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일반 상대론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이렇게 글로서 배우는 게 가능할까요? 아마 아니겠지요?
고등학교 들어가서 물리를 선택하면 만유인력도 배우고 뉴턴의 운동 방정식도 배우며, 케플러의 법칙이 이 둘을 잘 조합하면 나온다는 이야기까지 배웁니다. 혹은 생물을 선택하면 요즘은 분자 생물학 이야기를 많이 배우더군요. 이중 나선, DNA와 RNA, 그리고 이 유전자 정보로부터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세포 안에서 작용을 하는지 등등.... 하지만 배웠으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역시, 아닐 겁니다. 이해가 아닌 익숙함을 얻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는 일반 상대론에 대한 익숙함을 조금이라도 얻어가시는 것을 목표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수식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환상은 처음부터 버리시길 바랍니다. 수학적 변수와 기호를 쓰는 것이 가장 불편할 터이지만, 사실 실제 글에서 보여주는 산수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에 추가로 제곱과 제곱근까지만 필요합니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중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일상적인 범주에서 중력은 뉴턴의 만유인력에 의하여 비교적 잘 설명되고 있다. 질량 M은 다른 질량 m을 끌어당기는 힘을 주는데, 그 세기가 M*m에 비례하고 두 질량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했다. 이 내용을 F 즉 힘에 대입하고, F=m*a라는 운동 방정식을 풀면 m이 M에 대하여 움직이는 방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만유인력과 운동 방정식 이야기이다. 물론 이건 M이 m보다 현저히 클 때의 이야기이고, 더 일반적으로는 살짝 더 복잡해지지만 이야기의 대세에는 영향이 없다. 이 방정식들을 도대체 어떻게 푸는지는 굳이 직접 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런 거 하는 전문가들은 충분히 많고, 이들에게 믿고 맡기면, 달까지 가는 로켓도 만들어내고, GPS에 필요한 인공위성도 지구 궤도에 띄운다.
지금도 이렇게 잘 쓰이는 만유인력임에도 이미 수 세기 전부터 머리 좀 쓴다는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이 이론은 소위 원격 작용(Action at a Distance)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천체 M과 로켓 m이 서로를 당기는 힘이 작용을 하는 데 있어 어떠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태양계처럼 "작은" 동네에서는 그렇다고 쳐도, 과연 1억 광년쯤 떨어져 있는 두 물체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힘"이 물리적인 실체라면 사실 매우 믿기 힘든 말이다. 물리적 실체를 가진 물건들의 궤적에 영향을 주는 힘이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는 말은 더더욱 말이 될 수 없다. 너무 멀어지면, 그 힘이 너무 작으니 어차피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자연법칙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없는 것과 작은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그 무엇도 광속보다는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고, 그래서 만유인력과 이를 지탱하고 있던 원격 작용은 폐기되어야만 했다.
더구나, 이 문제는 뉴턴의 만유인력을 조금씩 고쳐가면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특수 상대론은 F=m*a 조차도 폐기해 버렸으므로, 왼편을 어떻게 바꾼다고 해서 고쳐질 리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최소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했다. 1) 운동 방정식은 상대론적으로 어떻게 바뀌는가? 2) 천체 M의 중력은 m의 이 새로운 운동 방정식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가?
물론, 상대론적 중력이 중요해지고 만유인력을 100% 믿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지구 주변 중력 현상의 대부분, 태양계 행성 위성의 궤적, 심지어는 은하와 은하단들의 움직임 등등 상당 부분이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충분하다. 상대론이 필요해지려면, 천체의 속도가 광속에 비해 무시할 수 없거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중요하거나, 매우 먼 거리 혹은 오랜 시간에 거쳐 일어나는 현상이거나 해야 한다. 이들을 각기 대표하는 문제들로는 블랙홀, 위성을 사용한 GPS 시스템, 그리고 우주 전체의 역사 정도를 생각하면 되겠다.
