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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n 09. 2018

맥스웰의 빛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태동 : 상대성 이론

물질 세상의 가장 근원적인 원리를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욕구 중 하나일 것입니다. 20세기에는 이런 의미에서 그 이전 수천년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의미있는 발견들이 이루어졌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과실을 주로 핸드폰과 같은 공학적인 결과물로 접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사는 분들을 위하여 이 글을 시작으로 몇 편의 글을 통하여 19세기 중반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물질에 대하여 밝혀진 굵직한 이야기들을 풀어가고자 하였는데, 총 22편으로 완성된 이 글들을 최근에 두 권의 브런치 북으로 모았습니다. 그 중 상대성 이론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빛과 우주, 그리고 시간의 물리학"의 첫 단추로 20세기 현대 물리가 가능하게 한 Maxwell과 Einstein의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현대 물리학의 또다른 축인 양자 물리학에 대한 것은 "온 세상이 떨고 있다"에 담았습니다. 수식 사용을 자제하다보니 피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만, 이 수필같은 글들의 거의 매 문단 마다 그 뒤에 숨어있는 정교한 과학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래 글은 2017년 네이버 열린 연단 강의록에서 일부 발췌하여 편집한 것이며, https://tv.naver.com/v/1942426 , 2021년 KAOS재단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상대론에 대한 온라인 강연에서 처음 20분 분량에 다시 사용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fvEKRRZio .)






현대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일 것이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905년에, 네 편의 짧은 논문들을 출간하면서 20세기 과학을 한 순간에 열어버린 인물이다.


흔히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올리는 상대성 이론 역시 이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중 두 편의 논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설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상대성이론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는 특히 빛이라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현상이 매우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였는데, 오늘은 이를 중심으로 상대성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볼 생각이다.   


한편, 물리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듯이, 1905년 네 논문들 중에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는 상대성이론이 아닌 소위 광전효과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 역시 빛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까지 주로 파동이라고 생각해오던 빛이 사실은 광자라는 입자가 무수히 많이 모여 만들어지는 현상으로도 보아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당시까지의 물리학으로는 설명이 잘 안되던 광전효과를 깔끔하고 단순하게 설명함으로써, 이때까지만 해도 플랑크 등에 의하여 간접적인 가설로서 제안되던 양자 현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역할을 하였다. 흔히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이 상대론과 양자역학이라고 하니, 이 두 가지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의 영향력은, 감히 평가한다는 것이 송구스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에, 반드시 함께 언급되어야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라고 하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 과학자이다. 그가 만든 것이 그 유명한, 그리고 이공계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과도 같았을, 맥스웰 방정식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어떤 형태이건 한 번은 풀어보고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물리학 그리고 상당수 공학 분야의 교육 과정인데, 이는 곧 현대의 과학기술에서 맥스웰 방정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맥스웰 방정식은 흔히 전자기 방정식 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전자기는 전기와 자기를 합친 말이다. 자기라고 하면 자석이나 나침반등으로 고대로부터 비교적 흔히 접해온 현상이고, 이보다 조금 더 나중에 발견된 전기는 번개 혹은 정전기 같은 현상, 그리고 지금은 배터리와 같은 많은 개인 기구의 동력원을 통칭하는 말로서 친숙하다. 19세기 물리학의 가장 큰 발견이라면 이 두 가지 현상이 실은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인데, 이를 1861-1873년 사이에 이론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맥스웰 방정식이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백열전구와 유선 전화, 20세기 대중문화를 대변하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그리고 소위 3차 및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컴퓨터 관련 기술들, 어느 하나 전자기 현상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없다. 조금 더 근원적으로 보자면 생명 현상 역시 대부분 매우 복잡한 전자기 작용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전자기 현상을 조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이 맥스웰 방정식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물리법칙들은 맥스웰이 태어난 1831년 전후로 거의 완성되었다. 18세기 말 발견된 Coulomb의 법칙, 그 이후 1830년대에 출현한 Gauss의 법칙, Ampere의 법칙, Faraday의 자기유도 등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에 반해 맥스웰 방정식이 정립되는 시기는 1860-1870년대로,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발견들과 최소한 30년의 간극의 존재한다.


