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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11 – MY HEART DRAWS A DREAM

파트 5 – 운명의 이끌림

by The being

파트 5 – 운명의 이끌림


(광장, 늦은 오후. 비 그친 뒤 눅눅한 공기. 젖은 전단지, 뒤엉킨 발걸음, 서로의 어깨를 미는 손들. “재개발”과 “보존”이라는 단어가 돌바닥을 튀기듯 튀어 다닌다.)


보존파 주민: “역사를 부숴서 얻는 게 뭐야!”

찬성파 상인: “역사로 밥이 나오냐고! 여긴 가게가 먼저야!”

군중: “에이— 밀지 마!” “비켜!” “들어와!”


(사람들 틈새. 검은 모자챙. 미라뉘주가 군중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가며 딱 한 문장만 던진다. 목소리는 낮고 단단하다.)


미라뉘주: “동의하면 — 우선입점권은 너희 거다.”

(그 한 마디가 물에 떨어진 먹물처럼 번진다. 찬성파의 눈빛이 단단해지고, 발걸음이 앞으로 기운다. 보존파가 밀려나며 신음한다. 비에 젖은 금속 지지대가 바닥에서 ‘끼익’ 소리를 낸다.)


상인1: “지금 잡아! 먼저 들어가면 이긴다!”

보존파 청년: “밀지 마! 장대 내려!”


(혼란 한복판. 픽스가 스툴을 펴고 앉는다. 젖은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었지만 표정은 잔잔하다. 기타의 첫 음이 빗물 냄새와 섞여 번진다.)


픽스(노래): “꺼진 불씨, 바람이 스치면 다시 숨을 쉰다—”

논알콜: “픽스, 지금은—”

픽스: “누군가는 들을 거야.”


(잠깐, 몇 명의 시선이 갔다가 곧 야유가 덮친다.)


찬성파 남자: “이 난장판에 노래질이야?”

여자 목소리: “길 막지 마! 내려!”


(뒤쪽에서 누군가 카트를 세게 밀친다. 카트가 임시 가판대 다리에 부딪히며 지지대가 미끄러진다. ‘우지끈’ — 대각으로 기운 상판이 삐걱이며 픽스 쪽으로 쏟아진다.)


논알콜: “픽스!”


(‘쾅!’ — 묵직한 상판 모서리가 픽스의 어깨와 측두부를 스친다. 그녀가 스툴에서 비틀려 떨어지며 손에서 기타가 미끄러진다. 줄이 ‘찡’ 하고 울고, 피가 빗물 자국 위로 얇게 퍼진다.)


보존파 노인: “아이고!”

누군가: “119 불러!”


(논알콜의 시야가 느려진다. 병원 진료실의 흰빛,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 환호 속에서 홀로였던 공허의 잔향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숨이 얕아지고 손끝이 떨린다.)


논알콜(속마음): “그날처럼… 아무것도 못 하면… 안 돼.”

(그때, 광장 변두리에서 인파가 부서지듯 갈라진다. 선희가 손에 쥔 페이트 가이드를 높이 들고 달려온다. 바늘이 격렬히 떨리며 논알콜과 픽스를 곧게 가리킨다. 그녀의 뒤로 자비, 콩, 프린터, 노블이 잇는다.)


선희: “여기야! 바늘이 꽂혔어!”

자비: “흩어져. 먼저 안전 확보.”

콩: “픽스부터!”(콩이 곧장 쓰러진 픽스를 들어 올리듯 부축한다. 노블은 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상황, 시간, 증언을 빠르게 받아 적는다. 짧고 정확한 문장들이 적잖이 쌓인다.)


노블(속삭임): “16:42, 임시 가판대 붕괴, 군중 밀집, 가해 의도 불명확.”


(한편 프린터는 몸을 낮춰 돌바닥에 펼친 스케치북 위로 ‘뢰브’ 펜을 굴린다. 번개처럼 빠른 선. 쓰러진 가판대의 각도, 픽스의 위치, 카트의 궤적, 신발자국의 방향 — 그림이 현장을 얼려둔 듯 적시다.)


