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요즘 남자머리 이발비가 얼마나 하나요? 대략 20000원 정도일까요?
남편은 제목이 말한 바와 같이 5000원에 이발을 합니다. 무려 8년 넘게 물가상승 없이 고정된 비용으로 한 달에 한 번도 아깝다며 대략 37일쯤 되면 미용실에 가는 편입니다.
남편은 듣기 싫어하는 소리이고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지만 제가 아는 남자 중에 상위 5% 짠돌이입니다. 무엇이든지 아끼고 또 아끼며 짜리 찌리 짠내 나게 사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걸 결혼생활 내내 느낍니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4살 6살 남자아이 두 명의 두상이 참 이쁘고 이발이 깔끔하면서 개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의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애들은 어디서 이발을 해요?"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한 아파트 상가 안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격이 5000원에서 8000원이라는 말에 다른 곳 보다도 싼 거 같아서 남편에게 말해주니 그 달에 바로 그 미용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5살인 아들과 함께 말이죠.
그 때 당시 5살 아들은 남편이 화장실에서 휴대용 이발기(일명 바리깡)로 이발을 했습니다. 군대 때 후임 머리를 밀어봤다는 경험으로 시작하더니 아이를 붙잡고 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시어머니께서 아들을 100일부터 황금색 보자기를 둘러서 이발을 시키셨는데 아들이 5살쯤 되니
"할머니한테 머리 안 해 아빠한테도 하기 싫어!
나도 친구들처럼 미용실 가고 싶어! "
라고 말하더군요.
사실 주변의 애 엄마들이
[니 아들은 어디서 머리 깎는데 머리가 저런다냐? 시골뜨기 애 같다 야]
라는 소리를 듣던 중이었습니다. 아들도 거울을 보더니 자기 머리가 못생겼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아빠와 아들은 그 달부터 새로운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둘이 합쳐서 이발비 [10000원]
사장님은 아들에게 [1000원]을 용돈으로 주셨으니 총[9000원] 이겠군요.
안 그래도 싼 이발비에 아들 용돈까지 주시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정도였습니다.
사장님은 아들이 미용실 의자에 앉을 때면 다른아이들과 다르게 꼭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놓고 맨발로 의자에 올라와 조심스럽게 앉는 모습이 미용사 인생 처음 보는 착하고 바른 아이라고 이뻐하셨습니다. 미용실 의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15000원이라도 받으라고 말씀드려 보면 꼭 10000원만 주고 가시라고 하며 저희 가족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하시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발비를 너무 적게 받으시는 거 아니세요?~"
(혹시 저희 남편이 돈을 아끼는 사람인 것 같아서그러시나 싶었습니다.)
사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사실은 제 여동생의 첫째 아들이 백혈병입니다. 동생이 많이 힘들 거 같아서 같이 기도해 줬지요. 다 큰 대학생 아들이 갑자기 백혈병에 걸리게 돼서 조카도 여동생도 얼마나 힘들까 싶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멀리 살아서 자주 보지는 못해도 늘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은 같겠구나 싶어 내 자식이 아픈 거 마냥 속상하고 내 일처럼 마음이 미어져서 많이 울었습니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너 많이 힘들지 않니? 나한테 티 내진 않지만
네가 많이 힘들까 봐 언니는 늘 마음이 아파~ "
라고 말하니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언니 ~ 나 진짜 괜찮아.
처음엔 너무 놀라고 아들이 아프다는 게 힘들고 속상했는데 하나님은 딱 그 사람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 주시더라고 난 지금 딱 감당할 만 해 그리고 감사해. 이상하게 고난인데 오히려 기도하면 마음이 알 수 없는 기쁨으로 행복하고 또 잘 치료될 거라고 믿어져!"
동생의 그 말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감당할 만큼의 시련이라는 게 무엇일까?
동생이 말한 시련을 감당할 만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그 가족의 모습은 남들이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삶에서 감당하면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가족이 함께 웃으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동생이지만 내 동생도 지금 저렇게 지내고 있겠구나 하며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면 웃을 수 있을까?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일까? 라며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고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잘 견디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 알고 싶었는데
가능한 거라는 걸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행복에 조금이나마 잘 살아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렵지만 웃어줘서 고맙고, 힘들지만 네 명의 가족이 함께 단단하게 힘을 내줘서 고맙다고
마치 내 동생이 힘을 내며 사는 것과 비슷할 거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 가정의 시련에 마음이 아프기보다는 가족의 웃음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것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혹시나 아픈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게 자신이 갖게된 마음의 표현이 값싼 동정으로 나에게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진심이 전해져 듣고 있던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처럼 웃으며 지내주세요.
그리고 네 명이 늘 함께 와서 미용실에 앉아
서로를 바라봐주고 힘이 되어주는 그 눈빛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그때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저 한달에 한 번 가는 미용실에 우리 가족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고 웃어주고 함께하는 모습이 누군가를 따뜻한 마음으로미소 짓게 한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사장님은 여전히 이발비 5000원을 받으시고
딸아이의 앞머리까지 예쁘게 다듬어 주시면서
[공주~ 사랑스러운 공주는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신다.
누군가에게 이 사연을 말하지 않고 "우리 집 남편은 5000원에 머리를 이발해요." 라고 말하면 그 사장님 재능기부하시냐고 묻는다. 아니면 요즘 물가에 진짜 실존하는 미용실이냐고 묻기도 한다.
8년의 시간 동안 작고 연약했던 딸 아이는 느리지만 조금씩 단단해지며 자랐고 매달 그 시간을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모습을 지켜본 미용실 원장님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가족의 일에 함께 기뻐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계신다.
이 글을 통해 오랜 시간 고난 가운데 지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미소와 마음 그리고 진심이 담긴 응원을 전해주신 <ㄲ ㄲ ㅁ ㄹ 미용실> 원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 마음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그 동안의 연재북 글을 읽으시며 함께 울어주시고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신 작가님들과 구독자분들께도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목,일,월] 연약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아 연재가 쭉 이어질 예정입니다.
다음 글에는 좀 더 무거운 이야기지만 그 삶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살아온 일상들을 적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