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이곳으로 왔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땅, 낯선 집, 낯선 사람들.
그토록 오랜 시간 차를 탄 건 처음이었다.
창 밖으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빠른 것들이 궁금해져 나는 자꾸만 창문에 코를 박고 쳐다보았다. 다리가 아팠지만, 그 빠른 것들의 냄새를 맡고 싶다. 어떤 생물인지 정말 빠르다. 나는 저것들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나를 돌봐주던 내 주인은 빠르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나는 주인의 보조에 맞춰 천천히 걸어야 했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는데,
내 안에는 달리고 싶은 본능이 가끔 올라오곤 했다.
"하악!"
코를 박고 창 밖을 보다가 다리가 미끄러졌다. 다행히 아이가 나를 감싸 안았다.
이내 갑자기 어두워졌다.
나는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 운전을 하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그 옆의 여자.
나를 안고 있는 아이, 그 옆에 또 다른 아이.
나를 보며 웃고, 앉으라고 내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내가 왜 너희들의 말을 들어야 하냐.'
나는 그들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고 다시 창밖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어둠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창으로 쏟아져내려 눈이 부셨다.
차가 멈추고, 나에게 목줄을 채우는 사람들.
차들이 아주 많은 곳을 지나, 사람들도 많은 곳에서 여러 냄새를 맡는다.
너무 많은 냄새들 때문에 어지럽다. 먹을 것과 사람의 냄새, 온갖 물건들의 냄새.
이렇게 많은 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다니.
다른 개들도 있다. 너희도 나처럼 영문도 모른 채 가고 있는 것이냐.
잔디밭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잔디를 밟으니 나도 모르게 항문에 힘이 들어간다.
내 배안을 채우고 있던 녀석들이 시원하게 빠져나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내 흔적을 여기저기 남겼다.
나 여기에 왔다 갔다. 내가 이곳에 왔노라. 내가 이 세상에 왔노라.
간식을 손에 쥔 아이가 나에게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린다.
"앉아, 손! 코! 하이파이브!"
이런, 간식은 이길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꼬리가 흔들린다. 내 코는 간식 냄새를 맡아버렸고, 내 몸은 어서 달라고, 그 간식을 어서 내입에 넣으라고... 앞발을 내밀고, 코를 내밀고, 앞발을 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재롱을 다 피워버리고 말았다.
간식은 손에 넣었지만, 젠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다음엔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
다시 차를 탔다.
얼마만큼 더 가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창 밖을 계속 내다보다가 앉았다가 엎드렸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나이 든 사람이 나를 애틋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꼬미야"
나를 부른다.
나의 첫 주인. 내게 따뜻한 우유를 먹여가며 길러 준 사람.
내 어미처럼 따뜻하게 품을 내어준 사람. 그 품이 그리운 꿈이었다.
'덜컹. 끼익..'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나는 여전히 낯선 차 안에 갇혀 있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고, 운전하는 남자의 한숨이 깊어진다.
나를 안고 있던 아이는 잠이 들어 있다.
얼마나 더 갔을까.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반짝반짝 불빛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차가 드디어 완전히 멈추었다.
사람들은 짐을 내리고, 나도 내렸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 왔다.
서울.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서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