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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Jun 17. 2019

바람난 아내를 위한 ‘미역국’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추구하는 행위가 공존하는 삶

특별한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은 엄마와 자식이 한 몸에서 분리된 날을 공유하는 음식이다. 모체 분리 역사의 표식인 셈이다. 그래서 제삼자가 누군가의 생일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진 않는다. 자식의 생일을 기리기 위해 엄마가 끓여주거나, 아니면 엄마 스스로 끓일 때도 있다.

나는 요리를 하면서 어느덧 아내와 장모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게 됐다. 장인어른의 경우 배우자인 장모님의 몫이지만, 간혹 사위인 내가 끓일 때도 있다. 아내와 장모님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넣지 않는다. 홍합이나 들깨가루 혹은 그냥 멸치육수로 끓이곤 한다.

아내의 생일이 가을인데, 겨울 어느 날 미역국을 끓여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요청은 잘 없는 편이지만, 우리 집은 미역국을 자주 끓여먹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미역은 요오드가 풍부하고 식이섬유가 뛰어나 자주 섭취하면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미끈거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아내의 요청에 따라 고소한 들깨가루로 미역국을 끓이기로 하고 밤에 미역을 물에 담갔다. 나는 보통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한다. 우리 집은 반반이다. 장인어른과 나는 소고기, 아내와 장모님은 소고기 넣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장모님은 미역국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여느 때처럼 미역국을 준비했다. 물에 충분히 불린 미역은 살짝 문질러 씻어 체에 물기를 빼준다. 미역은 자연산 돌미역이 좋다. 그렇다고 양식이라 해서 영양 섭취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돌미역은 탄력이 뛰어나고 두터워 푹 끓일수록 풍미가 좋다.




멸치육수를 준비했다. 미역이 주재료라 다시마까지 육수를 낼 필요는 없다. 멸치육수는 20분이면 적당하다. 강불로 끓을 때 약불에 놓고 우려내면 된다. 음식은 주재료의 맛을 살리는 게 포인트다. 육수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시간이 없다면 맹물로 끓여도 괜찮다.

냄비에 들기름을 둘러 미역을 충분히 볶아준다. 이때 다진마늘을 미리 넣고 볶아도 좋다. 마늘향을 입히기 쉽지 않은 성질의 미역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밸 것이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주재료를 한번 볶아주는 작업은 요긴하다. 육수를 붓고 끓일 때 더 잘 우려낼 수 있고, 요리시간도 단축된다.

충분히 볶은 후 육수를 붓고 푹 끓여준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하다. 대파도 넣을 필요가 없다. 대파의 끈적한 성분인 알긴산이 미역에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중복될 뿐만 아니라 더 끈적일 수 있다. 양파도 마찬가지다. 그저 자연 그대로 우러난 맛으로도 충분하다.

간은 경험상 액젓으로 하면 더욱 풍미가 좋다. 보통 간은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하게 된다. 김치나 호박 같은 채소 요리에는 새우젓을 함께 쓰기도 한다. 액젓 중에서도 까나리와 멸치를 섞어서 쓰면 좋다. 어느 한쪽의 맛을 도드라지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풀고 한소끔 끓여 완성했다. 들깨가루와 어우러진 미역의 풍미도 괜찮은 조합이다. 그렇게 미역국이 준비되고 상차림이 만들어졌다. 아침은 늘 즐거운 시간이다. 하루 중 거의 확실하게 보장하는 집밥이기 때문이다. 점심과 저녁은 밖에서 먹기 일쑤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다. 미역국이 그렇게 먹고 싶었냐고. 기억하건대 살면서 생일이 아니고는 미역국만큼은 아내가 요청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본인 생일에도 요구하지 않아 의례 미역국을 챙겼던 터여서, 이날의 요청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내가 대답했다.



오늘은 ‘강다니엘’ 생일이야


아내는 한때 국카스텐 하현우에 빠졌었다. 나도 그를 좋아했다. 복면가왕의 최고 가수이기도 했고, 노래에 흠뻑 빠질 만큼 노래를 잘했다. 아내와 함께 국카스텐 공연을 찾기도 했다. 형광봉을 흔들면서 등골이 땀에 젖도록 뛰었다. 그렇게 아내는 젊은 남자에게 동화돼 갔다.

이제 주인공은 강다니엘로 바뀌어 있었다. 어린 남자였다. 워너원이 아이돌을 휩쓴 건 알았지만, 그렇게 한 아이에게 빠져있을 줄은 몰랐다. 순간 자괴감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생일상 ‘덕질’이었던 셈이다. 아내의 책상에는 강다니엘 사진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지금은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내가 건강하게 좋아하기를 바랄 뿐이다. tv에 몰입하고, 웹 동영상을 모으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 시간이 없어져 버렸다. 아내가 병원 근무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에, 덕질은 결국 걱정일 수밖에 없다.

그날 나는 평소대로 인스타그램에 집밥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고했다. 댓글은 난리가 났다. 인친들이 모두 빵 터졌다고 즐거워했다. 뜻밖의 하루가 추억을 만들었다. 아내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좋아 죽을 것처럼 하는 행위들이, 우리 부부의 삶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루였다.


※ 요리 음식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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