위의 발견들을 통해서 전기와 자기가 한 가지 근원을 가지고 있음은 어느 정도 이해되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의 체계로 완성되지 못한 채, 혹은 무엇이 빠졌는지 모르는 채 30여 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맥스웰이, 빠져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하여 새로운 실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앞서간 사람들이 발견하고 정리한 법칙들에 단지 “숟가락” 하나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숟가락”은 가히 현대 과학과 기술 문명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학창 시절, 전기와 자기에 대하여 배운 기억이 있는 분들은 여기 등장하는 상수 두 가지를 기억할 수 도 있겠다. 전기 유전율과 자기 투과율이라는 녀석들로서, 흔히 그리스 문자로 ε과 μ라고 쓴다. 전자들이 서로 밀쳐내는 척력이 얼마나 크며 못에 감긴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얼마나 센 전자석이 생기는지를 말해주는, 쿨롱의 법칙과 앙페르의 법칙에 각기 들어가는 상수들이다.


전자와 같이 전하를 가진 물질이 있으면 이들 사이에 척력 혹은 인력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소위 쿨롱의 법칙이다. 앙페르의 법칙은 전자들이 일정하게 움직여서 전류를 만들면 자석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전자라는 한 가지 물체가 가만히 서 있느냐 혹은 움직이느냐에 따라 두 가지 전혀 다른 현상이 발생한다는 말인데, 따라서 이 두 상수 역시 무언가에 의해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19세기에는 이미 ε과 μ가 비교적 엄밀하게 측정되기 시작하였는데, 1855년에 Wilhelm Weber와 Rudolf Kohlrausch라는 두 사람이 희한한 발견을 한다. 이 두 상수를 서로 곱한 후, 1을 이 곱으로 나누어 주면 어떤 속도의 제곱이 나오는데, 이 속도가 대략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것이었다.


1/(ε x μ) ~ (300,000km/sec)^2     

                                              

여기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점은, 지금이야 초등학생들도 곧바로 알아차릴 테지만, 당시가 직접적인 광속 측정이 겨우 시작하던 시절이어서였는지, 이들은 이 중요한 “우연”을 간과하였다고 한다.  


한편, 역시 1830년대에 패러데이 등은 자석을 흔들면, 즉 자기력에 변화를 주면, 이로 인해 전하를 움직이게 하는 전기력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전하는 원래 전기의 힘을 만드는 것인데, 전하를 움직이면 자기력이 생기고, 그 자기력을 흔들었더니 다시 전기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전하와 전류, 그리고 전기와 자기 사이에 이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 여기까지의 이야기인데, 유독 전기력이 흔들리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전기력이 전하에서 나오고(쿨롱의 법칙), 전하가 움직이면서 자기력이 생긴다면(앙페르의 법칙), 전기력이 움직여도 자기력이 생겨야 말이 될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 말을 하고 나면, 이를 수식으로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를 찾아보게 될 것인데, 이 새로운 법칙의 형태가 위의 패러데이의 자기유도식에서 전기와 자기의 역할을 교환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비교적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렇게 빠져있던 항을 하나 추가해서 이를 통해 전기력과 자기력의 서로 물고 물리는 공생관계를 수학적으로 기술한 것이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이다.


전자기 이론을 완성한 맥스웰의 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굳이 “숟가락을 얹었다”라고 한 이유는, 첫째, 새로운 실험을 해서 알아낸 발견이 아니며, 두 번째로는 알고 보면 그 이전까지의 법칙들이 이 새로운 항을 추가하지 않으면 실은 수학적인 상호 모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0% 추론만으로, 이만큼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한 경우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편, 무언가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있을 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 주기적인 운동인데, 놀이터의 시소를 생각하면 된다. 영희 쪽 시소가 내려가면 철수의 시소는 올라가고, 그 무게를 못 이겨 철수 쪽 시소가 떨어지면 영희 쪽 시소가 올라가고, 둘 중 하나가 지칠 때까지 이를 반복할 수 있다. 전기와 자기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이 두 가지 힘이 서로를 이끌어 주는 주기적인 운동의 형태로서의 파동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파동을 전자기파라고 한다.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을 풀면 이 파동의 속도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나는데, 그 값이 이미 위에서 한번 언급한 약 300,000km/sec이다. 그리고, 역시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속도는 당시 측정되기 시작한 빛의 속도와 매우 유사하다.