(중력의 "세기"가 매우 커야 상대론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의외로 옳지 않은 말이다. "세기"라는 말의 의미에 따라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조심해야한다.특히 흔히 중력가속도로 불리는, 만유인력에서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F에 해당하는 그 중력의 "세기"는 이에 크게 관련이 없다. 실은, 중력으로 인한 위치 에너지의 크기가 커지면 상대론이 반드시 중요해 진다고 할 수 있는데, 아래 이야기로 재구성하면, 고유시간의 흐름이 이상해지는 정도에 직결된다.)
일반 상대론에 대한 이야기는 물질이 시공간을 어떻게 휘어지도록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흔히 시작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이 말이, 즉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는 다시 이전 글에서 긴 이야기를 한 "시간"의 문제로 연결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이미, 믿을 수 있는 혹은 물리적인 양으로서 의미가 있는 유일한 시간은 소위 "고유 시간(proper time)"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1)과 2)에 대한 답들이 온전히 이 "고유 시간"을 통해 구현되는 것을 이해해 보자.
앞글 말미에서처럼 텅 비어있는 우주에서 관성계를 하나 정하고, 그 관성계가 사용하는 시간을 t라고 하자. 이 관성계를 기준으로 v(t)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 만의 고유 시간을 축적해 나가는데, 아주 짧은 dt에 대하여, t와 t+dt 사이에 순간적으로 축적되는 고유 시간은
(1-v(t)^2/c^2)^(1/2) * dt
이며, 이것을 다 더하면, 즉 적분을 하면 이 객체가 실제로 경험한 고유 시간이 구해진다.이전 글에서 배웠듯이 여기수학 기호 중 ^2는 제곱, 즉 그 앞에 있는 것을 두 번 곱한다는 말이고, ^(1/2)은 이의 반대, 즉 제곱근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곱근이 복잡하니, 적분은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매 순간 축적되는 이 시간의 제곱인
dt^2 - v(t)^2/c^2* dt^2
을 주로 사용하려고 한다. 이를 조금 다르게 써보자. 속도 v(t)는 x를 t로 미분한 양, 즉 미세한 위치의 변화 dx를 미세한 시간의 변화 dt로 나눈 것이므로, 즉 v(t) = dx/dt 이므로, 위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쓸 수 있고,
dt^2 - (dx/dt)^2/c^2 * dt^2
두 번째 항에서 dt^2 을 약분해서 없애고 나면
dt^2 - dx^2/c^2
가 되는데, 이만큼이 순간적으로 축적되는 고유 시간의 제곱이다.어떤 사람이 dt라는 짧은 시간 동안 dx라는 역시 짧은 거리를 이동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사람이 느끼는 실제 고유 시간 증가분의 제곱이 이렇게 주어진다는 말이다.
물론무언가 실제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의 제곱이므로 0보다 작을 수 없고, 따라서 (dx^2)/(c^2*dt^2) = v(t)^2/c^2 = (v(t)/c)^2 가 1보다 클 수 없으며, 이는 곧 어떤것도 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특이한 것은 광속으로 움직이는 경우 이 고유 시간의 증가분이 항상 0이라는 것인데, 광속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시간의 흐름이 한없이 느려진다는 특수상대론의 잘 알려진 이야기를 기억해 보면, 이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이 "고유 시간"의 정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과학을 배울 때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중간중간 이야기들에 너무 인식론적인,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매우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자연의 본질이 자연인의 인지능력을 벗어나는 일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사실들은 일단 사실로 받아들이는 버릇도 필요하다.
