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이름만 같은 독일바게트. 프랑스인들이 싫어하겠지?
내가 경험한 유럽은 국경으로 영역을 가르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몇 다리 건너면 모두 친인척관계인 것 같다.
맘만 먹으면 비록 언어가 다르긴 하지만 독일뿐만이 아니라 유럽 내에서 자동차나 기차를 이용하여 다른 국가로 이동이 용이하다. 일부에서는 일요일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독일에서 국경을 접한 네덜란드로 쇼핑을 가기도 한다.
이렇게 유럽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하나의 문화권인 만큼 식문화도 유사한 경향이 있다. 그중 특히 독일에서 만난 바게트가 사뭇 재밌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독일과 프랑스는 수백 년 동안 전쟁과 외교, 문화와 경제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이웃 나라인 동시에 묘하게 애증의 관계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역사적으로 프랑스와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듣게 된다.
일부 독일 지역에서는 지금도 "또폴레옹"이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나폴레옹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서 일종의 상징이다.
1806년 나폴레옹이 베를린을 점령했을 당시,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하며 권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상징적인 사건은, 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에 있던 사두마차(Qurdriga) 조각상을 전리품처럼 파리로 가져간 일이다. 이 조각상은 평화의 여신이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탄 모습으로, 베를린 시민들에게는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나폴레옹은 이를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하며 사실상 독일에 굴욕을 안겼다.
이 사건은 독일인들에게 문화적 정체성마저 빼앗긴 순간으로 여겨졌으며, 훗날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해 사두마차를 다시 베를린으로 되찾아오며 복수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독일과 나폴레옹의 전쟁은 독일 연방 해체와 근대 독일의 정치 재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당시 프랑스에 의해 군사적·행정적 제도뿐 아니라 프랑스의 음식문화도 함께 전파됐다.
오늘은 애증의 관계라 할 수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바게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프랑스 하면 바게트, 바게트 하면 프랑스가 떠오르는데, 실제로 프랑스의 바게트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자국의 정체성을 담은 대표 음식이다. 하지만 독일에도 바게트는 있다. 다만 프랑스식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독일식 바게트다.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할 정도로 바게트에 엄청난 부심을 갖는 프랑스인들에게 독일의 바게트는 바게트가 아닐 것이다.
프랑스 바게트의 전형적인 겉바속촉과 비교하여 독일의 바게트는 강도가 다소 약한 경향이 있다.
독일 베이커리 진열대에서 마주치는 바게트는 처음에는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한 입 뜯어먹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빵의 결, 껍질의 두께, 내부의 수분감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프랑스의 바게트가 가볍고 향기로운 크러스트와 공기 가득한 속살을 자랑한다면, 독일의 바게트는 좀 더 묵직하고 진중한 식감을 보여준다.
독일식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기원한 전통 바게트를 독일인의 식생활에 맞게 변형한 빵으로, 특히 독일 남부와 서부 지방에서 프랑스식 바게트를 기본으로 삼되, 좀 더 실용적이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빵으로 변형되었다. 독일의 바게트는 기본 형태에서 출발하지만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호밀과 밀 혼합빵 중심의 제빵 문화를 갖고 있었기에, 바게트를 도입할 당시에도 단순히 프랑스식 레시피를 모방하지 않고 버터, 맥아, 씨앗류 등 독일인의 입맛에 맞는 요소들을 추가하면서 자체적인 독일식 바게트를 발전시켜 왔다.
"입천장이 까질 것 같아"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프랑스식 바게트와는 다르게 독일의 바게트는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확실히 부드럽다. 입천장이 까질 것 같은 질감은 아니다. 또한 흰 밀가루 말고 호밀 같은 거친 가루로 만든 바게트 등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름만 바게트다.
프랑스 바게트는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 이외의 어떤 것도 넣지 않는다. 독일의 맥주 순수령이 있듯 프랑스는 바게트 순수령이 있다.
독일식 바게트는 겉보기에는 프랑스와 비슷하지만, 그 안에는 식문화 마저 실용적인 독일이 녹아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한 끼 식사에서 파티 음식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식 바게트를 참 좋아한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참 좋다. 그래서 독일식 바게트를 처음 먹었을 때 한입 먹고 피식 웃었더랬다. "바게트가 아닌데?"
그런데 자주 먹으니 묘하게 먹기 수월하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치아와 잇몸 등의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아서인지. 좀 더 부드러운 독일식 바게트가 취향에 맞아진다.
프랑스 바게트가 '하루만 먹고 마는 예술'이라면, 독일의 바게트는 ‘ 하루 이틀쯤 지나 먹어도 맛있는 생활 빵’이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식 바게트와 다른 독일식 바게트의 매력이다.
붙어있는 땅의 이웃나라지만 참 다른 두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