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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절대 가질 수 없는!

[ 아빠의 유산 ] 45

by 정원에

아이야


얼마 전 우리가 한참 주고받았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을 이야기해 볼게.


인생을 잘 산다는 건, 결국 잘 논다는 뜻이란다.


장자는 ‘잘 놀다 가는 것’을 인생의 완성이라 했고, 하위징아는 인간을 ‘노는 존재(호모 루덴스)’라 불렀지. 그 말은, 삶이란 난장의 무질서 속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유쾌하게 세워 가는 기술이라는 뜻이야.

잘 노는 사람은 실패를 실험으로 바꾸고, 문제를 미션으로 재구성하며, 타인의 시선을 관객으로 전환할 줄 아는 사람이지. 그들은 ‘통제’가 아니라 ‘흐름’을 타고, ‘계획’이 아니라 ‘감각’으로 살아.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아빠가 어릴 적 세상과 달라. 그땐 숲 속 본부나 얼음배처럼 경계가 분명한 놀이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경계 없는 디지털 난장이 되어 버렸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난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지.

AI가 인간의 지성을 모방하고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아빠는 감히 ‘예측 불가능한 놀이’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 생각을 대신하고, 심지어 꿈꾸는 방식까지 흉내 내는 시대. 거의 모든 것이 예측되고 최적화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마지막 존엄은 어디에 있겠니? 그래서 아빠는 더더욱 ‘놀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란다.

AI는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지만, 논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실패를 데이터로 무한히 학습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새로운 놀이의 출발점으로 삼는 창조적 전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놀이는, 불확실함과 실패, 우연과 모순을 사랑하는 태도이기 때문이야. 그건 감정과 상상, 그리고 존재의 유희가 만들어 내는 인간만의 창조적 본능이지.


바로 여기에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단 하나의 유산이 있단다. 삶이 던지는 고통과 권태 ‘사이 구간’으로 내던져진 난장을, 기꺼이 자신만의 장난으로 받아치는 태도. 이것이 AI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응답 방식이자,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 말이야. 그게 인간의 근원적 경쟁력이자,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노는 근육’을 침범할 수 없는 인간성의 최전선이거든.

그러니 아빠의 말을 기억하렴.


삶이 네게 난장을 던지거든,

너는 그것을 장난으로 받아쳐라.

장난은 곧 놀이가 되고,

놀이가 쌓이면 사유가 되며,

그 사유가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길!


이라는 것을.



아이야,

네가 어릴 때, 우리 넷이 함께 가꾸던 텃밭에서 아빠한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어.

“아빠, 방울토마토랑 깻잎 심은 땅 옆, '노는 땅'에는 뭘 심을 거야?

돌아보면 그때는 네가, 비어 있는 텃밭을 왜 '노는 땅'이라고 말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어. 그런데 이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단다. ‘쉰생아’에게 새로운 사명이 생긴 덕분이지. 물론 그 사명은 오로지 모든 게 너 덕분에 얻은 것이고.

아빠의 사명은 아빠의 ‘어린 나’가


매일 비밀 서버에 접속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

그 ‘어린 나’와 함께 ‘노는 근육’을 제대로 키워내는 것,

그 근육으로 난장 속에서 아빠만의 ‘노는 땅’을 넓게 일구는 것,

이 과정을 고스란히 너에게 남겨 주기 위해 꾸준하게 기록하는 것!

이제 아빠가 네가 묻고 싶어.

너는 이제 어떤 난장에서 놀고 있니?

그 속에서 어떤 ‘노는 땅’을 발견했니?


그 땅이 남들이 보기엔 황무지처럼 보여도 괜찮아.

그곳은 너만의 본부이자, 다시 태어나는 발코니가 될 테니까.

그곳에서 자라나는 건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삶을 새롭게 해석하는 너만의 방식, 즉, ‘사는 일’과 ‘노는 일’을 구분하지 않는 진짜 인간의 태도일 거야.

아빠는 이제야 알겠어.

사는 일과 노는 일은 둘이 아니더라.

사는 일이 깊어질수록 놀이는 자유로워지고,

놀이가 진심일수록 삶은 단단해진다.

그러니, 네가 살아 있는 한 놀아라, 끝없이.

그것이 바로, 너라는 존재의 가장 찬란한 증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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