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뚝딱
당신은 예전의 자신을 가끔 떠올려보나요? 지금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지 궁금해요. 당신은 지금의 자신을 좋아하나요? 저는 나이 먹을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변수가 생기면 방법을 찾기보다는 쉽게 체념하고 무력해져 버려요.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도가 높아서 실수할 때가 허다해요. 종 잡을 수 없는 마음이 글을 쓰고 나면 좀 안정되어서 붙들고 있어요. 나아지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입원 3일 차, 오후 퇴원을 앞두고 있다. 엄마 눈은 쑥 꺼지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 오래 쳐다볼 수가 없다. 눈물이 터져버릴 게 빤하다. 심장내과 병동에 입원을 해보니 숨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엄마는 작년 가을부터 오르막을 걸을 때마다 숨이 넘어갈 듯 가빠지고, 평지도 쉬엄쉬엄이 아니라 쉬쉬쉬엄 쉬쉬쉬엄 걸어야 한다. 병실에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갑자기 한 걸음 내딛기 힘들 만큼 숨이 차서 병원에 입원한 분들도 있었다.
숨이 차오르더라고요.
나도 숨차서 왔어요.
딴 데가서 찍으니까 심장이 부었다고 하더라고요.
부정맥이 있어요. 슬쩍슬쩍 보였었는데... 이제는 부.정.맥. 보이나봐요.
친정 어머니가 심장이 안 좋으셨어요.
고대로 판박이.
심장도 안 좋으니까 척추도 안 좋더라고요
옆자리 할머니는 90세. 딱 봐도 호방한 기상. 눈도 부리부리. 목소리도 까랑까랑하다. 젊었을 때 뭘 해도 했을, 비범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얼굴 군데군데가 검게 멍들어 있었다. 방에서 넘어져서 쓰러진 채로 병원에 입원했다 한다. 호흡이 고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침을 한다.
앞자리 할머니는 부정맥 때문에 시술을 받으셨다. 집에 언제 가는지, 딸이 언제 오는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묻고 반복하신다. 막상 딸이 오니 갓난아이처럼 잠만 주무신다. 마음이 편안해졌나 보다.
할머니 두 분 다 계속해서 소변을 신경을 쓴다. 앞자리 할머니는 시술 전부터 계속해서 소변줄을 달고 있는데도 계속 화장실을 가려고 몸을 일으키려 하셨다. 옆자리 할머니는 기저귀 걱정까지 한다.
기저귀 갖다 놨어? 갖다 놓은 거 있어? 많이 갖다 놨어?
기저귀에다 오줌 싸면 자동으로 나와?
내가 요새 정신이 나가버렸어.
완전히 돌아버렸나 봐.
병원에서 빤스까지 다 줘? 기저귀도 주고?
똥도 그냥 누면 자네가 치우나?
내가 이렇게 모르나. 바본가.
누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줬어?
요양보호사가 일일구. 불러서 왔다고 하니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온다.
윤인구가 나를 데리고 왔어?
(윤인구 아나운서를 아는 앞자리 보호자와 나는 웃는다)
내가 이렇게 기억을 못 해서 어떡하냐.
과일은 사다 놓은 거 없네.
요양보호사 : 과일 드릴까? 과일 있어.
바나나 있어?
요양 보호사 : 바나나는 없고 사과 있어.
바나나는 먹으면 배가 불러.
바나나 있어?
옆자리 할머니는 없는 바나나만 자꾸 찾는다. 너무 간절하게 느껴져서 우리에게 남은 바나나 하나를 드리고 싶다. 하지만, 엄마도 퇴원하고 가는 길에 출출할지 몰라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는 창가에 둔 남은 바나나를 눈짓으로 가리킨다.
"할머니 바나나 드세요."
할머니는 내 눈을 보며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한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맛있게 드세요."
옆자리 할머니는 다른 음식은 통 드시질 못 했는데 바나나 하나는 뚝딱 드셨다. 커튼 너머로 또 한 번 고맙다고 인사했다. 어제의 할머니와는 전연 다른 사람이다.
"불 꺼! 불 꺼~~~~~!"
옆자리 할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잠들 수 없었다. 병원 복도 불빛이 병실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불편한 모양이었다. 복도 불은 끌 수 없다고 요양보호사와 간호사가 거듭 말해도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긴 시간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엄마는 계속 뒤척였고, 참다못한 어떤 분은 잠을 잘 수가 없다며 1인실로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성도 고성이지만, 가래가 들끓어 거칠고 불규칙한 할머니의 숨소리가 내 귀를 예민하게 했다. 이 병실의 모두는 잠들 수 없었다. 운이 없었다. 지난밤, 까칠하게 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던 내가 엄마는 좀 의외였다고 했다. 나도 내가 의외였다. 할머니에게 화가 나고 짜증스럽기보다는 이성의 줄을 놓아버린 할머니가 그저 안타까웠다. 잠들기를 포기하고 그저 고요히 쉬어지는 내 숨소리에 집중했다. 편안하게 숨을 쉰다는 게 당연하지 않은 거구나. 나도 늙어가고 있고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이해했다.
아침부터 옆자리 할머니는 여기가 어딘지. 몇 시인지. 언제 밥이 오는지. 계속 묻고, 또 묻는다. 신기하다. 뭐가 저렇게 궁금한 게 많을까. 할머니의 질문은 절박한 데가 있었다. 진짜 궁금하다기보다는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뭐라도 기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것 같다.
요양보호사는 어제의 일을 꺼냈다. 할머니가 하도 소리 질러서 모두 한숨도 못 잤다며 할머니에게 말하자 할머니는 여기가 어딘지 물었다. 병원이 아닌, 본인 집에 있는 줄 알았나 보다. 요양보호사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왜 그랬냐. 이제 그러지 말라"라고 하자 할머니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며 쪼그라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죽어갈지는 알 수 없다. 원하는 대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훨씬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아프지만 정신은 말짱하고 본인보다 내 잠을 내 밥을 내 얼굴을 더 걱정한다. 그게 사랑임을 안다. 엄마는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나를 보며 "150"이라고 말한다. 내가 갸웃하자 "오줌. 적어." 퇴원을 앞두고도 엄마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나는 볼펜을 쥐고 150을 적는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확연하게 몸이 안 좋아지는 엄마를 보면서 입원 첫날처럼 질질 짜고 있을 수만은 없다. 퇴원을 하면 이제 겨울보다는 봄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올봄에도 김밥 싸서 소풍은 어디로든 어떻게든 가보겠다. 벚꽃 아래 엄마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