어쨌든, 이렇게 계산되는 고유 시간은 온전히 이 사람만의 시간이라는 점에서 관성계의 시간 t와 구별되는데, 이 고유 시간을 나타내는 부호로 S를 쓰기로 하자. 한편, 위에서 공간의 좌표를 x하나만 사용했는데, 실제로는 x, y, z 세 개의 좌표가 필요하니 사실은
dS^2 = dt^2 - (dx^2+dy^2+dz^2)/c^2
이 되는 셈이다. 특수 상대성이론에 나오는, 관성계 사이의 이상한 변환식들은 별 것이 아니고 이 고유 시간이 어느 관성계로 계산해도 같아지도록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관성계가 있어서 t, x, y, z 대신 T, X, Y, Z을 사용한다고 해도
dS^2 = dT^2 - (dX^2+dY^2+dZ^2)/c^2
역시 항상 성립하도록 두 관성계의 좌표들이 연결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 dS^2 의 중요성은 원래의 특수 상대론 논문에서가 아니고, 수학자 Poincare와 특히 아인슈타인의 스승인 Minkowskii에 의해 나중에 알려진 것이다. 아래 이야기에서 보듯, 일반 상대론으로의 전환은 이 중간 단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과학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일례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이 고유 시간의 표현이 시공간이 휘어지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매우 정확하다. 혹은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말 자체가 이 고유 시간의 표현이 더 일반적인 형태로 바뀐다는 말을 의미한다는 편이 더 옳겠다.
위에서는 오른편은 dt, dx, dy, dz 등 네 가지 미세한 변화들의 제곱이 들어오는데, 그 이외에도 예를 들어 dx*dy 혹은 dt*dz 같은 곱도 있을 수 있다. 6개의 이런 항이 추가로 가능하니 도합 10개의 항이 오른편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첫 단추는 이 고유 시간의 재는 방식에 이 10개의 항이 각자의 "함수"가 곱해져서 나타나는 것인데,
dS^2 = f*dt^2 - (g*dx^2+h*dy^2+k*dz^2) + ...
등으로 고유 시간의 축적이, 좌표계를 기준으로 시간 및 공간에서의 움직임에 연결된다는 데에서 시작하며, 물론 t, x, y, z 는 더 이상 관성계가 아니다. f, g, h, ... 등등은 모두 서로 다른 t, x, y, z 자리마다 다른 값들을 갖는 일종의 "함수"들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함수는 아닌데, 이는 또다시 전혀 다른 좌표계 T, X, Y, Z를 사용했을 때
dS^2 = F*dT^2 - (G*dX^2+H*dY^2+K*dZ^2)+ ...
가 되도록 하려면, 일반적으로는 f, g, h, ... 와 F, G, H, ... 사이의 꽤 복잡한 변환식이 필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조금 더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관성계"는 중력이 전혀 없는, 즉 완벽히 평평한 시공간에구현되는 특이한 좌표계일 뿐이다. 이런 예외적인 시공간에서의 관성계라는 것은 위에 .... 로 표현한 6개의 항은 사라지고, f=1와 g=h=k=1/c^2 이 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이를 또 다른 관성계로 대체하여도 같은 모습으로 고유 시간이 표현되는데, 즉 위에서 보았듯이 원래 관성계와 동일하게 F=1와 G=H=K=1/c^2의 형태가 유지된다. 텅 비어 있는 우주에서만 쓸 수 있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성계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인데, 이는, 이전 글에서 이야기하였듯이, 관성계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하다.
그런데, 위에 dS^2 이야기를 하면서, 이 고유 시간을 경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이야기한 바 없다. 말하자면, 이 dS^2 공식의 우변은 주어진 시공간의 어디에 있는 누구이건 간에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f, g, h, ... 등은 시공간의 좌표인 t, x, y, z 에 의하여 결정되는 "함수"들이지, 움직이며 dS의 고유 시간을 축적하는 객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는 움직이는 개개인의 고유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였으나, 실제 결과물, 즉 위 dS^2 식의 우변은, 좌표계 t, x, y, z 와 "함수" f, g, h, ... 등을 통하여 이 시공간 자체 곳곳의 성질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 상대론이 "고유 시간"을 통해 구현된다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이것이다.
