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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Jul 14. 2019

처음 만나는 파이_레몬 파이

Shaker Lemon Pie



 최근 파이도우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 믹서를 사용하지 않고도, 늦은 밤에도 조용히 만들어도 성취감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재미의 큰 부분이다. 사실 이 조용한 베이킹에 대한 기쁨의 기원은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살고 있는 서교동의 집으로 이사를 온 지 약 두 달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주말 오후에 아이싱을 믹싱하고 있던 중 현관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 누구도 이렇게 찾아온 적이 없던 곳이라 잘못 들었다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역시나 다시 한번 노크가 들렸다. 아랫집 이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해서요.'

믹서라고 설명했다. 그 소리가 컸냐고 물었다.

'네 여기 방음이 안돼서 다 들려요. 청소기 소리는 들리면 뭔지 알겠는데 이건 뭔가 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이고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이 시간대 (오전 11:30)에 기본적인 생활 소음으로 컴플레인하는 것이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서,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고 믹서를 안 쓸 수는 없다, 절대 저녁 늦은 시간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발 뒤꿈치로 걷는 소리가 너무 커서 좀 힘들다로 시작해,  평소에 몇 시에 주무시지 않느냐, 다 들린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니 사실은 다른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기계 소리가 나니 이때다 싶어 그 핑계 대고 다른 얘기를 하러 온 것이다. 최대한 공손하게 죄송하다, 여기 사는 남자분이 좀 그렇게 걷나 보다, 주의하겠다로 마무리하고 이웃을 보냈다.

 심통이 나긴 했다. 뭐 이런 낮시간대 가전제품 소리에 까지 예민하게 구는 여자가 다 있어. 이 시간에 아직도 잠옷 바람으로 있고 평일 낮 소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보니 허구한 날 집에만 있는 여자군. 과도하게 차분하고, 착한 말투를 가장해 비꼬는 투로 말하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것은,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공주 같은 극세사 잠옷덕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폐와는 상관없고 싶은 나에게 이런 한마디는 참 치명적인 것이, 그 후로 믹서를 사용할 때마다 나는, 눈은 질끈 감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꽉 부여잡아야 했다.

 얼마 전 쿠키와 케이크를 잘 먹었다며 지인에게 팔콘 파이 접시 세트를 선물 받았다. 유리 접시에만 파이를 만들어 봤고 이런 에나멜 파이 접시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집 앞 슈퍼에 블루베리가 많이 나와 있던 것이 생각 나, 블루베리 파이를 구워보기로 했다. 파이는 만들 때 손으로 하는 과정이 있어 꽤 성취감이 있는 베이킹 중 하나다.  

게다가 믹서가 필요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들 수 있어서 이른 아침, 늦은 밤에도 만들 수 있는 고마운 것. 늦은 밤 까지 만들다,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눈치 보지 않아도 좋은 파이 만들기! 그 후 여러 책에서 이런저런 파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참고로 블루베리 파이는 매우 잘 만들어졌다. 감사합니다 선물해주신 예쁜 분 )  

 



 타르틴 베이커리 창립자 둘의 쿡북 'Tartine' 에는 실제 베이커리에서 판매되는 페이스트리와 케이크의 레시피가 소개되어있다. 별일 아니라는 듯 크롸상 레시피도 있다. 어떤 파이를 만들지 찾아보다 발견한 것이 타르틴의 '셰이커 레몬 파이'이다. 솔직히 말해 레시피에서 언듯 보였던 simplicity와 같은 단어 때문에 이 레시피에 주목했던 것은 사실이다.

 항상 이 책을 보며 느낀 것은 조금 번거로워 보이거나, 전형적이지 않거나, 추가적인 단계가 있어 보이는 레시피가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매우 유명하고 전문적인 베이커리의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홈베이킹에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심플하다고 해 레시피를 읽어보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심플하고 편안한 레시피이다.

 레몬 파이 하면 바로 생각나는 것은 사실 없고,  레몬 타르트를 떠올리기는 하는데 이 파이에는 특이점이 있다. 부드러운 레몬 커드가 아니라 레몬을 껍질채 얇게 썰어 넣은 필링이 들어간다는 것. 파이 안에 두꺼운 레몬 껍질이라니...?

