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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ernickel 검은 빵

빵 맞아? 독일에서 제일 인상적인 독일스러운 빵

by 연우

이 빵이 빵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겠지?

실제로 맞닥뜨리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빵.

이태원 근처 경리단길에는 독일식 빵을 파는 베이커스테이블이라는 베이커리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처음 접해본 펌퍼니컬. 무엇이라 딱히 정의 내릴 수 없었던 이 것을 처음 먹어본 날이 생각난다. 이렇게 부스러지는 신맛이 나는 빵이라니... 어찌 먹어야 할지 몰라 슬며시 밀어두었던 그것.


실제로 독일의 일반적인 베이커리 샵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빵이 아니다.

대신 진공 포장이 되어 마트 선반에 다른 양산빵들과 놓여있다.

펌퍼니켈은 크림치즈 같은 크리미 한 질감의 스프레드 같은 것을 발라서 먹으면 와인과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묵직함을 가지고 있다.

잘 부스러지기 때문에 나의 개인 취향으로는 카나페 형태로 먹는 것이 적합했다.

100% 통호밀(grain rye) 또는 호밀 굵은 분쇄곡(rye meal)을 사용하고, 발효원으로는 천연 사워도우를 쓴다고 한다. 내가 독일 와서 먹어 본 것은 신맛이 덜하다. 대신 훨씬 무게감이 있다.


펌퍼니컬 한 장을 꺼내 보았다. 이 제품은 신맛이 없다.

펌퍼니컬은 주로 독일 북서부 베스트팔렌(Westfalen) 지역에서 기원한 호밀 통곡물빵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바게트가 가벼운 크러스트로 유명하다면, 펌퍼니컬은 무겁고 습윤한 내부와 강한 풍미로 독자적인 입지를 가진다.


이 빵의 이름은 독특하게도 '펌프(pumper: 방귀 소리)'와 '니컬(nickel: 악마)'이 합쳐진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즉, '악마가 방귀 뀌는 빵'이란 뜻으로, 소화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옛날 인식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펌퍼니컬은 정제되지 않은 호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소화에 도움이 되는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KakaoTalk_20250617_090254963_01.jpg 독일 마트에서 판매되는 유기농 펌퍼니컬의 한 종류


펌퍼니컬은 일반적인 빵처럼 오븐에서 빠르게 구워지지 않는다.

이 빵의 진정한 특징은 바로 100℃ 이하의 저온에서 16~24시간 이상 천천히 증기로 익힌다는 점이다. 그래서 펌퍼니컬은 빵을 굽는다기보다 “익힌다”는 개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펌퍼니컬은 마치 크럼케이크 같은 질감을 같는다. 뚝뚝 잘 부러지고 꽤 수분감이 있다.


펌퍼니컬은 가장 독일다운 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소비되는 현대 사회에 역행하듯 느리고 정직한 맛을 선사한다. 독일은 융통성이 없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한 사례를 들어보자면.

구청 같은 관공서에서 비자 신청을 한 후 실물카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바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실물비자가 만들어지면 찾으러 가는 것도 약속시간을 관공서에서 정해서 집으로 서류 우편물을 보낸다. 만약 우편물을 수령 못해서 정해진 시간에 못 찾아 다음날 가도 다 만들어진 것을 절대로 주지 않는다. 관공서 문을 들어갈 수 조차 없다. 다 된 것을 그냥 전달만 해주면 될 것을... 다시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우편으로 발송한다. 찾으러 오라고. 그런 지리한 일련의 과정들이 몇 주 혹인 몇 달은 그냥 지나간다. 거 참... 이 사람들.


아무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느리고 정직한 맛을 내어 깊은 풍미가 전해지는 빵이 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빵만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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