이제, 위 2)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 시공간의 중력은 이 10개의 "함수" f, g, h, ... 등을 통하여 표현된다. 천체들이 주어졌을 때, 혹은 우주에 어떤 에너지와 질량들이 분포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어지면, f, g, h, ... 등등이 계산되는데, 실제로 어떻게 계산되냐고 물으면 리만 기하학에서 시작되는, 이론 물리학 전공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도 한 학기 정도 소요되는 길고 긴 이야기를 해야 하니 여기서는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물론 이 긴 이야기의 끝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의 방정식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왼편은 위 f, g, h, ... 등등을 (편)미분하여 만드는, 소위 시공간의 곡률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고, 오른편은 그 시공간에 들어 있는 모든 에너지와 물질들이 가진 중력의 원천을 담고 있는데, 이를 통칭해서 에너지-모멘텀 텐서라고 한다. 예를 들어, 특수 상대론이 있는 그대로 작동하려면 이 방정식의 양변이 각기 완전히 0이 되어야 한다. 각 기호 하단의 그리스 문자들은, t, x, y, z 들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양변은 각기 4x4 행렬이고, 예를 들어 E = m*c^2 라는 의미에서질량을 포함한 에너지(밀도)라고 부를 만한 양은 오른편 행렬에서 tt에 해당하는 녀석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백미를 문단 둘과 방정식 하나로 끝내 버렸으니, 이제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자주 이야기하게 될 팽창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경우가 사실 가장 간단한 시공간의 예시 중 하나인데, f=1 와 g=h=k=a(t)^2/c^2, 그리고 나머지 6개 항은 없는, 즉
dS^2 = dt^2 - a(t)^2 * ( dx^2+ dy^2 + dz^2 )/c^2
로 표현되는 우주이며, 그 구체적인 팽창 방식은 시간의 함수 a(t)에 일체 담겨 있고, a(t) 자체는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종류에 의하여, 위 방정식을 통해 완전히 결정된다.
한편 위의 완벽히 비어있는 우주에서의 고유 시간 증가분의 제곱이 어떻게 계산되었는지 되돌아보면, 시간의 증가분의 제곱에서 공간의 이동분 제곱을 c^2으로 나눈 양을 빼서 알아낸 것이었다. 우주가 팽창하는지 어떤지 모르고 인류가 살아온 수십 세기를 되돌아보면, 내가 늙어가는 속도를 결정하는 이 원초적인 양을 나타나는 방식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두 경우를 있는 그대로 비교해 보면,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공간상의 이동은 dx, dy, dz 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고, 실제로는 a(t)*dx, a(t)*dy, a(t)*dz 로 정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즉, 위와 같은 시공간에서 공간의 실제 "크기"는 항상 a(t)에 비례한다는 말이다. 허블이 처음 발견했던 우리 우주의 팽창이 온전히 a(t) 이라는 함수 하나에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들이 공간 자체의 팽창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공간 안에 있는 물체들이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각각의 은하들은 그냥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는 멀리 있는 은하가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로 후진한다는 허블의 이야기에 담긴 이상한 점, 즉 충분히 거리가 멀면 이 "속도"가 광속보다 커진다는, 특수 상대론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설이 실제로는 역설이 아닌 이유를 또다시 말해주고 있다.
어쨌든, 지금 우리의 우주는 a(t) ~ t^{2/3} 처럼 (감속)팽창하는 우주에서 a(t) ~ Exp(H0*t) 와 같이 (등가속)팽창하는 형태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와 있다는 것이, 지난 30년 사이에 인류가 새로 알게 된 가장 놀랍고 가장 이상한 과학적 결과이다. 상수 H0의 제곱은 소위 암흑 에너지라는 것과 연결되는데, 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이 책의 중간 부분에서 다시 하기로 하자.
