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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핼리 Halley Dec 11. 2023

20대 후반, 내가 수영을 시작한 이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추억

나는 올해 5월까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맥주병이었다.

어렸을 땐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가면 몸이 가벼워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뜰 수 있었지만, 성장기가 지나고 친구들과 워터파크에 놀러 가거나 계곡에 놀러 가면 어렸을 때처럼 몸이 뜨지도 않고, 방심하다 익사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맘 편히 놀지 못했다.


수영을 못한다고 해서 인생을 살아오는데 큰 불편을 느끼진 않았다. 물놀이를 하는 것도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이고, 그냥 발 닿는 곳에서 서서 놀면 되는 거 아닌가? 수영의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한 채 27년을 살아왔다.


그러다 올해 5월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가본 동남아시아의 섬들은 마치 디즈니 영화의 '모아나'가 튀어나올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수면은 물고기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고, 야자수는 푸르렀다. 세전 처음 접해보는 이런 동화 같은 세상을 온전히 즐겨보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아름다운 섬을 온전히 느끼고 탐험하기엔 나의 덜떨어진 수영 실력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나도 좀 더 바닷속 깊이 들어가 산호 속에 숨어 있는 물고기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야매 수영 실력과 이에 따른 익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섬을 겉핥기식으로 밖에 즐기지 못해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수영장은 또 어떤가?

아름다운 선셋을 배경으로 유연하고 부드럽게 자유형을 할 수 있었더라면(접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 여행을 좀 더 완전하고 풍요로이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결심했다. 세계 3대 선셋이라 불리는 코타키나발루의 선셋을 보며 한국에 가자마자 수영 강습을 끊겠노라고 다짐했다. 20대 성인 남자가 기초반에서 등에 거북이를 차고 킥판 잡고 어푸어푸하는 게 뭐가 쪽팔리다고 이제까지 미뤄왔던 것인가(실제로 수영장에 등록하기 직전까지 내면에서 했던 고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린 치기 어린 마음이 꽤나 한심스럽다. 사람은 쪽팔림을 감수할 때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거 같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근처 수영장을 알아보았고, 정말 운이 좋게도 마지막 한 자리 남은 수영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여름 시즌이 시작될 무렵 수영장 강습 등록은 점점 치열해지는데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행운이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때 바로 신청하지 못했다면, 또 기억 속에서 잊혀 수영을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6월부터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12월까지 5개월(7월 한 달 동안은 이직 준비로 못했다) 동안 수영을 하고 있다. 6월에는 일주일 중 5일을 나갔지만,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일주일에 두 타임(화, 목) 밖에 나가지 않아 절대 운동량이 많다고는 할 순 없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화요일, 목요일만큼은 최대한 사수하며 빼먹지 않고 다닌 결과 현재 중급반에서 평영을 배우는 정도까지는 하고 있다. 곧 한 팔 접영도 배우게 되는데, 올해 안에 접배평자(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의 방법론 정도는 다 배워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아직 수영을 배워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수영 강습을 권하고 싶다. 나처럼 나이 먹고 기초반에 들어가는 게 쪽팔리다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말해두자면, 전혀 그런 게 없다. 실제로 가보면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처음부터 배우시는 경우가 많고, 남녀노소 누구나 섞여있다. 그래도 쪽팔린다고 하더라도 최대 2~3달 정도만 쪽팔리면 그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폼 잡고 수영을 할 수 있다.


수영 강습은 다른 운동에 비해 금액적으로도 저렴하다. 나는 한 달에 35,000원 정도를 내고 수영 강습을 받는데, 한 번 갈 때마다 4,000원 정도에 1시간 동안 강습을 받는 것이다. 어느 스포츠가 전문가들에게 시간당 4,000원 내고 배울 수 있을까? 내 경험상은 없다. 가격도 메리트 있고, 체력도 금방 기를 수 있는 수영.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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