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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Aug 22. 2020

나의 상대론적 나이는?

상대성 이론에 관한 흔한 오해를 풀어보자


최근에 모 고등학교에서 과학 강연을 하기로 약속한 적이 있는데, 물론 학교 방송 장비를 사용한 비대면/대면 복합으로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며칠을 앞두고 재 확산된 코로나로 인하여 결국은 취소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 제게 전해진, 학생들의 질문 중 하나가 상대성 이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쌍둥이 패러독스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줘야 이 친구가 시원해할까 하고 한 10여분 고민을 했었지요. 결과물이 충분히 시원할지는 모르겠으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흔한 오해를 하나 정리할 기회인 듯하여 여기에 몇 마디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최근 온라인 강연의 일부로 재구성되어 업로드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fvEKRRZio )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작가에게 가끔 민원이라는 형태로 숙제가 오곤 한다. 재야에서 혼자의 힘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분들 중에는 본인 나름의 이론을 만들어 놓고 이를 들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여럿 계시다. 주류의 학자들이 보기에 미진한 경우가 절대다수인지라, 그리고 독학으로 공부를 하시다 보니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받아들일 역량이 안 되는 통에, 갈등이 생기고, 그 일부 분들이 청와대 등을 통해 민원을 넣으면, 관계 부처는 답변의 의무를 국책 연구소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넘기곤 한다.


작가에게 날아오는 이런 이야기의 절반 정도는 상대성 이론 혹은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이런 민원을 넣는 분들의 패착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의 문제를 자연인의 인식 범주에 근거한 논리의 문제와 혼동한다는데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궁금하면 여기로.... 


상대성 이론에 대한 딴지들이 특히 많은데, 이는 물론 그만큼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라는 말이다. 이에 비하여 양자 역학에 대한 투덜거림은 조금 덜 하다. 진입 장벽도 더 높고,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과 달리, 스파링 상대로 할만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불분명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한다. 20세기 초 상대성 이론이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그 시기부터 이 새로운 체계에 대한 온갖 오해는 수없이 재생산되어온 것이고, 사실 과학책들을 좀 읽은 분들에게, 그리고 간혹은 물리학을 전공하는 분들에게도 조차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 중, 가장 흔한 수다거리 하나로 쌍둥이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패러독스," 혹은 한국어로 "역설"은 여러 가지의 논리적 오류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데, 물론 쌍둥이의 역설은 상대론적으로 확장된 시간의 개념이,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는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시간이 흐르는 방식에 변화를 준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를 보여주고자 제안된 것이다. 뭐 대충 풀어보자면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0) 일단 등속 운동을 하는 모든 관찰자는 그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말해주는 관성계를 하나씩 달고 다닌다. 1) 모든 관성계는 서로 동등하다. 즉 모든 등속 운동을 하는 관찰자는 동등하다. 2) 관성계를 기준으로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3) 관성계 A를 쓰고 있는 관찰자 a의 입장에서는 관찰자 b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곧 a가 보기에 b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4) 그런데 관찰자 b는 자신이 사용하는 관성계 B를 기준으로는 물론 거꾸로 a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므로 a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생각한다. 5) 이 두 관점은 서로 모순이 되는데, 두 관성계가 정말로 동등하다누가 옳은?


성능 좋은 로켓을 타고 빠른 속도로 멀리 있는 별을 다녀온 쌍둥이 형이 지구에 가만히 있던 동생보다 나이를 천천히 먹는다는 주장과, 관성계는 동등하니 형 입장에서는 동생이 움직인 것이고, 그래서 오히려 동생이 나이를 천천히 먹는다고 생각할 거라는 또 다른 주장 사이의 이 상호모순을 쌍둥이의 역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옳은 답은 단순하다. 로켓의 속도가 정말로 광속에 가까웠다면, 이를 타고 "멀리 다녀온 형이 나이를 덜 먹는다"라는 말이 옳다. 이 결론 어디에도 역설은 없다.




