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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 드라이브

by 고라니

화포 드라이브



길 끝에 긴 집 두 채

말 끝에 긴 침묵 두 묶음

화포는 회포 풀기 좋은 곳 같다 하니

너는 이맘때 연두가 제일 좋다 한다

꽃도 피지 않은 배롱나무를 알아보았다

나는 이 길의 배롱나무를 보는데

너는 다른 길의 배롱나무에 가 있다

내가 장맛비라 하자

너는 봄비를 한 참 보고 있으면

걷는 기분이 든다 했다

대화가 되질 않았다

네 옆에 누어 있던 목발이

달각 달각 신호를 보낸다

너는 빗속을 걷고 싶은 걸까

비 때문에 보이지 않는

화포 바다를 앞에 놓고

와이퍼로 닦아내니

너는 집에서 혼자다

너의 집 거실에서는 숲이 보인다고 했다

창을 열면 봄 숲 바람에 떠밀린

나무들이 달랑달랑 연두를 달고

너의 겨드랑이로 파고들면

연두를 끼고도는 너

너의 겨드랑이는 연두

너의 겨드랑이도 이맘때가 제일 좋겠다

연두로 공중에 살짝 떠 있는 너의 두 발

부력이 생긴 너의 마음 연두로 둥둥

봄이면 숲을 휘휘 몰아다

목발로 연두를 저어가며

집에 떠 있겠구나

대화보다 연두에 별을 그린다

대화 주변에 그려놓은 무수한 별표를 지우게 된 날

연두가 좋아 개명하고 싶은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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