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
지음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지음(知音)이란 옛날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를 연주하던 백아와 그의 연주를 잘 들어주던 친구 종자기와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면 종자기는 옆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그의 연주에 집중하며 백아의 연주에 담긴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었습니다.
“깊은 계곡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는군.”
“음악이 어두운 걸 보니, 자네 마음에 걱정이 있군그래.”
그의 말을 들은 백아는 더욱 신명 나게 연주하며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들어줄 사람은 오직 종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종자기가 죽게 되고 그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백아는 눈물을 흘리며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을 가리켜 ‘소리를 듣고 마음을 아는 친구’라는 뜻으로 ‘지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감정을 말로 전달하는 게 아직은 조금 서툰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의 소리만을 듣고 제가 어떤 마음인지 속을 알아차려주는 지음들이 곁에 있습니다. 저의 지음들 중에는 저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내온 친구들과 그리고 자유로운 대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내온 친구들이 지금은 서로의 지음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것 등 오랜 시간을 함께 관계를 맺어왔기에 서로의 진짜 소리들이 어느 순간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 만났기에 지금은 서로 간의 문화적인 취향과 좋아하는 취미는 다르지만 같은 것을 보면 동일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고 또 같은 것을 보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시야와 결이 비슷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웃을 때면 옆에서 큰 소리로 웃고 있었던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만날 때면 그 시절로 시간이 돌아가 오롯이 우리들의 웃음소리만 흘러나옵니다.
이제는 서로가 사는 지역도, 직업도 다르기에 함께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종종 연락할 때만큼은 그간의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작은 단어하나 표현하나로 친구의 기쁨과 힘듦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지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관계를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편해졌다고 해서 서로에게 무례해지는 것이 아닌 누구보다도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더 배려하고 감싸주는 폭이 넓어진 듯합니다. 지음은 단순히 관계를 가진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닌 이러한 태도로 함께 계속해서 노력했을 때 진정한 서로의 지음이 되어 더 깊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만난 것이 참 감사하고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행운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언니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니들은 제 목소리를 먼저 알아차려 주었습니다. 눈빛이 흔들리는 나에게 건넨 진심 어린 따뜻한 말과 행동에 저 또한 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용기 내 진심을 내비치고 진심 어린 도움을 줬을 때 그 마음에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서로의 진심이 닿은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지음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삶이란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창 밖에 다양한 장면들이 보이게 됩니다. 어느 순간은 터널을 지나 깜깜한 바깥세상만 보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조금은 황폐한 모습의 장면을 지나가기도 합니다. 혼자 기차를 타고 긴 여행을 지속하다 보면 내 감정에 휩싸여 나만의 시야로 어두운 곳만 보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지음이 옆에서 "누구야 저 하늘을 봐봐" "누구야 저 바람 속 흔들리는 나무를 봐봐"라고 하며 시야를 달리 만들어 주며 나만의 감정 속에 빠져있던 저의 시선을 자연스레 돌려줍니다. 그리고 터널을 지날 때면 귓가에 재미난 이야기,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함께 들으며 눈을 감고 서로의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인생은 힘든 장면 속 지음 들로 인해 한없이 따뜻한 위로를 받고 또 나 또한 어느 순간의 누군가의 지음이 되어주며 함께 버티고 살아가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함께 진심을 나누는 지음이 되어 내일도 따뜻하게 위로를 주고받으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