특수 상대론을 조금 더 배운 사람들은 이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형은 사실 등속 운동을 한 게 아니라 출발할 때, 반환점 찍을 때, 그리고 도착할 때 등 등, 여러 차례 가속 혹은 감속 운동을 했으므로 그의 시간은 관성계와 상관없고 따라서 그의 관점은 동생의 그것과 동등하게 받아줄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이 마지막 설명이 충분히 좋은 답일까? 무언가 속고 있다는 생각이 진하게 듣다면 당신은 매우 건전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축하해 주어도 좋다.


방금의 이 설명은, 형이 탄 로켓을 지구 밖 다른 곳에서 미리 발사하여 지구를 지날 때 즈음에는 등속 운동을 하게 하고, 한편 지구를 향해 등속 운동으로 접근하고 있던 외계인 하나를 미리 섭외하면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지구를 지나면서 동생과 시계를 한번 동기화하고, 태양계 밖 어딘가에서 서로 지나치면서 외계인의 시계와 형의 시계를 동기화한 후, 마지막으로 이 외계인이 지구를 지나면서 동생과 시간을 비교하면, 가속이나 감속 전혀 없이 흐른 시간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굳이 형이 가속과 감속을 여러 차례 하면서까지 돌아올 필요가 없으니 만일 정말 가속 운동이 섞여 들어오는 때문에 이 문제가 사라진 것이라면, 이렇게 조금만 신경을 써 주면 이 역설을 되살려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은 이 경우에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데, 따라서 쌍둥이의 역설이 감 가속으로 해소된다는 말은 100% 온전한 설명이 아니다.  


외계인까지 섭외하는 마당에 한발 더 나아가서 아예 우주의 모습을 바꾸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우주의 구체적인 모습과는 상관없는, 이론의 정합성에 대한 논쟁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즉 상대론이 근거하는 기본 원리에 대한 질문들이므로, 이 쌍둥이가 조금 다른 모습의 우주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아도 좋다. 우주가 대체로 평평한데, 다만 어느 특정 방향으로 1광년을 직진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A4 용지를 둥글게 감아 가운데가 비어있는 실린더를 만들고 감긴 그 A4용지 표면이 우리 우주라고 상상하면 비교적 정확한 그림이 된다.


자, 이제, 쌍둥이의 역설을 업그레이드해보자. 이번에는 형이 이 특정 방향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계속 움직이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광속의 1/2로 날아가고 있다면 동생의 입장에서 보면 형이 2년에 한 번씩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셈인데, 그때마다 서로의 시계를 확인한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이런 상황에서 형은 가속 운동이 아닌 등속 운동을 하고 았다는 사실이다. 원심력이 무엇인지 배운 학생은 아마도 "원을 따라 움직이는데 왜 등속 운동이냐"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원" 자체가 시공간의 모습이며, 그 원의 내부라는 것이 공간의 일부로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3차원 공간에 임의로 2차원의 원을 그려 놓고 그 원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가속 운동이지만, 공간 차제가 2차원 평면과 1차원 원의 곱으로 만들이진 위의 경우, 그 원을 따라가는 소위 Geodesic이라는게 있고, 모든 Geodesic은 등속운동에 해당한다. 


이 상황에서 동생은 자기에 비하여 점점 더 젊어지는 형의 모습을 2년에 한 번씩 보게 될 것데, 혹시 형 역시 거꾸로 자기보다 점점 더 젊은 동생의 모습을 보게 될까? 아니면, 역설은 없고 형은 단순히 자기보다 빨리 늙는 동생의 모습을 보게 될까? 아마도 원래 쌍둥이의 역설을 처음 만들어낸 분들이 이 업그레이드 버전을 들으면 뛸 듯이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래도 옳은 답은 하나뿐이고, 이 경우에도 누가 보든 간에 "형이 덜 늙는다"가 옳다. 쌍둥이 패러독스라는 건, 가속, 감속, 등속, 이런 이야기들과 상관없이 원래부터 없다는 말이다.




혼란들은, 시간이 관측자 혹은 관성계 입장에 따라 다 다르다는, 상대론이 언급될 때마다 흔하게 듣는 이야기의 실제 내용에 대한 간단한 오해에서 시작한다. 