프린터(낮게): “흐름을 잡아둬야 해.”

(자비가 논알콜 앞에서 멈춘다. 그의 눈에 광장의 난류가 반사된다.)


자비: “지금이 선택의 순간이야.”

논알콜: “…무슨 선택?”

자비: “네 안에서 잠든 걸 깨울지, 외면할지.”


(선희가 페이트 가이드를 내려다본다. 바늘이 가쁜 호흡처럼 떨다가, 논알콜의 심장선과 포개지는 듯 멈칫한다. 그녀가 고개를 든다.)

선희: “다음 장(章)의 시작점. 맞아.”

(멀찍이, 골목 입구의 가로등 아래 미스터 스트라이프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다. 팔짱은 풀었지만, 표정은 읽기 어렵다. 목이 짧게 홱 돌아가고, 어깨가 한 번, 손가락이 두어 번 떨린다. 그는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광장과 논알콜, 그리고 픽스를 지켜본다.)


(군중 틈 어딘가, 미라뉘주가 스치듯 보인다. 그는 더 말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했다는 듯, 한 번 가볍게 턱을 치켜들고 군중에 흩어진다. 그의 한 마디는 아직도 사람들의 결심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찬성파 상인(헐떡이며): “우선 들어가면… 우리가 산다고!”

보존파 주민(밀치이며): “사람부터 좀 비켜!”


(콩이 픽스를 데리고 물러난다. 노블은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방금 목격한 증언을 두세 마디씩 받아 적는다. 프린터의 ‘뢰브’ 펜 끝에서 잉크가 부드럽게 빛난다. 선희는 페이트 가이드의 바늘 움직임을 따라 주변 동선을 조정한다 — 누구를 막고, 어디로 비켜야 할지, 거짓말처럼 길이 열린다.)


선희: “여기! 이쪽으로 빠져! 바늘이… 길을 내.”


(논알콜은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못 움직인다. 바닥의 물웅덩이에 비친 자기 얼굴이 낯설다.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울대가 저릿하다. 오래전 무대에서 빛을 마시던 그 심장이, 다른 방식으로 다시 뛴다.)


자비(조용히): “무대는 바뀌었고, 관객도 달라. 하지만 노래의 주인은… 네가 정해.”

논알콜: “나는… 목소리를 잃었어.”

자비: “목소리만이 노래는 아니지.”


(순간, 광장의 소음이 저 멀리로 밀린다. 논알콜의 귀에는 한 음이 맴돈다 — 픽스가 항상 첫 줄에 얹던, 그 단정한 숨. ‘꺼진 불씨, 바람이 스치면…’)

논알콜(속마음): “멈춰 있던 시간이… 움직여.”


(그는 주먹을 쥔다.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눈을 뜨자, 어지러웠던 장면들이 느릿하게 정렬된다. 무너진 가판대의 각도, 밀려드는 발의 방향, 얇은 틈. 그 틈 사이로, 선택이 보인다.)


논알콜: “선희.”

선희: “응.”

논알콜: “페이트 가이드… 나한테 한 번만—”

선희(짧게 망설이다가): “지금은 네가 길이야.”

(스트라이프가 멀리서 짧게 목을 가다듬는다. “크흠—” 소리가 광장 소란에 씻겨 사라진다. 그는 여전히 방관자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장면을 계산하는 듯, 군중의 결을 읽고 있다.)

노블: “시간 16:47. 부상자 1. 구조물 붕괴에 따른 2차 위험… 기록.”


프린터: “증거선 확보.”


(콩이 픽스를 데리고 골목으로 빠져나간다. 선희가 뒤를 받쳐 주고, 자비가 마지막으로 논알콜을 본다.)


자비: “네가 부르면, 길은 열린다.”


(논알콜의 가슴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몸을 뒤집는다. 공기가 달라진다. 비가 그친 돌바닥 위로, 아주 미세한 진동이 번진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래 비어 있던 마음속이 바람을 머금은 듯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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