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울과 불안을 잘 다루나요

밖에 나가고 싶어지는 양말

by 고라니

당신은 아침을 감각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바로 드나요? 저는 주로 새벽 3시나 4시에 잠이 깨어서 뒤척거리게 돼요. 다시 잠이 들지 않으면 영상을 틀어놓고 들어요.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가 7시면 몸을 일으켜요. 아침이 오면 어쩐지 실망스러워요. 일어나기 싫고 그렇다고 더 누워 있기도 싫은. 이도저도 싫은 상태로 일부러 이렇게 말해요. "오늘 하루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기도하듯 몇 번씩 되뇌어요. 오늘 아침에는 들기름 두 숟갈 넣은 황태 순두부국을 끓여 아침을 먹었습니다.


한 동안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3가지 방법', "우울증 이렇게 하세요."와 같은 카테고리의 영상을 매일 보았다. 시도하고 싶은 게 하나라도 걸려들길 바라면서. 꽤나 절박한 감정 끝에는 늘 실망이 따라왔다. 의사와 심리 상담사는 결국 같은 이야기다.

'몸을 움직여라. 방에만 있지 말고 산책이나 운동을 나가라.' 기껏 이 말 들으려고 눈 침침하고 목 아픈 거 참아가며 영상을 보았나. 조회수가 10만을 넘어가는 영상을 보아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시간 아깝고 허탈해졌지만 영상에 거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맞춤형 영상을 찾아 떠돌았다. 그거라도 해야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면 좀 달랐을까. 순천에서 광주까지 1년 정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닌 친구가 있다. 친구는 의사와의 상담 내용보다 예약 날짜에 방에서 벗어나 순천에서 광주까지 다닐 수 있는 힘이 생긴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심히 공감되었다. 방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 어렵다.


요즘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끔찍한 장면이 상상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를 못 본 자동차가 쌩쌩 달려오고 훅 치고 간다. 이용이용 구급차가 온다.


우울이 극심했을 때는 밥 먹을 가치도 없다며 스스로를 굶기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정서적인 학대를 일삼았다. 이불속에서 축 늘어진 채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의 반복. 끝도 없이 빠져드는 우울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게 문제였다. 단골카페 가듯 우울을 내 발로 찾아가는 듯도 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울할 때는 없었다. 우울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우울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소위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잘 나가다가 번아웃이 오고 우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만 영상에 나오는지도) 그들은 인정욕구가 강한 만큼 업무 성취도도 높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자신을 몰아붙이며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산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달랐다. 경력이 쌓일 정도로 꾸준하게 일을 하지도 못 했고 연애도 잘하지 못했다. 2, 30대 때는 우울이나 불안이 덮치면 책에 매달렸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40대의 우울과 불안은 책으로 소용이 없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모험심으로 충만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대학 1년을 휴학하고 국제 여객선 승무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20대 중반에는 한 달 넘게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30대 초반 두바이에서 1년 일했고 30대 중반 제주로 떠나 6년을 살았다. 지금도 그때처럼 살고 싶은가. 꿈도 못 꾼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끓어 넘치는 호기심이 지금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안의 미약한 힘은 남아 있다.


우울하고 불안한데, 산책과 운동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말이 쉽지 양말 한 짝 신기까지도 얼마나 힘든데. 산책과 운동을 나가는데 전 단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나는 지하에 있다. 지하에서 계단을 딛고 지상으로 올라와야 산책이 가능하다. 계단 한 단 밟기도 힘든데 산책이라니 무리수다.


산책과 운동에 힘주려다 놓친 부분이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다면 일단, 집 안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딱 한 가지를 찾아보자. 손빨래 당첨. 손수건, 양말 등 가벼운 빨랫감을 모아 조물조물 손빨래를 하고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너는 게 뿌듯했다. 수년 반복된 우울과 불안도 단련이 되는 걸까. 회복의 기미. 손빨래 덕분에 일상이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다.


다 못 해도 내 손으로 딱 한 가지만 해보자.


다 못 해도 이불은 개겠다. 다 못 해도 팬티는 세탁기 안 돌리고 내 손으로 빨겠다. 다, 못 해도 머리카락은 줍겠다. 다, 못 해도 세수는 하겠다. 다, 못 해도 손톱은 깎겠다. 다, 못 해도 희망도서는 신청하겠다.


이렇게 하다 보니 생각 없이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도 강도 높은 우울과 불안이 덮치면 다 못 하겠다. 하고 들어 누웠지만 누워서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다 못 해도 할 수 있는 한 가지' 목록을 만들고 추가와 삭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울 관련 영상을 보는 것보다 훨씬 이로웠다. 우울과 불안에는 돌파력보다는 지구력을 잃지 않는 게 포인트였다.


저절로 행동반경이 조금씩 넓어졌다. 방청소만 겨우 하던 내가 거실과 화장실 청소도 할 수 있었다. 볕 좋은 날은 마당에 머무르며 햇볕을 쬐었다. 마법 같이 나가고 싶지 않아도 집에서 5분 거리 카페는 갈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에 신청한 희망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책을 핑계로 나갈 일을 만들었다. 책을 연체할 수 없으니 또 나갔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깥세상을 만났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코다'를 보러 시내에 나갈 힘이 생겼고, 전주로 당일 영화 여행도 시작할 수 있었다.


거창하지 않게, 무겁지 않게, 본격적으로 말고 한 발짝씩, 야금야금, 스리슬쩍 하다 보면 서서히 힘이 붙는다. 그렇게 살면서 믿음이 생겼다. 우울과 불안은 왔다 갔다 한다는 것. 결코 계속 있지는 않는다는 것. 무기력할지라도 작디작은 힘을 낼 수 있는 기운은 결국, 생겨난다.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무얼 쓸지 모르는 상태로 글이 시작되었는데 끝을 향해 간다.


에스프레소 꼰빠냐 크림을 추가 결제할 수 있냐니, 휘핑크림을 한 잔 가득. 그냥 드시라며 내어준다. 카페 아르바이트 생의 넉넉한 마음에 기뻐하면서.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기쁨은 맛볼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방탈출에 성공하길. 무조건 밖으로만 내몰지 말고 마음에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하나 마련해 주면 좋겠다. 우울을 벗어나는 방법에 집중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샘솟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함께 움직여보면 어떨까.


나는 찌질하고 못났어. 그래. 머리를 감고 다시 생각해 보자. 머리 감으니, 좀 봐 줄만 한 걸. 내친김에 선크림도 발라 볼까. 나는 겁 많고 도망만 치는 비겁한 인간이야. 그래. 점심 메뉴로 떡볶이 어때? 계란도 곁들여. 떡볶이 앞에서는 도망칠 수 없지. 만두가 없는 게 아쉬워. 만두 사러 나갈까?


밖에 나가고 싶어지는 양말을 구매하는 것도 좋다. 내게는 캠핑용 백팩을 멘 곰이 새겨진 파란색 양말이 있다. 추운 겨울에도 이 양말을 보면 나가고 싶어져서 방에 있기 힘들었다. 당신에게도 밖에 나가고 싶어지는 양말이 생기기를 응원하며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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