일단, 충분히 잘 만든 시계를 들고 다닌다면 내 시간은 내게 절대적이다. 만일 두 개의 시계를 들고 다녔는데, 그중 하나가 늦거나 빠르면, 시계를 고쳐야지 아인슈타인을 찾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내가 등속 운동을 하고 있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있건, 상관없이 그렇다.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100% 본인이 어떤 물리적 상태에 있었느냐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강한" 중력장에 들어가 있으면 시간은 조금 더 느리게 흐르고, 빠르게 움직 역시 느리게 흐른다. 쌍둥이가 서로 시계를 맞추고 각자 한참을 돌아다니다 다시 만난 어느 미래에 서로의 시계를 비교하면 각자에게 흐른 시간이 다를 수 있고, 이는 엄연한 상대성 이론의 결과이다. 하지만, 누가 더 많이 늙었는지에 대한 어떤 혼란도 있지 않다.


문제의 근원에는 "누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는 관성계마다 다르게 보인다"는 말과 "속도가 시간을 느리게 한다"는 말 합치면, 누구의 시간이 더 천천히 가는지가 모호해진다는데 있다. 그러나, 속도가 시간을 느리게 한다는 말에서 비교되는 두 가지 시간은 실은 서로 다른 종류의 시간이라는 것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  해당 객체가 경험하는 시간 이를 바라보는 관성계의 시간비교할 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편, 역설이려면 두 쌍둥이가 각자 경험하는 스스로의 시간, 즉 각자의 고유 시간을 비교했을 때 이런 모호함이 있어야만 는데, 이 글 말미의 수식에서 보듯 이 소위 "고유 시간"은 관성계를 정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이, 그리고 사실은 관성계가 존재할 수 없는 복잡한 시공간에서도, 엄밀하 정의되고 정확히 계산되는 양이다. 





사실 "관성계"의 개념은 그 자체가 갈릴레오의 잔재라고 하는 것이 옳다. 왜 "관성계"라는 개념이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중요하게 보이는지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알기 이전의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수 상대성이론에서의 시공간은 완전히 평평한데, 일반 상대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상황이 가능하려면 우주 어디에도 어떠한 물질이나 에너지도 없어야만 한다. 따라서 기준이 될만한 어떤 천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우주에 있는 물리학자는 무언가 측정의 기준이 필요하고, 일종의 부산물로 "관성계"라는 것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아래 이야기하듯 "관성계"는 텅 빈 우주이기 때문에 어쩌다 쓸 수 있게 된 특이한 좌표계인데, 더 일반적으로는 관측자 부근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나 근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원래 관측자가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부근에서 일어나는 일들 뿐인데,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텅 빈 우주를 보며 "관성계"라는 것을 상상한다. 무한히 긴 눈금자를 세 개 준비하여 멀리 있는 물체의 위치를 측정하고, 동시에 우주의 모든 장소에 미리 시간을 맞춘 시계를 하나씩 놓아 역시 멀리 있는 물체의 시간을 잰다. 물론, 멀리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위치와 시간을 이런 방식으로 정하려면 이에 대한 신호를 주고 받는 과정이 필요해지는데, 이 때문에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간접적으로 "유추한" 관성계 기준의 시간과 그 멀리 있는 물체가 느끼는 시간은 다른 두 가지 개념이다. 특수 상대론을 배우다 보면 나오는 시간 이야기에는 거의 항상 멀리 있는 물체와 빛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멀리 있는 곳의 시간을 거기에 가지 않고 앉아서 재보려고 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 3)과 4)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의 흐름은 관성계를 사용해 원거리에서 간접적으로 "유추한" 시간들인데, 이는 a, b가 서로 멀어지고 있어 동일한 장소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대용품에 불과하다.


유사한 무리수 우주의 팽창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허블이 주장했듯이 이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거리 L 있는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는 L에 비례한다고 한다. 그런데, L이 충분히 크면 이 속도가 광속을 넘게 될 터인데,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여기서도 역시 멀리 있는 무언가에 속도라는 개념을 부여하려고 하는 데에서부터 말썽이 생기는 것인데, 물론 속도를 정의하자면 시간과 위치의 변화가 모두 필요하고, 위 쌍둥이의 이야기에서 처럼 어떤 시간에 대해서 속도를 이야기하는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광속보다 빠른 것이 없다는 말은, 어느 지점을 통과해 가는 객체에 대하여 그 지점에 있는 관측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인 셈이다.


