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 엎어진 프로젝트를 맡아서 조금씩 진전시키느라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사태는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매일 늦어지는 퇴근,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내의 독박 육아.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쉽지 않은 무더운 여름이었다.
딸이 태어나고 6개월 뒤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앞으로 5~10년 후, 지금 우리가 보내는 시기를 다시 정의하겠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결코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지만, 아.. 어떻게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아내와 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모님이 계신 우리 부부의 고향이다.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육아에 지쳐가는 아내와 나는 대화를 했고 몇 주간 부산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내와 딸이 부산으로 내려가고 홀로 보내는 시간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 새벽 1~2시 퇴근이었고 며칠은 회사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정말 오랜만에 스트레스와 피곤을 마음껏 느끼며 짜릿하게 일했다. (그다지 짜릿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죽을 맛이었다. 글이라도 이렇게 써야 약간 보상받는 기분이라..)
금요일 퇴근 시간은 새벽 3시. 집에 도착하니 4시가 지나고 있었다. 씻고 새벽도 아침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정오. 분명히 홀로 보내는 주말에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점심을 대충 먹고 저녁까지 거실에 누워서 티브이 앞을 떠나지 않았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누가와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고 전화를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조용히 있었다. '놀면 뭐하니.'를 몰아보며 유재석, 이효리, 비의 엄청난 케미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저녁시간이 찾아왔고 최근에 빵과 야채, 패티까지 변화를 시도했다는 맥도널드를 찾았다. 맛있었다! 그리고 캔맥주에 라면을 부셔 먹으며 푹 잤다. (캔맥주에 생라면은 왜 이렇게 맛있는건지)
홀로 보내는 시간 동안 다양한 것이 하고 싶었는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결과를 만들겠다.. '라는 말 따위가 가지는 한계를 스스로 체감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조건은 내 삶에 그저 주어지지 않는 것이고 사실 그저 주어진 적도 없었다.
두 발로 세상을 걷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누굴까?'라는 고민을 하는 순간까지의 시간을 지나면 내 삶은 오롯이 나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쌓여있다. 처음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은 그저 현실에 대한 작은 불만이었을 뿐. 막상 내가 홀로 시간을 가지게 되자 가족의 부재를 느끼며 헛헛한 마음을 애써 감출 수가 없었다.
어느덧 나는 아내와 딸과 보내는 시간에 적응했고 그것이 온전한 내 삶이 된 것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4주 만에 돌아온 아내는 여전히 힘든 육아에 고군분투 중이었고 딸은 급성장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딸은 오른쪽 발등 위에 뜨거운 밥이 떨어져 2도 미만의 화상을 입었다. '아뜨'가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치료를 받고 2일 동안 무더운 여름임에도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양말이 벗겨지면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느끼며 크게 울었다. 세상이 떠날 것처럼. 통증은 그렇게 몸에 남는 모양이다.
어젯밤이었다. 딸은 미끄럼틀에 앉아 있었고 나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부터 10분가량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말했다.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화상을 입은 발등을 가리키며 무엇인가를 정말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응, 그랬구나. 많이 아팠어?'라는 말을 수십 번을 반복했다. 그만큼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술 취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던 20대 즈음을 제외하고 똑같은 말을 이렇게 많이 들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엄청 아팠고, 무서웠고 불편했다는 것을. 물론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빠에게 설명하고 싶을 만큼 스스로 정리가 되었을 수도 있고 또 말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그러다 문득 약간의 유쾌한 염려가 들었다. '나 닮아서 엄청 말이 많은거 아니야?' 딸이 아빠 닮는거야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가 혹시 서로 토크 지분을 가지기 위해 기를 쓰고 싸우지는 않을런지. 혹은 그 반대로 말 한마디 하기 힘든 서먹서먹한 부녀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적어도 기쁜 마음으로 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련다.
그것으로도 충분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