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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Oct 01. 2018

희망 편

용희사전 18

희망이 없는 삶이 있을까? 누구나 바라는 희망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멀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희망이 현실과는 너무 달라서 좌절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또는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명시되어있다.     


희망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는 사실 많은 것들을 희망하는 것 같다. 현실의 만족도가 떨어질수록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 같다.     


희망은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각자가 원하는 모습, 상황, 환경을 상상해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상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희망은 분명 상상하는 능력이고 희망은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왜 희망을 잃어버렸을까?     


개인적으로 희망은 상상하는 능력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다만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좌절하여 부정적인 상상만 이루어진다면 희망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수많은 좌절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되묻고 싶은 것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묻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를..     

사실 실패라는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좌절하는 것은 실패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포기의 반복으로 인하여 쉽게 좌절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좌절을 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좌절은 누구나 겪게 되어있다. 하지만 쉬운 포기로 인한 좌절은 진정한 좌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난 안돼’, ‘내가 그렇지 뭐.’ 등 스스로를 믿지 못하여 쉽게 좌절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우리는 희망은커녕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모든 것은 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조차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목표를 이루고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희망은 강한 믿음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의 기준이나 기호가 아닌 사회의 기준이나 기호로 자신을 평가하고 남을 평가 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 사회에 적합한 사회인을 육성하기 위하여 획일화된 사람을 교육시키고 성장시킴을 알 수 있다.    


나는 어떤 특정 사회에서 살게 된다면 그 사회의 최소한의 룰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의 요구에 이끌려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리고 사람이 매력적인 것은 저마다의 개성 때문이다.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깨우치고 발전시켜 나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요구에만 맞게 살아간다면 아마도 그 요구에 맞는 수준의 보상만을 얻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떠한 희망을 가지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그 희망 역시 사회의 요구에 맞는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저마다의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개성이 과연 획일화된 희망에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공동체 안에서 통합되는 희망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각자의 희망이 같은 것을 향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개인의 희망은 개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환경 때문에 희망을 버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가난해서, 몸이 불편해서, 꿈이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희망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는 그들도 각자의 희망이 존재할 것이다. 정확히는 희망을 갖는 것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기가 쉽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환경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실패는 없다. 다만 포기만 있을 뿐이다. 희망을 가지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그저 포기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좋은 대학을 못 가고 좋은 직장을 못 가고 결혼을 못하고 아이가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다고 잘못된 인생이 아니다.     


잘못된 인생이 있다면 희망을 가지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인생이 나는 옳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나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내가 과연 희망이 없는 것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이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셔서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이 아닌 가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그 생각을 멈추기를 권한다.     


인간은 자신이 상상한 데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그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당신의 그 희망이 바로 당신의 모습임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제발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모든 재앙이 시작되고 끝난 후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지금 잠시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응원한다. 분명 그 사람들은 영원히 희망을 봉인한 것이 아니라 잠시 접어 둔 것이라 믿는다.    


나라는 사람 역시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멈출 것만 같았던 나의 삶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나를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너무도 부족하지만 이러한 나도 세상에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삶을 있어가고 있다.     


희망을 끈을 놓지 마세요. 당신이 당신을 진정으로 믿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에요. 그리고 큰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에요. 당신의 희망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에요.    


모두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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