또 다른 중요한 예로서 소위 Schwarzschild 블랙홀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해서, r^2=x^2+y^2+z^2에 대하여,
인데, 여기서 A(r) = 1- R/(4r) , B(r) = 1+ R/(4r) 이며 R은 소위 Schwarzschild 반경이라고 하는, 블랙홀을 정의하는 사건의 지평이라는 구면의 "반경"이다. 조금 더 정확히는 사건의 지평의 넓이가 유클리드 기하에서처럼 4*Pi*R^2이라는 말인데, 이 사건의 지평은 위에 사용한 소위 등방 좌표계 기준으로는 4r=R 에, 즉 A=0 인 장소에 위치한다. 참고로, R값은 블랙홀의 질량 M에 비례하는데, 뉴턴 중력 상수를 G라고 하면
R = 2G*M/c^2
이다.
이 두 가지 시공간은 전혀 다른 상황을 나타내지만, 둘 다 "상대론적인 지평"이라는 매우 특이한 개념이 필요해지는 공통점이 있다. 팽창 우주에서의 경우 위에서 이야기한, 지구에서 보기에 겉보기 후진 속도가 광속과 같아지는 곳과 관련이 있지만 위 고유 시간의 형태에서 직접 보기는 조금 곤란하다. 블랙홀의 경우 이 "상대론적 지평" 혹은 이의 또 다른 이름인 "사건의 지평"을 조금 더 용이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4r = R 에서 dt^2 앞의 함수 A가 0이 되어버리는 곳에 해당한다.
dS^2를 이 "사건의 지평," 즉 A=0 이 되는 x, y, z 에 가만히 앉아 있는 객체에 대하여 계산하면 항상 0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에서 축적되는 고유 시간이 0이 되는 경우를 이미 보았었다. 광속으로 움직이면 항상 그렇다고 했었다. 그러면 이 "지평"은 그 자체로 광속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인가? 놀랍게도 이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이다, 위에 사용한 좌표계에서는 4r = R 로 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사실 주변의 모든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는 말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인데, 광속으로 날아오는 "지평"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사용하고 있는 좌표계 t, x, y, z 를 기준으로도 상대론적 지평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이 경우에는 빛이 움직이는 방식이 그 주변에서 놀라울 정도로 바뀐다고 하게 된다. "광속"은 절대적이지만, 모든 좌표계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 "광속"을 묘사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평평한 우주에서의 "관성계"와 마찬가지로 특정 "좌표계"를 기준으로 보이는 현상들에 일일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게 하는 대목이다.
상대론적 지평은 철저히 상대론적인 결과이며, 동시에 대단히 거시적인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역학이 중요해지는 아주 기묘한 실험실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 상대론적 지평 때문에 생기는 두 가지 양자 현상과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될 것이다.
남아 있는 1)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F=m*a는 어떻게 된 것일까? 무언가로 다른 모습의 운동 방정식으로 바뀔 터인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궤적들은 어떤 것들인가? 운동 방정식을 쓰는 것은 조금 복잡한 기하학을 필요로 하는데 비해, 궤적들을 설명하는 데에는 비교적 쉬운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t1, x1, y1, z1이라는 시간과 장소에서 시작해서 t2, x2, y2, z2라는 시간과 장소까지 가는 궤적을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궤적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궤적이 모든 가능한 궤적 중에 소요되는 고유 시간, 즉 dS의 적분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실제 궤적의 성질은 기하학에서는 Geodesic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가장 짧은 길이를 가지는 선을 의미하는 것인데, "길이"가 "고유 시간"으로 대치되면서"가장 오래 걸리는"으로 바뀐 셈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평평한 우주, 즉
dS^2 = dt^2 - (dx^2+dy^2+dz^2)/c^2
에서 x1 = x2, y1 = y2, z1 = z2 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실제 궤적은 단순히 x, y, z는 변하지 않고 시간만 흐르는, 즉 t1 에서 t2 로 이어지는 직선에 해당할 것이며, 흘러간 고유 시간은 S = t2 - t1 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궤적 주변으로 더 많은 고유 시간을 사용하는 궤적이 있을까? 예를 들어 x1에서 시작하여 약간 움직였다 제자리 x2 = x1 으로 돌아온 궤적 x(t)가 있다고 치자. 이 경우 축적되는 고유 시간의 제곱은 dt^2 - dx^2 이므로 무조건 dt^2 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만히 정지해 있는 실제 궤적은 그 주변의 어떤 가상의 궤적보다 더 많은 고유 시간을 축적하는 녀석인 셈이다.