아! 그러면 혹시 빛 역시 전자기파의 특수한 형태일까? 맥스웰이 이 생각에 다다른 것이 1865년의 일이라고 한다.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일 수도 있겠다는 이 생각,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의 근원인 원자를 만드는 기본적인 힘이 이 전기와 자기에 있다는 다음 세대의 학자들의 발견이 현대문명에 끼친 영향은, 그리고 앞으로도 끼칠 영향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한편, 물리 법칙 자체에 무언가의 속도가 상수로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어떤 물체의 속도가, 물리학적 법칙에 의하여 특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 상공 바람의 속도는 당일 주변 고기압과 저기압 분포로 결정된다. 유현진 투수의 피칭은 그날 몸 상태에 따라 혹은 해당 타자를 처리하는 전술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한강의 유속은 지난 며칠 강수량에 따라도 달라질 것이고, 구간마다 또 다를 것이다. 즉 물체 혹은 파동의 속도는 거의 예외없이 환경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더구나, 속도는 항상 상대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한강변을 따라 움직이는 자전거 족들 속도는 대략 시속 20km 부근이지만, 함께 움직이고 있는 한 떼의 자전거 동호회원들에게 서로의 속도는 시속 0km에 가까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건의 속도가 물리 법칙의 일부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환경적이고, 전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유독 빛의 속도는 전기와 자기의 법칙들을 모아놓은 맥스웰 방정식의 일부로 구현된다.  


19세기 말 이론가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 중 가장 큰 것이 여기에 있었다. 맥스웰 방정식에, ε 와 μ라는 두 상수들로 나뉘어 녹아들어가 있는 빛의 속도는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본 속도이며, 왜 굳이 자연법칙의 일부로 나타나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으로 19세기 학자들의 가설로 내세운 것이 “에테르”라고 하는 우주 전체에 분포하는, 그리고 공간의 기준이 되는 매질이었다. 소리가 공기의 파동이듯이, 이 에테르라는 매질의 파동이 빛이고, 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매질을 기준으로 잰 빛의 속도가 초속 300,000km이라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당시의 생각은, 상대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Michelson과 Morley 두 사람의 실험을 통하여, 그리고 이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 의하여 머지않아 폐기되었다. Michelson-Morley 실험은 에테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지구를 기준으로 하면 빛의 방향에 따라 그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비교적 상식적인 가설을 검증하려는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빛의 방향이 동서남북 어느 쪽이건 간에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검증하게 되었다. 빛의 속도는, 특이하게도 상대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에테르 가설이 옳지 않을 것이라는 매우 직접적인 증거를 준 셈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이 Michelson과 Morley의 실험 결과보다는, 에테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부분 때문에, 그리고 맥스웰 이론의 구조 자체 때문에 특수상대론을 설파했다고 한다. 에테르가 실제로 있었다면 일어났을 묘한 상황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안드로메다 은하에 가기 위해 은하철도 999에 탑승해 보자. 무료한 기차 여행을 위해 노트북과 mp3 player를 하나씩 챙기고 음악을 들으면서 우주여행을 떠나보자.  


에테르 가설의 주장은 맥스웰 방정식이 유효한 것은 에테르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 그런 것이고, 지구의 속도가 어쩌다 보니 크지 않아서 에테르 입장에서는 정지해 있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기 지구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차가 안드로메다를 향해 가속을 시작하면, 속도는 점점 커져 빛의 속도에 접근할 것이고, 맥스웰 방정식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노트북과 mp3의 작동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의 상당 부분이 맥스웰 방정식에 온전히 담겨있으므로, 이 기계들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아니라도 전혀 다른 짓을 하게 될 것이다. 기차가 움직이는 쪽과 그 반대쪽으로의 빛의 속도가 서로 다를 것이므로 mp3를 놓는 방향에 따라서도 다른 소리가 날 것임에 분명하다. 노트북 역시 이상한 짓을 할 것이고, 어쩌면 1+1=3이라는 계산을 해버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자체 만으로는 모순은 아니지만, 과연 이럴까 하는 자연스러운 의구심이 든다. 사실 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너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비행기가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 비행기가 길쭉하게 생겼고, 앞뒤가 분명하니, 앞쪽으로 날아가고 있겠거니 생각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빛의 매질로서의 에테르가 실존한다면, 그리고 내가 탑승한 은하철도 999가 광속에 근접한 혹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면 이런 자연스러운 경험과는 많이 다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이럴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절대적인 에테르가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빛의 속도와 맥스웰 방정식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은하철도 999 안에서도 빛은 여전히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초속 300,000km로 전파된다는 특수상대성 이론의 주장이 옳다면, 갈릴레오에서 시작하여 19세기까지 내려오던 너무나 상식적인 관점을 버리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서로 섞여버리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치해야 한다.