쌍둥이의 역설 역시 두 관성계 B, A가 보는 멀리 있는 a, b에 대한 "유추"된 시간을 a, b자신들의 고유 시간에 치환하려고 하다 보니 생기는 실수에 불과하다. 나이 먹는 게 그리 복잡할 이유가 없으며, 멀리서 나를 보는 누군가와 상관이 있을 리도 없다. 단지 내 몸에 있는 세포들의 텔로미어들이 짧아지는 과정일 뿐이다. a와 b는 당연히도 각자 스스로 잰 진짜 시간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 이 진짜 시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잘 맞는 각자의 시계 하나씩으로 충분하지, 빛을 어디다 쏘아댄다거나 하는 이상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특수 상대론에서 일반 상대론에 넘어오면 "관성계"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고, 조금 더 일반적인 "표계"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실 "관성계"는, 텅 빈 시공간인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종류의 "표계"인 셈인데,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사실 모든 혼란의 시초는 이 "관성계"라는 것에 너무 많은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다 보니 생기는 것이다.   


일반 상대론은 "좌표계"들은 그냥 계산을 도울 뿐 그 자체로서는 아무로 물리적인 의미가 없다는 에서 시작한다. "좌표계"를 하나 그리고 나면, 역시 "관성계"에서처럼 이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의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무한히 많은 서로 다른 "좌표계"를 그릴 수 있지만, 실제로 의미 있는 물리량들은 특정한 "좌표계"의 선택과 상관없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 상대론의 대원칙이다.


줄자가 고장 나서 대신 막대 자나 레이저 자를 쓴다고 물리 현상이 달라질 수 없다는 당연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물론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역시 한 세기 전에는 아직 뉴턴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던 때문인지, 여기에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이 붙기도 했다. (모 일본 만화에 나오는 그 등가 원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한 다음 다시 특수 상대론의 범주로 돌아오면 "관성계"가 "좌표계"의 매우 특별한 경우임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러고 나면, 위의 "1) 모든 관성계는 동등하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실은, "동등하다"가 아니라, "모두 다 동등하게 의미 없다"에 가깝다. "관성계"는 중간 과정으로서 매우 쓸모가 많지만 이를 사용하여 정의되는 것들 중에는 실제 물리 현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많은 녀석들이 섞여 있고, 쌍둥이의 역설은 이렇게 관 성계들에서의 시간 이야기를 잘못하여 나타나는 오해에 불과한 것이다. 등속 운동이니 가속 운동이니 하는 것과 상관없이 원래부터 역설이 아니었다는 말다.




너무 많은 말로 때워 온 것 같아, 간단하지만 엄밀한 수식으로 위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위 이야기가 피로를 유발했다면, 그냥 다 잊고 아래를 이해해 보려 하는 게 더 간단할 수도 있겠다. 아래 공식들에서 ^2는 제곱, 즉 그 앞에 있는 것을 두 번 곱한다는 말이고,  ^(1/2)은 이의 반대, 즉 제곱근을 의미한다.


텅 비어있는 우주에서 관성계를 하나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v의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는 관성계 자체의 시간 t에 비하여 (1-v^2/c^2)의 제곱근만큼 늦게 가는데, 동일한 시계가 다른 관성계를 기준으로 V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역시 그 관성계의 시간 T 비하여 (1-V^2/c^2)의 제곱근만큼 느리게 간다.  시계의 실제 흐른 시간은

 

(1-v^2/c^2)^(1/2) * t



(1-V^2/c^2)^(1/2) * T


이기도 한데, 이 진짜 시간이 어느 관성계를 기준으로 계산했는지에 상관없이 동일해지도록 v, t와 V, T가 서로 연관 지어지는 것이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작점이다. 쌍둥이의 역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 시간을 굳이 관성계의 시간들인 t, T, 즉 뉴턴의 관점을 조금 수정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다 생긴 혼란에 불과했던 것이다. 두 관성계를 기준으로 하는 t, T 는 아무리 잘 보아줘도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의 확장판이고, 일반 상대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과도적인 개념인 셈이다.