동일한 우주에서 y1=y2, z1=z2 이며, x2는 x1과 다르다면? 역시 중력이 없으므로 x1에서 x2로 등속으로 t2-t1의 시간을 걸려 움직이는 궤적이 옳은 답 임을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속도가 광속보다 작은 경우 만을 고려해보자. 이 등속 궤적은 위의 원리처럼 가장 오랜 고유시간을 사용하는 것임은 또 다른 관성계를 사용하여, X2 = X1인 상황으로 재구성하면 쉽게 볼 수 있다. 즉, 특수 상대론에 나오는 로렌츠 변환을 사용하면 t 와 x 를 조합하여 T 와 X를 만들고 X2 = X1가 되도록 할 수 있는데, 이때의 고유 시간은 역시새로운 관성계에서
dS^2 = dT^2 - ( dX^2 + dy^2 + dz^2 )/c^2
을 사용하여 계산된다. 이제 원래의 등속 궤적은 새로운 관성계를 기준으로 정지해 있는 궤적이 되어버리고, 흘러간 고유 시간은 T2-T1 이다. 그리고, 위 문단에서와 정확히 동일한 이유로 시작과 끝이 동일한 주변의 어떤 다른 궤적보다도 긴 고유 시간을 사용하는 그런 궤적이다. 계산되는 고유 시간은 관성계,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좌표계를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에 상관없으므로, 이는 원래의 관성계에서도 옳은 말이 된다.
중력이 있는 경우에도 동일한 고유시간 최대 원리가 적용된다. 물론 이 사실을 미분 방정식화 하여 F=m*a와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굳이 이 복잡한 수학식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고유 시간"이 최대화된다는 원리는 사실 이론 물리학의 곳곳에서 보아온 공통된 종류의 원리 중 하나이며, 위 경우는 고유 시간의 "최대화"라는 형태로 구현되었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무언가를 최소화 혹은 최대화하는 원리로 나타난다.
가장 오래전부터 알려진 예가 소위 페르마의 원리라는, 매질 안에서 빛 무더기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오래된 원리인데, 여기서는 빛이 두 지점 사이에 소요되는 시간(이 경우는 고유 시간이 아니고, 위에서 사용한 좌표계 시간 t에 해당한다.)을 최소화한다는 원리를 사용하면 옳은 궤적을 얻게 된다: 매질 때문에 빛 무더기의 실제 진행 속도가 광속보다 줄어드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런 물리학의 근저 이론들에서 보이는 모든 최대/최소 원리들은 사실 다 같은 근원에서 출발하며, 또한 양자 원리에 의하여 설명된다는 것인데, 이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는 작가의 다른 브런치북 "온 세상이 떨고 있다" 의 전반부에서 자세히 다룬 적이 있다. 여기 나오는 수식으로 충분한 자학이 되지 않은 독자분들은, 참고하셔도 좋겠다.
위와 같은 최대시간의 원리가 어떻게 태양의 주변을 빙빙 도는 지구의 모습으로 구현되는지를 보려면 사실 대학교 수준의 수학이 필요하다. 뉴턴 역학과 매우 다를 것은 없으나 이 역시 대학교 일반 물리 정도는 배워야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빛의 궤적에 대하여 같은 질문을 하면 어느 정도 정성적인 이해가 비교적 쉽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광속이 일정하다는 말에 대한 흔한 의문점을 하나 해결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듯 하여 이 이야기를 대신 해보자.
