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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노트 Dec 01. 2024

서울개 Ep.9

병원

그 사람은 얼굴이 동그랗고 안경을 쓰고 있다.

나를 보고  웃고 있지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다.

내 다리를 만지고, 내 몸을 살펴보고, 내 눈에 빛을 쏘고, 나에게 날카로운 바늘을 꽂는 사람이다.


내 주인은 그 낯선 남자에게 나를 건네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있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나?

주인은 괜찮다고 나를 달래고 있다. 뭐가 괜찮은 건지 모르겠지만, 주인이 괜찮다고 하니 또 눈 한번 질끈 감고 참아본다.


얼마 전부터 눈이 가려워 비비기를 여러 차례.. 내 눈 안에 무언가 기어다는 것처럼 불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눈을 앞발로 비비는 것일 뿐..


남자와 남자를 도와주는 여자만 남고 주인은 나를 두고 나갔다.

무서워. 나를 두고 가지 마.

차가운 책상 위에 어둠이 깔리고 작고 환한 불빛만이 내 눈을 비치고 있다. 남자는 자꾸 내 눈을 아프게 한다. 괴롭다. 내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고 싶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못하게 여자들에게 꽉 잡혀있다.


차가운 물방울이 내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불이 켜지고, 주인이 들어왔다.

"안충인데요, 9마리  잡았어요. 안충은 초파리로부터 감염되는 거라, 수풀 많은 곳에서 주로 걸려요. 사람과는 다르게 개는 제3안검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주로 서식하거든요. 그래서 잘 안 보여요. 눈을 헤집어놓은 상태라 2주간은 절대로 눈을 비비게 해선 안돼요. 넥카라를 씌워드릴 테니, 절대로 벗기면 안 됩니다."


남자는 나의 목에 무시무한 깔때기 같은 걸 씌웠다. 목은 조여왔고, 시야는 가려져 옆을 볼 수 없었으며, 고개를 숙이기도 어려웠다.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의 느낌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 몸은 내 목에 씌워진 깔때기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주인은 움직이지 않는 나를 안고 집에 왔다.

내 앞에 차려진 사료를 나는 먹을 수 없었다. 주인은 손으로 먹여주려고 했으나 나는 입맛이 없었다. 이렇게 한동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의 안타까운 처지슬픔이 밀려들어 눈물이 났다. 약 때문인지, 처치를 받아서인지 내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인이 잠깐 목에 있는 걸 벗겨주었다. 나는 이제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해 힘을 내어 사료를 억지로 먹었다. 내가 사료를 먹자 주인들이 좋아한다. 그래 주인들이 좋아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식사를 마치자 다시 그 무시무시한 것을 내 목에 씌웠다.

"딸깍!"

그것이 채워질 때의 소리가 어찌나 크고 무서운지 나는 놀라 발버둥 쳤다.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건데! 왜!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난 너희가 시키는 거 다했잖아. 너희가 산책하자면 나가고, 자면 자고, 앉으라면 앉고, 코하면 코를 대고, 브이 하면 너희 손가락사이에 내 얼굴을 집어넣어 줬잖아!! 사료를 먹으라면 먹고, 사료가 바뀌어도 그냥 먹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너희가 주지 않으면 나는 떼를 쓰지도 않았다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뭘.. 내가 뭘!!!!!!


나는 등을 돌린 채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꼬미야.. 간식 줄게."


이제와 주면 뭐 하냐.. 난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해. 아니 안 해!


나는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리며 앉아있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밤이 지나고 날이 바뀌어 있었다.

주인은 내 목의 딱딱한 그것을 벗기고 동그란 꽃받침 같은 것을 대신 입혀주었다. 앞이 보이고, 물을 직접 먹을 수 있었다. 여전히 내 앞발은 내 눈에 닿지 않았고, 내 입은 내 복부에 닿을 수 없었지만 딱딱한 그것을 목에 두르고 있을 때보다 한결 편안해졌다.

주인들이 나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걸까?

나는 내 힘으로 사료를 먹고 물을 먹고, 꽃받침을 두르고도 아이와 함께 인형사냥놀이를 했다.

주인들은 매일 내 눈에 차가운 물방울을 넣었다.

그 불편하고 차가운 느낌은 계속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주인과 함께 그 남자를 만나러 갔다.

남자는 또다시 내 눈에 불빛을 쏜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또다시 여자들의 손에 결박되어 있었다.


"이제 좋아졌네요. 넥카라 벗겨도 괜찮겠어요. 고생했다. 꼬미야."

나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그래, 저 남자가 나를 아프게 하긴 했지만 나를 해치지는 않아. 그래도 자주 만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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