그런데 v, V가 일정하지 않으면, 등속 운동이 아닌 경우 무엇을 어떻게 바꾸면 될까? 이런 경우에는 v(t), V(T)라는 함수가 필요해지고, 위 공식은 아주 짧은 dt에 대하여, t와 t+dt 사이에 순간적으로 축적되는 시간이


(1-v(t)^2/c^2)^(1/2) * dt


로 주어진다는 적분의 형태로 변한다. 물론 두 번째 관성계에서도 유사한 모습으로


(1-V(T)^2/c^2)^(1/2) * dT


을 축적해가는 것인데, 역시 이 두 가지 표현은 어느 쪽 관성계를 사용해도 같은 결과를 주도록 고안되어 있다. 


일반 상대성 론은  텅 빈 우주가 아닌 경우, 이렇게 축적되는 시간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이야기,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좌표계를 사용해도 동일한 진짜 시간이 나오게 하려면 중력이 이 시간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모습이어야 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사실상 모두 다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김에 아예 일반 상대론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다음 글에서 해보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따라서, 움직이는 객체가 실제 느끼는 시간인 위의 "고유 시간(proper time)"이 중력에 의하여 어떻게 변하느냐가 될 것이다. 이를 기억하고 다음 글로 넘어가면 좋겠다.




아마도 이쯤 되면, 다시 무언가에 속고 있다는 더러운 기분이 들 수 있다.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던 특수 상대론에 대한 나름 좋은 질문을 던져 보았더니, 이번엔 일반 상대론을 들고 나와서는 이거 이해 못하면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겁박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원래 그게 작가의 의도가 아닌 것을, 굳이 이 글 읽으러 들어오는 극소수의 독자들은 이해하리라 기대하면서도, 그럴듯해 보이고 이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짜 설명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작가의 고집을 조금은 고쳐야 하나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그냥 특수 상대론 안에서 "관성계"가 정의하는 시간 t, T 등을 가지고 잘~~ 사용하면, 원래부터 패러독스가 아님을 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실 위키피디아만 조심스레 읽어보아도 된다. 결국은 두 쌍둥이가 느끼게 되는 진짜 시간이 무엇이고, 이 "관성계"들을 사용하여 "유추"하는 시간이 이런 진짜 시간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만 이해하면 되는 문제이므로... 하지만 이런 설명들이 흔히 문제의 본질을 숨겨 놓는 잘못을 범하곤 한다.


아마도, 위 이야기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단 한 가지가 있다면, 특수 상대론에 관련된 무언가를 보거나 들을 때, "관성계"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일단 조심하자는 말이다. 특히, 일반 대중으로 위하여 저술된 특수 상대론에 대한 책들을 읽을 때 말이다. 아예 틀린 주장들이 진 않겠으나,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다 보면, 의도와 달리 자칫 잘못된 상상과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상대성 이론은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상식적이다. 최소한, 순식간에 수억 광년 너머로 중력의 힘이 순식간에 전달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한 만유인력이나, 엄연한 사실이지만 모든 게 파동이라고 말하는 이상 하디 이상한 양자 역학에 비하여서는 그렇다. 앞서의 글 어딘가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상대성 이론이 틀렸고 갈릴레오와 뉴턴의 역학 체계가 옳았다면, 전자기로 작동하는 핸드폰은 움직이는 ktx에서는 먹통이 될 수밖에 없다. 전자기 법칙이 그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나의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만 할 터인데, 이 상황까지 맞추어 핸드폰을 만드는 것은 꽤나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내가 지금도 들고 있는 갤xx 7은 확실히 먹통이 될 게다.


비싸게 주고 산 핸드폰이 간간히 먹통이 되는 것보다는,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전자기 법칙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상대성 이론이 이 우주를 관장하고 있음을 선호하는 것은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뭐, 상대성 이론 모른다고 깨톡 못 쓰는 것은 어차피 아니니까... 어쩌면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 자체 때문에 생긴 불필요한 오해가 너무 많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상대성 이론의 시작은, 누가 보아도 일정한 즉 "절대적으로 일정한" 광속에 있으니 오히려 절대성 이론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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