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집을 사야 할 이유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면
여기 사탕 바구니가 있다. 만약 모두가 좋아할 만한 딸기, 오렌지, 복숭아, 포도 사탕만 골라 먹는다면 어느새 바구니엔 이를 제외한 맛없는 사탕만 남게 될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현재가 과거의 내가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면 우리는 어떤 난 도대체 사탕을 먹은걸까?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낮은 이상을 가질 것. 둘째, 높은 이상을 갖되 이를 위해 죽도록 노력할 것.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궤적은 조금씩 다르다. 화살의 시위가 조금만 틀어져도 꽂히는 지점이 다른 것처럼,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다.
나는 행복이 첫째와 둘째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낮은 이상을 가지고 사는 것은 재밌지 않아 보이고, 높은 이상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고되고 옥죄게 만들어 행복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면 남은 선택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일을 한다면
싫어하는 일은 괜히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 고통과 시련의 시간. 어쩌면 깊은 인내와 고뇌에 기반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린 이런 상처를 덮어두고 잊어버리고 싶어 할지 모른다. 마치 배워봄 직할만 한 유용하고 생산적인 기술이 있는데도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사람과 같다.
할 자신이 없고 용기가 없어서, 안 해본 일이라서 놓치게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싫어하는 일을 함으로써 열리는 세계는 어쩌면 이전 단계에서는 감히 꿈꿔볼 수 없는 세계관을 열어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싫어하는 일을 해보자.
최소한 집중해서 몇 분만 해보면 스스로 감춰놓았던 싫어하는 이유와 마주하게 된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감옥에 가는 것처럼, 고통을 겪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집을 살 때가 아니야
한국에서 아파트는 선망과 원망을 받는 대상이 된다. 아마 이런 야누스적인 형태의 자산은 부동산밖에 없을 것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작년에는 집을 사지 말라는 의견이 많았다. 고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물론 그들이 예견한 시점이 맞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집값이 내려간 지금이야 말로 매수하기 적절한 시기일 테지만 이번에도 사람들은 철저히 반대를 외친다. 금리가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집을 사야 한단 말인가? 금리가 낮고 집값이 낮을 때?
미안하지만 그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자산 시장이란 결국엔 수요과 공급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좋은 거래처엔 항상 사람이 붐비는 법이다. 또 다른 의견도 있다. 인구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의견인데, 반론을 제기하자면 건물은 얼마든 부수고 지을 수 있지만 좋은 위치의 땅은 한정된 자원이다.
당장 지하철 노선을 중심으로 부동산을 찾아보면 아마 지하철 주변의 모든 땅이 상가, 아파트, 주상복합, 빌라 등등 다양한 시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이런 입지야 말로 무기다. 다만 인구가 줄어들면 땅끝마을의 땅 한 평이 몇 천 원에 거래되는 것처럼 각 지방이 이렇게 헐값에 거래될 일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