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_이방인, 뫼르소는 밀크 커피를 좋아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내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인물이다.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내 이해의 영역에서 벗어난 해석과 판단이 불가능한 인물.
성인이 되어서도 까뮈의 '이방인'은 가끔 생각났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볕 아래서. 뫼르소와 태양은 동시에 떠올랐다. '이방인'은 한 마디로 모호하지만 강렬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이방인을 읽고 첫 문장부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죽었다고 한 것도 충격이었는데 다음 문장이 아주 가관이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엄마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겠다니. 이런... XXX 같으니라고.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단문에 빠져들었다.
세계문학전집은 대부분 책이 두껍고, 한 문장이 엿가락 늘어나듯 길었던 것 같다. 별로 안 궁금한 배경 묘사만 해도 어찌나 세세한지. 좀 지긋지긋한 데가 있었다. 독해력과 인내심을 테스트 한 뒤 통과한 자만이 이 책을 읽을 권리가 주어진다는 듯. 책장과 책장 사이의 장벽이 높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관문 앞에서 번번이 읽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방인'은 단문이라 읽기는 수월했다.
20여 년도 더 흐른 지금.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여전히 뫼르소는 낯설까. 지금은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까. 다시 읽는 이유는 결국, 그를 좀 더 이해하고 싶기 때문인가. 알고 싶기 때문인가. 알고자 하는 마음은 어떤 이유로 지속되고 멈추는가. 계속 알고 싶다면... 계속 모르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디귿 덕분에 '이방인'을 다시 읽게 되었지만 읽기 전부터 질문이 이어졌다.
뫼르소는 미뤄두고. 그나저나, 나는 디귿에 대해서 당시 무엇을 알았나. 지금은 무엇을 남겨두고 있나. 생각해 보면, 디귿을 첫사랑이라고는 했지만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외모를 제외하고는 사소한 취향 정도만 안다. 기억을 더듬 더듬어 보자. 뭐가 나오는지.
디귿은 보라색과 떡볶이를 좋아한다. (나도 보라색이 좋아졌다.) 요리를 잘한다. 거짓말을 못한다. 내가 떡볶이를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정말, 난감한 표정으로 먹어주었다. (심지어 많이 남겼다. 실패한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난 연습을 수차례 했었다. 하지만, 그날 국물이 아주 흥건한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당시 국물 떡볶이는 떡볶이 취급을 못 받았다. 차라리 연습하지 않았다면 성공적이었을지 모르겠다.)
전람회와 김건모 노래를 잘 부르고 기타를 잘 친다. 글씨를 잘 쓰고 건축학과를 입학했다. 군대에서 종종 전화를 했고, 내가 딱 한 번 울면서 '사랑한다'라고 말하자, 그는 "나도 그래."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휴가 나와서 주홍빛 돌이 들어있는 유리병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밸런타인데이, 종이 접기로 만든 색색의 장미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는 걸 사서 보냈는데 그는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를 손수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해 무척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내가 만든 게 아니라고 고백했다. 이런 고백은 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
그는 '어떡해'. 대신 '어떻해'라고 쓰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국문과지만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에게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었고, 자신이 양육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다. 내가 '사랑'은 흔한 단어 같다고 '사랑' 대신 '수렁'이라는 단어로 대치해 쓰자고 하니 그는 흔쾌히 오케이 해 주었다. (그냥 사랑이라고 쓰는 게 좋았을 것 같다. 결국 정말 수렁에 빠진 사이가 되어버렸다.)
써 보니 더욱 명확해진다. 나는 디귿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이 그냥 좋아했다. (디귿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한 것일까.) 그가 너무 좋았는데 함께 있으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나도 아는 게 없는 시험지를 받은 꿈처럼. 너무 긴장한 탓일까. 잠이 쏟아졌다. 꽤 여러 번 그를 만난 자리에서 10분씩 잠을 잤다. (지루해서가 아니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그저 졸려서 자겠다고만 했다.)
디귿의 동생을 보고 싶다고 하니, 동생과 함께 냇가에서 물놀이를 한 적이 있다. 나와 동생이 신나게 노는데 우리를 지켜보는 그가 좀 쓸쓸해 보였다. 놀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데 분명 즐거웠는데 나도 쓸쓸해졌다. 그가 제대하고 난 뒤 연락도 만남도 뜸해졌다. '끝'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방학 때 고향집에 내려가면 동아리 모임에서 그를 보았다. 디귿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노래방에서 불렀고 나는 끝까지 듣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이제 뫼르소 타임.
뫼르소는 밀크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이방인'을 다 읽었지만 아직 다른 건 도통 모르겠다. 밀크 커피를 좋아한다고 밝히는 문장은 유독 살아있다. 귀엽기까지 하다. (밀크 커피와 가장 비슷한 책으로 인용했음. 진한 밀크 커피를 좋아할 것 같아 서체도 볼드 했음.)
나는 밀크 커피를 매우 좋아하므로 그러라고 했다. (19p)
그리고 또 밀크 커피를 마셨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23p)
책의 뒷부분에 까뮈가 직접 뫼르소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 신빙성이 있겠다. 하지만, 뫼르소를 만든 까뮈도 뫼르소를 모를 수 있다는 점은 염두해야 한다. (엄마는 나를 낳았지만, 나를 잘 모른다. 엄마에게서 내가 나왔지만 나도 엄마를 잘 모른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합니다. (p151)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에 소설 지문이 나오면 인물의 말과 행동에 집중해 읽어야 문제 풀이에 유리했다. 뫼르소를 풀어보겠다는 아니지만 좀 더 살펴보고 귀 기울여 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한 번 읽고 '이방인'에 대해 말하지는 못 하겠다. 입이 안 떨어진다. 그가 죽은 엄마를 떠올리는 순간과 태양. 죽음을 앞두고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던 밤에 좀 더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