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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2

by 커피탄 리

잿빛밖에 없는 창문 안


창밖에 가는 비가 내려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밖에서 하는 일은. 멋모르던 문학소년 시절에는 가는 비가 내리면 줄곧 나가서 비를 맞곤 했다. 비를 맞으면 자연과 더 가까워지거나 혹은 좋은 창작을 할 수 있다는 듯이. 혹은 다른 사람들의 유행과 취향에서 벗어나 나 혼자서 올바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듯이. 이런 희망 사항은 날이 흐르면서 마른날에 안개가 씻기듯이 지워졌다. 시간이 지나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창문을 반쯤 열어 놓고, 책상에 앉아 뭔가를 썼다. 비 내리는 날과 잘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컵에는 약간은 미지근해진 차를 담아둔 채. 빗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쇠창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좋았다. 비가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럼 나는 다시 글과 씨름해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집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다. 두 달에 한 번씩은 집을 들르는데, 가족이란, 모든 관계들이 그러하듯이 몸이 떨어지면 마음이 떨어지는 법이니까. ‘나는 오늘도 글을 썼다. 행복하게 글을 썼다.’라는 문장은 이 글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을뿐더러, 앞으로 글을 쓰는 시간 내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바로 다음날, 비가 멎었다. 나는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가족들이 살고 있는 옛 도시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산과 논밭과 공장들과 구름을 봤다. 맑은 하늘 아래 그것들은 빛을 받고 있었다. 40분쯤 그렇게 멍을 때리다가, 버스가 도시 서쪽에 도착하자 정신을 차렸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들아갔다. 집으로 가니 가족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엄마, 아빠, 동생들, 할머니 그리고 강아지까지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일일이 미소 지으며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빗물이 떨어지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는 한없이 맑게 미소 지었다.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나가서도 나는 곧잘 그랬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어른들을 만날 때도 그랬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미소를 좋아했다. 나도 그런 내 미소가 좋았고, 화답해 주는 그들의 미소도 좋았다. 나는 내 미소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소가 떠나면 어김없이 불안은 먹이를 발견한 비둘기처럼 찾아왔다. 사실 난 불안했고, 언제고 거울 반대편에서 날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불안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 미소를 선택했던 것이다. 미소는 내 페르소나이자 가면이었다. 가족들 또한 내가 가면을 쓰는 대상에 있어서 예외가 되지 못했다. 내가 웃지 않으면 모두가 날 떠나가 버릴 테니까. 여기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꺼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누가 날 버렸다거나, 버림받음과 준하는 상처를 받았다거나 하는 말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말이다. 누구도 나와 내 상황을 원래대로 고쳐줄 수 없다. 그것은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와도 밀착하게 붙어있었다. 난 상황을 이겨내기보다는 상황 속으로 스며들고 싶어 한 것 같았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고, 내 감정에 호소하는 가곡을 자주 불렀으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윽고 시를 썼고 소설을 썼다. 이것은 내가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 속에 갇혀서 나 자신의 세계로 몰입해 들어가는 데에 효과를 주었다. 나는 더 감성적이고 예민하며 성마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되어 갔고,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깨진 자존감 위에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게 원천을 방어하려는 처사였다. 점점 나는 나 자신 위에 자신을 덧씌워갔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환하게 웃고, 안으로는 욕망 덩어리인 나 자신을 달래지 못해 매일 아래로, 아래로 빠져들었다. 물고기는 하나도 없는 개울로, 개울 가장 깊은 밑바닥으로, 감정의 사슬이 칭칭 날 얽매고 있는 곳으로, 빠져들었다. 가끔 나는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햇빛이 스며드는 숲 속으로, 비가 내리는 들판으로 나가곤 했다. 그럴 때면, 내 망가진 영혼이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산책을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더 어릴 때부터도.


집에서는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었다. 혼자서 먹는 밥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매운 갈치조림이었다. 할머니는 아흔 연세에도, 생선뼈를 잘 발라드셨다. 아빠는 말없이 밥을 드셨고, 여동생도 그랬다. 남동생은 말이 많았다. 나는 남동생의 말에 대꾸하며 밥을 먹었다. 대화하는 내내 미소는 잊지 않았다. 밥을 먹는 시간은 20분가량. 그 뒤에는 방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매일 읽는 책인데, 내 속마음으로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거실에 앉혀 두고도 책을 읽을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밤늦게 엄마, 아빠가 차례로 들어오셔서, ‘요새 별일 없나? 졸전은 잘하고 있고?’라고 하신 게 대화의 전부였다. 동생들은 다 방이나 거실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고, 나는 책을 읽고 메모를 했다. 마음은 괜찮았다. 마음에는 일전의 괴로움도 없었고, 색으로 따지면 푸른색이었다. 다음날, 본가를 떠나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우울했다. 이 집에만 돌아오면 난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침대 위에 엎어졌다. 본가로 가기 전 쌓아놓고 나간 설거지가 보였다. 창틀 위에는 참새 두 마리가 앉아 있었고, 연한 햇빛이 창문 언저리에서 놀았다. 책상 위에는 원고 더미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고, 필기구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는 침대 위에 몇 시간이고 시체처럼 엎어져있었고, 마음속으로는 글을 다시 적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밤이 찾아왔다. 달빛이 아니라 가로등 불빛에서 나오는 연한 빛이 내 방 창문으로 흘러들어왔다. 문득 괴로운 생각이 들어, 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전에 하지 않던 멍청한 짓을 했다. 아주 어릴 때나 다녔던 교회에서 배웠던 일 말이다. 예수라는 신에게 기도를 하는 일 말이다. 기도 내용은 유치하고 천박했다. 내가 글쓰기로 성공할 수 있는지, 가장 먼저 물었다. 그리고 글쓰기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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