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확산하여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97년 IMF, '00년 밀레니엄, '08년 금융위기와 또 다른 심각한 위기가 세상을 덮었습니다.


아내는 임신 기간 동안 어마어마한 입덧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출산 2주 전까지 음식을 먹지 못했고 대학병원 의사는 임당 수치를 고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무엇이든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은 고사하고 만삭임에도 체중은 2~3kg 밖에 증가하지 않은 상태로 출산이 임박했습니다.


참,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아무 일 없이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해 달라고. 지금 생각해도 매일 아침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간절함이 원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2019. 5. 16.(목) 2.6kg. 건강한 여아가 태어났습니다.


아내의 임신 기간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이'라는 태명을 가졌던 딸은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루하루 신기한 나날이었습니다. 아내는 힘든 몸을 일으켜 아기를 보고자 노력했고 2주간 산후조리를 마쳤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든 생명을 마주한 첫 순간은 그 존재 자체가 의미가 되는가 봅니다. 새로운 식구가 그렇게 우리 가정을 찾아왔습니다.


첫 돌을 맞이한 첫 딸.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한 딸을 축하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뷔페식 돌잔치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상대적으로 진정 국면에 들어섰을 때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일 수 있는 카페를 대관해서 하려고 했는데.. 돌잔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만 초대했음에도 불안한 마음을 씻어낼 수 없어서 취소를 결정하고 연기했습니다. 아쉬움은 남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이기에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1~2주 경과를 지켜보니 확진자수는 감소 추세로 전환됐고 차츰 진정 국면으로 들어가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약을 하고 돌잔치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이태원발 코로나 19 확진자 237명으로 늘어... 6차 감염도 4명 나와" (한겨레 신문)
"미 언론, 이태원발 코로나 19 재확산 주목" (중앙일보)


결국 다시 취소.


첫 돌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지인을 초대하는 자리는 가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20년간 저희와 함께한 목사님 내외분과 아빠, 엄마, 딸이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은 저희에게 임신 기간 중에 딸을 기다리며 썼던 글과 1년을 맞이하며 당부를 담은 글을 출력해서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목사님은 딸이 태어나기 전에 쓴 기도문을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래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hahehehe/114


그리고 첫 돌을 맞이하며 쓴 당부의 글도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래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hahehehe/50


그리고 말씀을 읽어주시고 축복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시편 112:1~3)


목사님은 '기독교는 단순히 부와 재물이 쌓이고 넘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부자는 오늘 가진 것에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자족하며 살아가면 집에 부와 재물이 떨어질 수가 없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무려 45분 동안. (최근에 45분 이상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은 많지 않습니다. ^^) 한 가정을 위해서 성심성의껏 설교를 준비하시고 전해주시는 목사님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화창한 아침 햇살이 집을 비추고 있었고 목사님 내외분을 초대하며 청소를 싹~ 했습니다. 딸에게는 깨끗한 새 옷을 입히고 저희 부분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성경책을 들고 앉았습니다.


양가 가족이 참여하지 못하고 가까운 지인을 초대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시간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매우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구나!'


저희 부부가 딸을 기다리며 썼던 기도문을 읽으며 지난 시간이 생각났고 첫 돌을 맞이하며 저와 아내가 가진 생각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공유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축복과 웃음소리는 없었으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딸의 지금과 미래를 축복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많은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던 제 마음은.. 어찌 보면 단순히 부와 재물을 쌓아가려고 했던 부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첫 돌을 맞이한 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너의 존재만으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단다.'


하루 온종일 따뜻한 햇살이 집을 비추고 있었고 우리는 편안한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딸은 온 집을 돌아다니며 어지럽게 해놨고 일상은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참 좋은 때,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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