  

인간이 인지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모두 뒤집어 버린, 그래서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대론이지만, 사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물리학자가 마주치고 대답해야 하는 부조리는 훨씬 더 다양하고 이상하다. 상대론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최소한 mp3가 재생하는 음악소리에 대하여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은하철도 999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래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가는데, 지구 기준으로 최소한 이백오십만 년이나 걸리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당신이 들고 탄 mp3는 계속 같은 음악을 재생해 줄 것이다.


위에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일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 어떤 물체도 빛의 속도 c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속도 v로 움직이는 질량이 m 인 물체가 가지는 특수상대성 이론 에너지 공식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E =  mc^2/(1-v^2/c^2)^(1/2)

    

아무리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도 v가 c보다 커질 수는 없도록 되어 있다. 물론 위 식에서 물체가 정지해 있는 경우가 그 유명한 E=mc^2가 되겠다. 우주 모험을 꿈꾸는 어린이들에게는, 이런 과학적 사실이 매우 불편한 제약이다. 공상과학 영화에서야 워프 드라이브나 웜홀이라고 부르는 편리한 장치를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실제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이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는, 즉 에너지가 무한대가 아니면서 v=c 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질량 m이 역시 0인 경우인데, 이 것을 만족하는 대표적인 것이 빛 혹은 광자이다. 이 경우 v=c 가 되면서 위 에너지 식의 분자와 분모가 각각 0이 되는데, 이는 질량이 없는 빛의 경우 에너지가 표현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담이지만, 빛이 가진 에너지가 어떻게 표현되느냐 하는 문제는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빛 역시 질량이 없는 광자라는 입자들의 모음”이라는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맥스웰 방정식의 출현은 단순히 전자기 현상의 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상식적인 과학의 탄생을 위한 서곡이었기도 한데, 가장 잘 알려진 예를 들자면, 소위 “action at a distance” 문제이다. 절대적인 개념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이 득세한 근대의 물리학에서는 별과 별 사이의 중력이 “순간적으로” 전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이 그러했다.


예를 들어, 오늘 자정에 달을 폭파해 버리면, 이백오십만 광년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인이 그 순간 중력의 변화를 잘 감지하여 이를 동시에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창조자로서의 신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으나, 물질적인 세계관이 점점 자연스러워지던 19세기 학자들에게, 이미 매우 비상식적인 주장이었는데, 상대론은 이런 “action at a distance”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중력 역시 빛 보다 빨리 전해질 수 없다는 말이 되므로, 뉴턴의 만유인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중력 이론이 필요했다. 그 결과물이 물론 일반상대성 이론이며, 그 안에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중력의 파동 즉 중력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검증은 일반상대론의 발표 시점인 1915년 11월에서부터 거의 정확히 100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는데, 라이고(LIGO)라는 실험 팀에 의하여 2015년 9월에 첫 중력파 신호가 관측되었다.


거의 모든 물리학자들이 곧 이에 대한 노벨상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실제 2017년에, 논문이 발표된 지 채 2년이 되기 전에, Rainer Weiss, Kip Thorne,  Barry Barish 3인에게 전격적으로 수여되었다. 불행히도 Weiss와 함께 이 실험을 실제로 만든 Ron Drever는 노벨상 1년을 앞두고 사망하여 사실 실험의 디자인과는 큰 상관이 없었고 실험팀을 이끄는 행정적인 역할을 한 Barish가 상을 받게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제목의 사진은 Phil Whitehouse님이 Creative Commons를 통하여 제공한 것임을 밝힙니다.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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