위에서 언급했듯이 빛의 경우 축적되는 고유 시간이 0이 되는 특이한 성질을 갖는데, 이는 휘어진 시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dS^2 = 0 인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데, 좌표계를 기준으로 그 속도를 쓰려고 하면, 광속이 일정하다는 말에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다. 예를 들면 위의 팽창 우주에서 x 방향으로 움직이는 빛의 궤적은 dt^2 = (a(t)*dx/c)^2 이어야 하므로 dx/dt 의 크기는 c 가 아닌 c/a(t) 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 공간상의 이동은 a(t)*dx 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실제 속도인 a(t)*dx/dt 의 크기는 절대적이라는 광속 c 를 유지함을 알 수 있다.
좌표계마다 다르게 표시될 수도 있는 빛의 겉보기 '속도'에 현혹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일정하고 절대적인 광속"은 dS^2 = 0 이라는 공식에 의해 온전히 표현된다는 점을 기억하면, 매우 혼란스러울지언정 잘못된 이야기를 할 소지는 없어진다.
그렇다면, 무거운 천체 부근에서 빛의 실제 궤적은 어떻게 될까? 위의 블랙홀 주변에서의 고유시간을 사용하여 dS^2 =0 을 재구성하면,
이다. 좌측의 표현은 이 좌표계를 기준을 한 겉보기 속도의 제곱에 해당하므로, 이 좌표계를 기준으로 하면 빛의 속도는 실제 c 보다 작고, 특히 중력이 센 중심에 가까워 질수록 r/R이 작아지면서 함께 겉보기 광속이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고등학교 물리학에서 이미 배우는 사실이 있는데, 공기나 물과 같은 매질에서 빛이 움직이는 속도 v와절대적인 광속 c 의 차이를 주는 것을 굴절율 n 이라고 하는데, 즉
v = c/n
으로 정의된다. n 을 굴절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빛의 진행이 매질의 공간적 변화, 즉위치에 따라 변하는 n에 반응하여 그 방향을 바꾸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서로 다른 v 즉 서로 다른 굴절율의 두 매질의 경계면에서 진행 방향이 꺽이게 된다.빛의 이런 성질은,한 지점에서 시작하여 다른 특정 지점까지 가는 실제 궤적은사용되는 시간을 최소화한다는,페르마의 원리로 정량화 할 수 있는데, 이를 또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빛은 굴절율 n이 큰 매질을 최대한 피해가려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페르마 원리는 사실 파동들이 가진 공통적인 모습에서 파생되는데, 따라서 위 중력장에서의 겉보기 속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물론 n의 값은
n = (1+R/4r)^3/(1-R/4r)
으로서, R/r 이 1보다 매우 작은 영역에서 대략 1+R/r와 근사적으로 같다. 즉 원점에 다가가면서 중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R/r 이 커지면서 n 역시 큰 값을 가지게 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중력이 크면 n이 큰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되도록 빛은 이런 곳을 피해 가려하게 되고, 이로 인해 중심에서 먼 바깥 쪽으로 에둘러서 휘어가게 된다. 일반상대론에서 빛이 휘어간다는 말은 결국 이 겉보기 속도에 대하여 중력이 만들어 내는 굴절율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위에서는 블랙홀 주변에서 고유시간을 사용하긴 했으나, 사실 r/R 이 충분히 큰 곳에서는 보통의 별의 외부에도 동일한 고유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일반 상대론의 결론이다. 따라서, 태양 부근을지나는 빛의 휘어짐 역시 동일한 계산을 통해 알아낼 수 있고, 1919년 개기 일식 중에 처음으로 관측되어 확인된 이 현상은, 수성의 근접점 이동과 더불어 일반상대론에 대한 첫 검증들로 알려져 있다.
마치기 전에 이전 글에서 쌍둥이 역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언급한 원통형 우주에 대한 한 가지 내용을 명확히 하는게 좋겠다. 일반적인 텅 빈 우주이지만, x 와 'x+1광년'이 동일한 지점이 되는 이 이상한 우주에서의 이야기, 즉 둘 다 관성운동을 함에도 지구에 가만히 있는 쌍둥이가 x 방향으로 관성운동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지구에 돌아오게 되는 다른 쌍둥이보다 더 빨리 나이를 먹는 이야기는, 그 우주에서의 고유시간의 제곱이
dS^2 = dt^2 - dx^2/c^2- ...
