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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Oct 20. 2019

공포의 전화벨이 울리면

우당탕탕 신입시절기

따르르르르르르릉

이 전화벨 소리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 3초가 걸렸다. 신입시절 팀 배치를 받고 깨끗한 새 전화기에 선을 꽂고 난생처음 내선번호라는 것을 부여받았던 날이었다. 명함에 적히게 될 나만의 오피스 전화번호가 생긴 것이다. 전화기 세팅을 완료하는 것에도 반나절이 걸린 나에게, 아직 아무런 일도 없이 인터넷 창만 보고 있는 나에게, 전화 올 곳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지만 전화를 받기 시작할 때가 되면 차근차근 '전화는 이렇게 받는 거야' 같은 교육이 있을 줄 알았다. 전화가 오면 상대가 누군지 생각하고, 수화기를 들고 첫인사는 '여보세요'가 아닌 '감사합니다. 마케팅팀 정유월입니다.' 와 같은 회사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교육 혹은 그에 준하는 전화받기 매뉴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교육이나 매뉴얼이 아직 나에게 오지 않았으므로 전화기는 휑한 책상을 제법 오피스 분위기로 바꿔주는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그 전화기에서 소리가 났다.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 전화받는 거 별거 아냐.'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고 고민만 계속됐다. 아직 우리 팀 사람들이 전화받는걸 제대로 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인턴 했던 경험을 살려서 능숙하게 받아버리면 또 어딘가 조금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멍청이처럼 '여보세요~'할 순 없다는 생각도 들고. 머릿속의 수많은 세포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전화 벨소리는 왜 이리 큰 건지 애꿎은 전화기도 탓해보고, 전화선을 몰래 뽑아버릴까 머리도 써봤다. 선배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벨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봐 과장님이 전화가 왔음을 친절히 알려줬다. 전화기 한 번 보고, 과장님 한 번 보고. 다시 전화기, 또 과장님 얼굴로 시선이 움직였다. 과장님에게 들린 벨소리는 사실 나에겐 더 크게 들린다. 점차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고, 몇몇 선배들은 이 상황이 내가 벨소리를 듣지 못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웃기 시작했다.

 

"이거... 받아요?"

나의 첫마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전화가 왔으면 받는 게 당연한 건데,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을까.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요. 저는 전화가 울리면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는 신입사원이에요. 아 사실 그냥 받으면 되는데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상황에 가만히 보고만 계실 거예요? 몇몇 분들 웃고 계신 거 보니 신입사원이 전화받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의 당황스러움은 이쯤 표현했으니 이제 제발 대신 해결 좀 해주세요. 저 지금 엄청 당황했어요! 아 그러니까 제 말은...! 대신 좀 빨리 받아주세요!!!


"당연히 받아야지! 계속 울리잖아, 얼른 받아."

대신 받아달라는 내면의 외침을 외면하고, 선배들은 전화받기를 지시했다. 갑자기 관중 앞에 서있는 것처럼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저 어리바리한 신입이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빨리 갑작스러운 회의가 잡혀 다들 자리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으면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크게 한숨 들이마시고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일단 이 전화 벨소리를 멈춰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삐-삐-삐---

전화 건 상대의 인내심이 바닥나버렸다. 반대로 내 마음속에서는 평화가 찾아들었다.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줘서 고맙다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이, 내 주위 선배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월아 왜 전화를 못 받아~(웃음)"

"아 옛날 생각나네~~ 오랜만에 웃었다"

"전화받는 법 알려줄 생각은 못했네요~"

팀원들의 가볍고 즐거운 농담 속에서 얼굴이 너무 뜨거워져서 같이 웃지 못했다. 잔뜩 웅크린 채 모니터로 시선을 가리고 반쯤 나가버린 정신을 주섬주섬 챙겼다.

"제 입사동기들도 신입 때는 전화받는 게 어려웠대요~쉽지 않은 일이에요."

농담 속에서 내 입장을 대변해준 3년 차 대리님의 한 마디가 너무나 고마웠다.


신입의 전화받기는 늘 어렵다.

입사 전엔 비밀번호 찾기 용으로만 쓰던 메일은 회사에선 진가를 발휘한다. 수많은 메일의 장점을 나열하여, 빨리 전화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메일을 쓰고 싶은 욕구가 넘쳐난다. 누군가 나의 전화 내용을 듣는다는 것은 항상 부담되는 일이다. 긴장 때문인지 볼륨을 아무리 키워봐도 전화 내용이 잘 안 들릴 때도 있고, 옆자리 과장님이 통화내용을 들을까 봐 전화업무를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몰래 복도에 나가서 개인폰으로 전화를 건 적도 있다. 이렇게 공포 그 자체였던 전화받기는 시간이 쌓이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편해졌는지 딱 꼽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주변을 신경 쓰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를 건 사람의 용건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웃으면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비슷한 전화 공포를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 제일 먼저 우리가 해결했던 전화와의 갈등을 이겨낸 사실을 기뻐해 보자. 생각해보니, 저번 주에는 빠르게 처리하고 싶은 일이 생겨 바로 수화기를 들었는데, 이 얼마나 용감한 모습인가.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라는 너스레도 떨 수 있어졌다니! 귀와 어깨 사이에 전화기를 끼고 간단한 다른 일까지 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회사생활 만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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