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자의 배는 무슨 소원탑인가

그만 좀 만져라

by 김옥진

이제 18주. 5개월 차에 들어섰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시기는 이제 슬 지나가고. 1만보까지는 대충 버틸 수 있는 컨디션이 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안다. 1만보를 넘기면 힘들어져서.


여하튼. 전에는 누우면 요기쯤인가? 싶어서 조심조심 만져야 겨우 느껴지던 아기집이 누워도 동그랗게 뽈록 올라왔다. 거기에 원래 내 배가 합해지니 가히 임신부의 배임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달까?


배가 나온다는 건 생각보다 꽤 불편한 일이라.


일단. 엎드려 잘 수가 없다. 배가 눌리니까. 좀 오래된 지하철을 타면 버스카드를 찍고도 바 같은걸 돌려야 들어가거나 나올 수 있는데 전 같음 대충 배로 밀 것을 굳이 손으로 따로 밀어줘야 한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도 모르게 배를 갑싸쥐게 되고 부딪힐까 봐 걱정한다.


그리고.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사람들이 불쑥 만지는 것.


배가 나온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시기였던 한 9주쯤이었던 거 같은데 동갑인 회사 동료(여)가 "배 좀 나왔어?"라고 말하며 내 배에 손을 얹은 것. 난 너무 당황했는데 처음 당하는 일인지라 어버버하고 넘어갔는데 그 로부터 한 한 달쯤 지났을 때 또 다른 회사 사람(여)이 역시 "배 좀 나왔어?"라고 물으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배를 만졌다. 그냥 얹어지는 정도도 아니고 진짜 손길이 느껴지는 상황이어서 "어.. 저 배는 좀..."이라고 했는데.


지난주. 급기야. 10살이나 어린 후배가 "배는 좀 나오셨어요?"라고 물으며 내 배를 만졌다. 배 만지는 거 아니야.라고 말해봤지만 이미 그건 의미가 없다. 내 배는 이미 만짐 당했고. 미친 듯 기분이 나쁜데 설명할 길이 없다.


아. 아. 아. 아. 아. 아.


왜. 내 배가 그렇게 궁금하냐. 그냥 말로 물어보면 안 되나? 굳이 배 나온 거 표 안나는 옷을 잘 챙겨 입고 다닌 내가 죄인 거냐? 임신한 여자의 배를 만지면 로또 1등이라도 당첨을 한데? 하긴. 후배 하나가 배에 손을 얹으며 '이모야'를 시전 하기도 했지....


왜! 왜! 왜! 누가 니 배 만지면 너 좋아? 싫잖아! 복근 자랑을 한데도 보여주는 거랑 만지는 건 다른 건데!!! 왜 자꾸 만져대냐고!!!! 왜!!!! 제발!!!!!


논리적으로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평범한 상황에서 여자끼리라도 아무리 격하게 친해도. 함부로 배를 만지지 않는다. 왜? 여자들에게 뱃살은 그런 존재다. 남자가 배를 만지는 건 거의 천인공노할 노릇인 거고.


지금 이 시점에서 당당하게 내 배를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내 남편뿐이고. 굳이 하나 더 하자면 대충 우리 엄마 정도?


평상시에는 누군가의 배를 만지는 것이 격한 실례임이 그렇게 당연한 일이거늘. 왜 때문에 임신한 여자의 배는 그렇게 쉽게 만져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나는 탑돌이용 소원탑도 아니고, 내 배는 만지면 복이 들어오는 부적도 아니다.


임신과 동시에 가장 큰 공포 중 하나는 길거리를 지나가거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 태어나 처음 보는 할머니나 아줌마가 배를 쓰다듬는다는 거였는데. 쌩판 남은 욕이라도 하지. 아.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세상 교양 있으신 분들이 임신과 동시에 날 모든 걸 허해야 하는 존재로 인지하고 있는 느낌.


아이를 낳으면 그땐 내 배가 아니라 아이를 만져댄다는, 그건 해외에 나가도 한국인 종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암을 했다.


썡판 남이 내 임신을 기특해하는 것도 기분 나쁘고. 내 자식을 이뻐하는 건 살짝 곁눈 짓 정도선에서 멈출 일이다. 가까운 사이래도 배를 만지는 건 니들 호기심을 위해 내 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력하게 말하고 싶은데, 이미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는 그런 말을 할 여력조차 없어진달까?


제발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남의 배 함부로 만지지 마라...

울 엄마도 조심하느라 안 만지는 배다...

당신의 손길에 움찔하고 놀라는 게 아이한테 고스란히 전해진단 말이다.. 이 망할 인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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