임을, 그리고 지구의 위치가 특정한 x값에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에 따라, 이 고유시간이 당연하게 혹은 당연하지 않게 보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주의 모양과 좌표계는 그대로 놔둔 채 고유시간만
ds^2 = dt^2 - (dx - V*dt)^2/c^2- ...
로 특정한 V 값에 해당하게 바뀌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 경우에는 특정한x 위치에 가만히 있는 쌍둥이가 아니라x= V* t 로 등속운동을 하는 쌍둥이가 가장 빨리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래야 두번째 항이 0이 되므로....
이 이야기를 원래의 글에서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두 가지 고유시간을 보고, 하나의 우주에 있는 두 가지 다른 관성계 이야기라고 착각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하지만,이 두 가지 우주는 기하학적으로 엄연히 다른 시공간이다. 모양이 동일하게 그려진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 더 명확히 이야기 하자면, 원통을 만들기 위해 선택을 한가지 했던 것 인데 x와 'x+1광년'이 같은 곳임을 가정한다고말했을 때, 실은 (t,x)와 (t,x+1광년)이 같은 시공간의 지점임을, 모든 t, x에 대해 가정한 것이었다. 이 때 이 시공간의 대한 중요한 선택을 이미 한 가지 하였고, 그리고 나서 추가적으로 위와 같은 두 가지 고유시간 중 하나를 각기 사용하기로 하면, 이는 결과적으로 두 가지 다른 시공간을 이야기하는 셈이 된다는 말이다. 각각의시공간에서 가장 빨리늙는 쌍둥이는 서로 다르겠으나, 주어진 하나의 우주에서의 역설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이 원통 우주에서 등속 운동을 하는 두 쌍둥이를 어떻게 구별하지? 하는 의문을 계속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옳은 답은 "고유시간의 모습, 즉 시공간 자체가 구별한다" 이다.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또 다시 관성계와 등속운동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그동안 많이 접했을 입문서적과 일반강연들의 부작용 때문에 생기는 혼란일 뿐, 이 이야기에 그 어떤 모호함도 없다. 클린턴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그 유명한 말을 차용하자면 "바보야, 문제는 고유시간이야!"
일반 상대성 이론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그 근저에 있는 리만 기하학이 이제 막 출현하고 정제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본인도 이 새로운 기하학을 그의 친구인 수학자 Marcel Grossman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인지, 초창기에는 전 세계에 이를 이해하는 사람인 열 명 밖에 없다는 등의 헛소문들이 난무하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사실 지금의 이론 물리학 수준에서야 매우 정석적인 내용이고, 대학원 한 학기의 전공 수업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그렇다고 해도 이걸 10여분의 읽을거리에 담는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 글의 목적은 익숙함을 기르는 데 있을 뿐입니다. 물론 위 수학식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읽기를 중단해 버렸을 독자들이 상당수 이겠으나....
한편, 일반 상대론에 대한, 그리고 일반 대중을 위한 글이라고 하면, 이 유명한 이론과 연결된 "인문학"적인 혹은 "철학"적인 고찰을 기대하실 것 같네요. 하지만, 경험 있는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제 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접근은 아닙니다. 모든 과학은 근본적으로 손으로 하는 겁니다. 일상의 언어는 그 손이 하는 일을 전달할 뿐이지요. 과학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수학적인 표현들 안에는 수많은 실험과, 가설과, 이론과, 경험이 녹아들어, 숨 쉬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를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때, 그 뒤에 숨어 있는 실체가 잘 보이지 않으니 일상 현상 속에서의 유사함을 찾거나, 어휘 하나하나에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흔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으나,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학구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본질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은 어렵더라도,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들어 있는 진짜 이야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버릇을 키워보는 게 어떨까요? RNA 바이러스가 작동하는 방식의 모든 것을 몰라도, 그게 세균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철학적 수사가 있을 자리가 없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