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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하기에 더욱 찬란한 것들에게

[ 아빠의 유산 ] 48

by 정원에

사랑하는 아이야

오늘 아빠는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서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단다.


2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png




이 문장을 필사하며, ‘기쁨’에 대해 생각해 봤어. 어제와 꼭 같은 오늘 같지만, 우리는 의외로 수많은 ‘기쁨’을 만난단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들은 항상 길게 머물러 주지는 않아. 기쁜 순간은 금방 스쳐 지나가고, 마음을 데우던 온기는 어느새 식어버리지.

새로운 기쁨이 갓 지은 듯했던 이전의 기쁜 감격을 연기처럼 날려버리기 때문이야.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쉬워하고, 붙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곤 하면서도 다시 찾아온 작은 기쁨들을 다시 흘려보내고 말지.

아빠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순간을 더 귀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러면서 ‘유한함’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것을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여름꽃, 능소화가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는 건 아닐까?

만약 능소화가 일 년 내내 피어있다면, 너는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고, 짧은 개화 기간에 맞춰 산책을 하며 사진에 담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탄성을 지르지 않을지도 몰라.


일주일 남짓, 찬란하게 피었다가 미련 없이 지기 때문에 능소화는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겠지. 이처럼 너는 앞으로 수없이 많은 ‘짧은 기쁨’을 만나게 될 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아쉬운 수다, 네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다 느끼는 작은 성취, 유난히 맑게 느껴지는 새벽 공기,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듯한 산들바람,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가을 햇살을 마음껏 쬐는 순간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은 금방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더욱 마음 깊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머물지 않기에 더 고맙고, 다시 오지 않기에 더 소중한 거야.


아빠는 네가 삶에서 그런 순간들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오래가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크다고 해서 더 귀한 것도 아니란다. 혹시 지나가는 '찰나'가 네 마음을 흔든다면, 이미 그건 너의 것이거든.

언젠가 네가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는 날이 와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해 줘. 한때 네 곁에 있었고, 너를 웃게 했고, 너를 성장시켰다는 사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릴케가 말한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사라지기에, 우리도 언젠가는 서로 사라지기에, ‘지금’을 더 깊이 나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러니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수많은 기쁨의 순간들을, 그것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지금 내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는 마음으로 그 순간의 공기, 빛깔, 감정, 향기를 온몸으로 만끽하렴.

기쁨은

길이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로 남는 법이고,

크기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빈도로 남는 법이거든!


오늘 아빠가 필사한 문장은 결국 이런 말을 속삭이는 것 같았어.


“너는 네가 사랑한 순간만큼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이 마음을 너에게 남겨 두고 싶었단다.


언제든 마음이 흔들릴 때, 혹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기쁨 앞에서 아쉬움이 남을 때, 이 문장이 너에게 작은 등불이 되었으면 해.

너의 삶이 얼마나 길든, 너에게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들은 더 짧을 수 있어. 그러니 그 짧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때마다 마음을 활짝 열어 환하게 맞아주렴. 그게 인생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란다. 아쉬움이 습관이 되지 않게!

어느 좋은 가을날 새벽,

너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영원할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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