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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Oct 24. 2021

회사에서 한 게 없긴 왜 없어요

결코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직장 동기가 이직을 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어색한 나를 포함한 MZ세대들은 주말엔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다. 3년마다 회사에 권태기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이직한다는 동기들의 소식이 잦아진다. 한 친구는 연봉을 20%나 올렸다니 대단하다. 괜히 한 회사에 충성하고 있는 내가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빼고 다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분명 같이 입사했는데 동기가 실력을 쌓아 이직할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는지 괴로운 마음이 든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대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우리 회사 개발자의 연봉이 올랐다.

IT, 이커머스, 유통 등 업계를 불문하고 테크 직군에 대한 수요가 나날이 늘어 회사들은 개발자 모셔오기 전쟁 중이다. 20대에 연봉이 1억이 넘는 개발자가 있다는 전설 같던 이야기도 이제는 점점 흔해진다. 몇 년 전 개발을 배워 커리어 전환에 성공한 선배가 생각난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그의 행동은 미래를 내다본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이들과 상관없는 비개발자 사무직이다. 코딩이나 배워볼까, 빅데이터를 배워야 하나, 기웃기웃 거린지도 1년이 되어간다. 유망한 직군으로 나의 직업을 바꾸는 게 정말 맞는 결정일까.


또 실수를 했다.

이 업무를 맡은지도 3년이 되었는데, 왜 자꾸 놓치는 부분들이 생기고 모르는 것들이 날 괴롭히는 걸까. 신입이라는 면죄부도, 사수라는 방패도 없다. 쩔쩔매는 나를 보는 후배만 있을 뿐이다. 일머리는커녕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회사랑 안 맞는 사람인 것 같다. 이번 고과도 보나 마나 C 일게 뻔하다. 이런 업무능력으로 진급이나 할 수 있을까. 이 회사를 몇 년이나 더 다닐 수 있을까. 회사에서 종종 찾아오는 이런 현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할지 혼란스럽다.


당신의 신입사원 시절을 기억하나요?


이 글은 스스로 되돌아보며 나를 위로하는 글이다.

직장에 대한 회의감과 무료함으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이패드에 써두었던 1년 차 신입시절의 일기를 읽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 책상 위 전화벨이 울리던 날, 수만 가지 생각으로 전화기를 바라만 보며 받지 못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를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꽤 공포감이 느껴지게 써둔 문체도 귀여웠다. 지금은 전화벨이 울리면 번호를 쓱 확인하고 받을지 말지 판단할 여유도 생겼고, 어깨와 귀 사이에 수화기를 끼고 다른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도 생겼다. 아침에 출근해서 어떻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을지 고민된다는 글도 있었다. '아니 그냥 인사하고 앉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답답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팀장님과 내 자리 사이에 거리가 있어서 효율적인 동선이 안 나온다는 게 고민의 골자였다. 인사를 안 하면 예의 없는 신입사원으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된다는 말도 덧붙여두었다. 분명 인사를 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팀장님이 못 들으신 것 같아서 속상하다는 문장에서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어라? 일기를 보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워졌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과 영상들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성공한 삶은 이런 거다. 나는 이렇게 해서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무차별한 자극과 동기부여는 가끔 상처로 돌아온다. 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한 나는 실패한 것일까. 나는 언제쯤 저런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신입시절 끄적였던 일기는 이러한 생각에 '꼭 그렇지 않아'라고 말해주며, 지금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편지가 되었다. 사회생활 초창기에 겪었던 갈등과 고민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꽤 많이 해결했고 발전했다. 그것들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서 누구도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사소한 일일까?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 작은 것들이라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이루며 하루하루 출근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제의 고민이었던 전화받기, 인사하기가 오늘의 고민 리스트에는 찾아볼 수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신입시절의 고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전화를 어떻게 받을지 치열한 고민을 했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전화 업무에서의 실수로 혼이나기도 하면서 지금의 스킬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스킬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민 생각과 깨달음도 얼마나 많은가. 업무와 인간관계,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곳이 회사이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느낀 것들을 되돌아보자.

누가 잘했다고 인정해주지 않아서 별 것 아니라고 넘겨버렸던 우리의 고민과 노력을 찾아보려고 한다. 요즘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가죽공방, 도자기 만들기, 쿠킹 클래스와 같은 원데이 클래스나 취미들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회사에서 이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찾다 보면, 직장생활에 대한 무료함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업적을 쌓지 않아도 꽤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다.


나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점심도 잘 먹잖아?

대단한 성취를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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