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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락 이강휘 Sep 23. 2021

문득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듣는 재즈

<Dat Dere>, Bobby Timmons Trio

아주 어릴 때 일이다. 옆집에 사는 똘똘이(가명)가 피아노를 배운다는 사실에 고무된 엄마가 내게 피아노를 배우지 않겠냐는 제안을 건넸다.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왜냐고? 난 이미 젠더의식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볼 수 없었던 내 멍청한 친구들과 함께 흰 고딕체 글씨로 ‘OO피아노 학원’이라고 적힌 초록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똘똘이를 ‘가시나(계집아이의 경상, 전라, 충청 방언)’라며 신나게 놀리고 온 터였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차마 이런 비윤리적인 얘긴 못하고, 피아노 따위는 ‘가시나’들이나 배우는 거라고, 지금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미선이, 봉선이(둘 다 가명)도 모두 여자가 아니냐는 근거를 댔다. 미선이와 봉선이라는 두 명의 표본으로 ‘피아노는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성급하게 일반화해버릴 만큼 당시 내 판단능력은 보잘것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피아노 학원 수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건 동료들에 대한 배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꼬마들의 우정을 가장한 집단의식이 때론 더 무서운 법. 그들은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내 등 뒤에 칼을, 아니 ‘가시나’를 꽂을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들의 눈을 피해 그 초록색 가방을 메고 다닐 용기가 내겐 없었다.


이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 발로 피아노 학원을 찾아갈 만큼 배움이 절실하지도 않았기에 피아노는 버킷리스트에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항목 정도의 취급해왔다. 그러다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으니, 바로 재즈를 듣기 시작한 것. 피아노라는 악기가 모던 재즈에서 워낙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다 보니 현란한 피아노 연주를 듣노라면 ‘이런 연주를 하고 있으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하는 호기심이 돋기 마련이다. 

차분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빌 에반스(Bill Evans)나 브레드 멜다우(Brad Mehldau)를 들을 때는 이런 생각이 비교적 덜 드는 편이다. 감탄하기만도 충분히 바쁜 대다가 이런 연주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두 뮤지션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즈 팬들에게까지 폐를 끼치는 일인 것만 같은 죄책감이 일기 때문이다. 대신 바비 티몬스(Bobby Timmons)의 ‘Dat Dere’ 같은, 신나는 곡은 어깨를 흔들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걸 참기가 힘들다.(이 상상도 폐를 끼치는 일이겠지만. 아무튼 죄송합니다.)

베이스와 함께 한 마디씩 위아래를 오가는 감각적인 스윙이 끝나면 인상적인 멜로디의 솔로가 시작된다. 건반 사이를 오가는 경쾌한 타건이 흥겨운 분위기를 이끈다. 이때부터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 재즈 트리오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건 바비 티몬스가 아닌 나다. 얼굴에 한껏 웃음을 머금은 채 몸을 흔들거리며 자신감 있게 건반을 누른다. 고개를 까닥여가며 리듬을 타면서 내가 펼쳐낼 음을 입으로 뱉어내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구현하는 능숙한 뮤지션의 모습이다. 내 솔로가 끝나면 흐뭇한 표정으로 베이스 현을 튕기고 있던 샘 존스(Sam Jones)의 즉흥연주가 시작되고 지미 콥(Jimmy Cobb)과 나는 그의 연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리드미컬한 헤드로 돌아와 연주를 마무리한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두 연주자와 눈인사를 마친 난 피아노에서 일어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관객들은 참았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준다. 다양한 농담을 지닌 ‘브라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찰스 웨스트 코프, <음악 레슨>(1869)

그때 엄마의 제안을 수용했으면 어땠을까. 체르니가 든 가방을 메고 쫄래쫄래 피아노 학원으로 가던 똘똘이를 놀리지 않을 만큼 조금만 더 성숙했었더라면, 아니면 차라리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마치 처음 걸음마를 하듯 서툴고 조심스럽게 건반을 누르고 있는 찰스 웨스트 코프(Carles West Cope)의 작품 속 저 아이처럼 좀 더 어렸었더라면. 제아무리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다손치더라도 지금 타이핑을 하는 데에도 수도 없이 오타를 내고 있는 내가 감히 재즈를 쳐낼 수 있었을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만약 그때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길거리에 피아노를 한 대 놓아둔 채 흥겨운 스윙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박수를 이끌어내고, 그 리듬에 맞춰 재즈를 연주하는 괴짜 아저씨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긴 세월을 지나 얼마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실은 재즈를 연주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피아노를 배워놓으면 좀 더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재즈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어베리어블 텐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라!’라든지 ‘D 도리안 음계만으로 어떻게 저런 프레이징을 펼쳐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같은, 못 알아듣겠지만 왠지 멋진 말로 허세를 떨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는 걸 부정할 순 없겠다.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피아노 학원에 출석할 자신은 도무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따라 하기만 하면 얼추 피아노 소리 흉내를 낼 수 있게 만드는 유료(!) 어플을 깔아 딸아이의 장난감 같은 디지털피아노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고 똥땅 거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내 손가락은 생각대로 도통 움직여주질 않는다. 내 몸뚱이의 일부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껴가며 역시 뭔가를 제대로 배우려면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저 그림 속 여인처럼 사랑스러운 눈길은 아니더라도, ‘그딴 식으로 치면 영원히 이 곡은 칠 수 없을 거야.’라는 질책이든지, ‘나이 먹어 피아노 배운다고 욕본다.’라는 위안이 필요하다. 그치면 어찌 되었든 내 손가락에 의해서 음악 비슷한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라 아직은 그럭저럭 따라 할 만하다.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된 피아노 한 대를 구입해서 집에 들여다 놓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집 기획재정부 장관(속칭 ‘아내’)이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지. 가정 내 여론을 형성해 장관을 압박하기로 한 나는 홀로 인형들과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있던 딸에게 말을 건다.

“딸, 피아노 배우지 않을래? 피아노를 배우면 멋지게 음악을 연주할…”

“싫어.”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마치 먼 옛날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아빠의 제안을 단칼에 잘라낸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하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아이돌 되는 게 꿈이라고 했잖아. 그럼 음악을 배워야…”

“싫어. 힘들어.”

아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나 아이돌 안 할 거야. 바리스타 할 거야. 손님, 커피 뭐 드실래요? 아메리카노?”

딸이 장난감 커피를 내리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요.”

여론 형성은 고사하고 졸지에 딸의 소꿉놀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녀석, 아무래도 나보다 한 수 위다. 



This Here Is Bobby Timmons(1960, Riverside)

Piano_Bobby Timmons

Bass_Sam Jones

Drums_Jimmy Co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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