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파전과 기억의 변주
오케스트라 공연장으로 당당하게 들어선 나는 맥이 턱 풀리고 말았다. 지휘자, 연주자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등장하지 않았고 심지어 객석까지 텅 비어 있었다. 나 혼자.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곳은, 실재의 연주가 아닌, 기억의 변주가 이루어지는 낯선 공간이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내 기억은 변주되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왜, 곧이곧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오래전부터 '콘트라베이스'는 주목받지 않는 인생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오케스트라 맨 뒤에서 묵묵히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주인공. 지휘자나 성악가처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곡의 조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 낮은음을 탄탄히 받쳐주는 그가 없다면 완벽한 연주는 있을 수 없지.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무사히 마치고 흡족해하는 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30년 가까이 기억하고 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를 요약해 보자면 이러했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 의해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번에 다시 읽은 '콘트라베이스'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완전 다른 책을 읽었다고 하는 편이 납득이 쉬울 것 같았다. 기억의 편집 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까지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섬뜩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 이야기들이 마구 흔들렸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주인공은 스스로를 최후의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고백하지 못하고 공상만 늘어놓는다. (이 점은 내 모습과 닮은 점이 있다) 단꿈에 부푼 고등학생이었을 나. 어째서 이렇게 찌질하고 우울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인생 1호 책을 '콘트라베이스'로 꼽았던 걸까. 그 시절 '콘트라베이스'를 읽고 있는 나에게서 책을 낚아채고 싶다. 희망적이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멋진 인물이 나오는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 저는 이런 상황에 종종 두려움을 느낍니다. 저는... 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집을 두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 두려움 때문에 집에 그냥 눌러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런 현상을 여러분께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까요. 뭔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고, 가위눌림 같은 것을 느끼며, 이런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공포로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밀폐 공포증이라든가, 고정된 직업을 가짐으로 해서 비롯된 정신 이상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콘트라베이스를 계속 다루면서 생겨난 거지요.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채 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 수는 없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베이스 연주자는 평생 동안 공무원 신분으로 남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p.98
그만두겠습니다. (...) 그렇게 되면 저는 자유로운 몸이 되겠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다음엔 무엇을 합니까? 그냥 길거리에 나 앉게 되는 겁니다. 절망적이지요. 어차피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저렇게 하든지.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p.100
이제 가 보겠습니다. 음악당으로 가서, 소리를 지르겠습니다. 그럴 용기만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내일 신문에 그것에 관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p.103
콘트라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고 싶은 인물.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 단체에 소속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을 박차고 나올 용기는 없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음악당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나가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다짐이라도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핑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음악당에서 연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술을 홀짝이며 또다시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겠지.
방에 틀어 박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열패감에 빠져 생각만 하는 그.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사실, 나는 단꿈에 부푼 고등학생이 전혀 아니었다. 가고 싶은 대학도 학과도 없었다. 그렇지만, 반에서 제일 크게 웃고 많이 웃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웃음을 내세웠다. 맨날 실실거리던 내게 한 친구가 신기하다는 투로 물었다. "너는 걱정이 있어? 고민이 하나도 없는 사람 같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보이고 싶었으니까. 학교에서는 마냥 웃는 사람이고 싶었다.
빨리 대학생이 되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탄광촌에서 멀리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광부였던 아빠는 술과 노름을 늘 달고 살았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오밤 중이라도 아빠를 찾으러 술집을 헤매고 다녔다. 그래야 엄마 걱정을 덜어 줄 수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커다란 나무 그림자가 춤추는 밤에 아빠를 찾으러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학교에 가면 아빠를 견디다 못한 엄마가 우리를 두고 도망갈까 봐 늘 불안했다. 엄마를 사랑했다기보다 눈치를 봤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집은 안전하지 않았고 편안함과 거리가 멀었다. 학교는 집에서의 나를 잊을 수 있는 장소였지만, 거기라고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명랑하고 밝은 척했던 내가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꼈던 공간이 학교 도서관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고 웃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공간에 있는 게 좋았다. 도서관 벽에 붙어 있는 '정숙'이라는 단어가 편안했다. 정숙은 숙미의 친구로도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나.
'콘트라베이스'는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책이었다. '콘트라베이스'가 아니었다면... 도서관에 다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친구와 함께 시내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양한 책뿐 아니라 잘생긴 오빠들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콘트라베이스' 덕분에 도서관을 만났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도 받았다. 그 시절의 나는 찌질할지언정 거짓 없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주인공에게 남다른 애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못 그랬으니까.)
집과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20년을 살다가 마흔이 넘어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돌아왔을까. 유년의 허기져 있던 마음이 서서히 비켜나고 그 자리에 엄마아빠가 주는 사랑으로 채워진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느낌. 처음 느껴본다. 내가 어떤 과일 닮았냐니 엄마는 "알밤."이라고 한다. "토실토실 예쁘잖아." 아빠도 "딱 닮았네." 맞장구를 친다. '이런 날 누가 사랑하겠어'라는 자책이 힘을 잃고 어떤 미친 지랄 맞은 모습을 보여도 사랑이 멈추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난다. 수수께끼 같은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꺾이지 않는다. 20년을 돌고 돌아 유년의 나를 재구성하고 있다.
과거의 앙상블*도 다시 연주할 수 있다.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도 계속 신세한탄만 하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애쓰고 있다. 2024년에 기억하는 '콘트라베이스'는 앞으로 또 어떻게 변주될까. 10년 뒤쯤, 1호 책 '콘트라베이스'를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과거의 파, 현재의 오징어, 미래의 당근은 밀가루 반죽과 뒤죽박죽 섞인다. 해물파전을 향해 함께 간다. 과거 따로 현재 따로 미래 따로의 해물파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파 쏙, 오징어 쏙, 당근 쏙 빼먹을 수도 있다.
해물파전을 떠올리며 침이 고이려는 찰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속 주인공이 매직아이처럼 마음속에서 입체 형상을 띄고 나타났다.
*앙상블 (프랑스어 : ensemble 1.함께 2.동시에 3.또한)은 전체적인 어울림이나 통일, '조화'로 순화한다는 의미의 프랑스어이며 음악에서 2인 이상이 하는 노래나 연주를 말한다.
-위키백과 中에서
*콘트라베이스는 바이올린류의 현악기 가운데 가장 크면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악기. 음색이 중후하고 웅대하다. 보통 네 현으로 되어 있고, 활로 켜거나 손가락으로 퉁겨 소리를 낸다. 오케스트라, 실내악에서 재즈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