  

 

 이 파이의 정식 명칭은 Shaker Lemon Pie인데 여기서 'shaker'는 1700년대에 중서부 미국에서 설립된 기독교의 한 종파로 예수의 제2의 재림을 믿는, 쉽게 말해 '재림 신자 연합회'를 일컫는 말이다. 이 셰이커 집단은 주로 미국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레몬 재배가 불가능했다. 레몬은 shaker들이 처음으로 재배하지 못해 구입해야만 했던, 즉 최초로 'out sourcing' 된 과실이었다. 이후 레몬을 이용한 두 가지 파이가 발달했는데 그것이 흔하게 알고 있던 레몬 머랭 파이와, 껍질 까지 모두 사용했던 이 파이이다.

 레몬을 재배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 파이가 생겨나게 된 인과 관계는 사실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쉽게 구할 수 없으니 껍질도 버리지 않고 사용했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실질적으로 1950년대부터 셰이커 집단은 새로운 멤버를 들이는 것을 공식적으로 중단했고 현재 미국에는 단 두 명의 셰이커 멤버가 남아있다고 한다. 많은 셰이커들은 특출 난 베이커였으며 오늘날 베이킹 기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파이도 곧 셰이커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Shaker Lemon Pie

from <Tartine> by Elisabeth M. Prueiti & Chad Robertson (Chronicle Books 2006)

상기 책에서 발췌 후 번안된 레시피입니다.


Ingredients 재료

Pie Shell 파이 셸 (미리 구워 식혀 놓습니다)

이전 포스팅의 피칸파이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셸입니다.   


소금 1 tsp

아주 차가운 물 2/3 컵 (150ml)

(물에 소금을 섞은 뒤 냉동실에 잠시 넣습니다.)

다목적 중력분 3컵 + 2 Tbsp (455g)

무염버터, 아주 차가운 상태 1컵+5 Tbsp (300g) : 차가운 상태의 버터를 1.5cm 정도로 깍둑썰기 해서 다시 냉장해놓습니다.


*버터 양을 컵으로 계량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베이킹을 할 때는 전자저울을 가지고 계셔야 편합니다.  


Lemon Filling (12시간에서 최소 4시간 전에 만들어 재워 놓아야 한다)

레몬 2개

설탕 2컵 ( 395g)

왕란 4개

소금 1/4 tsp


달걀물

달걀 1개와 헤비 크림 1 Tbsp 믹스한 것


장식용 설탕


레몬을 최대한 얇게 썬다. 세로로 길게 잘라 도마 위에 안정적으로 놓으면 안전하게 썰 수 있다.

씨는 제거한다.

볼에 담은 레몬에 설탕을 넣고 잘 섞이도록 믹스한 뒤 랩을 씌워 실온에 4시간에서 하룻밤 정도 재운다.

남은 씨는 위로 떠오르니 그때 건져내면 된다.


냉장해 놓은 두 개의 파이 시트 중 하나를 파이접시나 분리형 타르트 틀에 얹고 밀착되도록 성형해준다.


재워 놓은 레몬에 달걀 4개를 풀어 믹스한다. 충분히 모두 섞은 뒤 준비해놓은 파이셸에 부어 담는다.

묽은 액체 상태이므로 레몬이 골고루 분배되도록 이리저리 휘저어 주면 좋다.

파이셸 테두리에 계란물을 묻힌 뒤, 나머지 파이 시트를 얹고 모양을 내어 크림핑 한다. 모양이 예쁘면 좋지만 그보다는 아래 시트와 위 시트를 완전히 밀봉해준다는 느낌으로 크림핑하면 된다


 베이킹 시트에 베이킹 페이퍼를 깔고 파이가 담긴 접시를 얹고 30분간 냉장한다. 냉장하는 동안 오븐을 176도로 예열한다.


냉장해 놓은 파이에 붓으로 달걀 물을 바르고, 베이킹 시트채로 넣고 굽는다.

20cm 지름 이하는 40분 정도, 그 이상 23cm 정도의 파이는 크기에 따라 60분에서 70분 정도 굽는다. 윗면이 너무 빨리 구워지거나 색이 어두워진다면 쿠킹 호일을 한 장 가볍게 얹어 놓는다.

시간 여유를 두고 충분히 구운 뒤 꺼내 한 숨 식힌 후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 따뜻한 상태에서 먹거나 완전히 식은 후 밀봉+냉장하여 3일 정도 보관 가능하다.





 이 파이의 셸은 기존 클래식한 파이 셸의 식감과 맛이다. 필링은 레몬의 상큼함과 상당한 양의 설탕의 단맛이  너무 시거나 달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필링의 식감은 끈적이지 않는 크리미 한 유자청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대신 더 상큼하고 쓰지 않은 레몬맛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커드와 잼에 중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도 처음 만나는 맛이었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레몬의 맛은, 갑작스럽게 어둠을 가르는 빛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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