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일을 없애지 않는다

조직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바꿀 뿐이다

by 엉뚱이

1화에서 맨먼스 계약의 균열을 이야기했다. 이번엔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 AI가 효율을 높이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어떤 조직은 효율이 오를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가.


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조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조직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30년간 기업 현장을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조직이 망가지는 건 대부분 드라마틱하지 않다. 임원 한 명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도 아니고, 경쟁사가 치고 들어와서도 아니다. 대부분은 아주 합리적인 결정들이 쌓여서 서서히 일어난다.


비용을 줄인다. 인력을 효율화한다. 중복 업무를 없앤다. 하나하나는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끝에서 조직이 마주하는 건 이상한 풍경이다. 숫자는 좋아졌는데 왠지 조직이 가볍다. 아니, 정확히는 속이 비어 있다.


"효율화 이후, 조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일이 아니다. 맥락이다."


맥락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한 가지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이것을 '맥락 자산'이라고 부른다.


맥락 자산이란 데이터로 잡히지 않는 조직의 실력이다. 왜 이 고객이 까다로운지, 저 부서와 협업할 때 어떤 지뢰가 있는지, 이 프로세스가 겉으론 이렇게 보여도 실제로는 저렇게 돌아간다는 암묵적 이해. 어느 문서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오래된 직원들의 머릿속에 살아있는 조직의 기억이다.


AI는 이것을 측정하지 못한다. 성과관리 시스템도 잡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효율화 과정에서 가장 쉽게 제거된다. "이 사람, 요즘 아웃풋이 별로야"라는 판단과 함께.


AI가 바꾸는 것


AI는 일을 없애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눈에 보이는 일을 자동화한다. 코드를 짜고, 문서를 요약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들. 이건 맞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맞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가 눈에 보이는 일을 처리하고 나면, 조직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그럼 사람은 뭘 해야 하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조직은 가장 손쉬운 결론으로 간다. 인력을 줄인다.


그때 맥락 자산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퇴직 패키지를 받고, 명예퇴직을 하고, 계약이 종료되면서. AI가 일을 없앤 게 아니다. 조직이 스스로 그 결정을 내린 것이다. AI는 그 방식을 바꿨을 뿐이다.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온다.

AI 시대의 성과관리는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가. 눈에 보이는 아웃풋만 측정하면, 조직은 맥락 자산을 계속 잃는다. 그리고 그 손실은 한참 뒤에야 드러난다. 대개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시점에.


다음 화에서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AI 시대에 성과관리는 무엇을 달리 봐야 하는가.



# 이 글의 저자는 30년간 대기업 HR 현장을 지켜온 조직·성과관리 전문가다. AI 시대에 조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현장의 언어로 풀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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