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

후회하게 될까, 하는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 

호모 리그렉투스 


평일 오후 3시 반이면 어김없이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블록을 쌓으며 재밌게 활동했습니다. 집중력이 좋아 끝까지 블록 쌓기를 완성했습니다"


조카의 어린이집 생활이 담긴 <키즈노트> 알림장이 도착했다. 오늘 하루, 조카의 기분, 건강, 체온, 식사여부, 수면시간, 배변상태까지 체크한 표와 조카의 사진 그리고 간단한 코멘트를 보내 준다. 나의 조카의 경우 음악시간에 춤을 췄다. 편식하지 않았다. 강아지를 보고 멈머라고 했다. 똥이 마려울 때 선생님께 알려주었다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조카의 식사여부는 항상 '많이' 다. 미쉐린 팔뚝을 가졌다.

이 자그마한 생명체가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 걸음을 걷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조카가 대견하다. 대견한 만큼 나의 사랑은 무한하게 커진다. 


만약 어떤 못된 사람이 조카와 나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조카를 살리겠다. 세상에서 죽는게 가장 무섭지만 조카를 위해 나의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면 난 기꺼이 그러겠다. 


우리 부모님 또한 조카가 집에 오는 날이면 값비싼 딸기랑 망고도 주저 없이 사신다. 조카가 먹을 음식을 살 땐 가격표를 먼저 보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도 엄마 아빠가 이렇게 행복했을까? 가끔 부러움이 들 정도로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조카를 낳은 오빠는 엄마, 아빠께 평생의 효도를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부모님집 중문에는 지난번 조카가 놀러 왔을 때 붙여놓은 스티커가 아직도 남아있다. 손자가 있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 손자가 없는 순간에도 손자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 


나는 아직 미혼. 그리고 아직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왜 일까? 이렇게 귀여운 조카를 보고도 아직 임신, 출산, 육아를 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생기지 않는다. 아주 먼 훗날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까 하는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출생률이 0.8% 라는 기사가 와닿지 않을 만큼 내 주변의 회사 동료, 친척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또는 두명씩 낳았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종말이 논의되고, 소수자, 약자에 대한 혐오 표출이 일상화된 시대,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경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은 거꾸로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나를 마중 나온 조카

1. 창조 본능을 실현하고 싶어서.  


삶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아티스트. 평생 동안 많은 공을 들여, '나'라는 작품을 만든다. 이것은 전방위 행위예술. 모두 다른 걸음걸이는 춤을 추는 듯하고, 고유한 말투는 노랫소리 같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점심은 먹었어? 라든가 그동안 잘 지냈어? 라든가 꺄야~! 라고 소리친다던가 무수히 많은 선택지에서 우리는 나만의 대사를 읊는다. 우리는 스스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며 크리에이티브를 뽐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창조의 과정에서 가장 끝판왕은 무엇일까  바로 나의 유전자를 가진 나와 유사한 인간을 탄생 시키 것. 내가 만든 나와 가장 닮은 인간. 세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먹이고 재우고 키워 하나의 인간으로 만드는 과정. 그 어떤 예술가보다 위대한 창작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너른 벌판에서 더 행복해진 조카. 넘어져도 울지 않는 씩씩한 아기이다. 

2. 그냥 


우리가 배운 생애주기에 따라 학교를 다니다 취업을 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행하는 사람들. 그냥이라고 이유를 적었지만 진짜로 그냥은 아닐 것이다.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을 일구고 싶은 감정은 당연스럽고, 언제나 내편이 되는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가족을 처음 만들 때의 기대겠지) 가족이라는 존재를 만든 다는 것 자체로 위안이 되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 엄마, 아빠, 자녀 (딸, 아들 2명이면 가장 베스트)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것도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오랜 고민의 시간을 보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응당 그래야 한다 라는 명제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도 많겠지. 그리고 사실 전자보다는 후자인 경우에 좀 더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머리를 쓰고 계산기를 두들겨 보아도 합리적으로 이게 옳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실행을 해야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결혼과 육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물한 원피스를 입고 신이 났다. 이 맛에 옷을 사지요.

3. 어느 순간 지겨워서 


내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면서 혼자 사는 것이 흔치 않은 사례라 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는(?) 도전적인 자세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일생을 놓고 보면 결혼과 임신, 출산이 오히려 새로운 변화이고 하나의 도전이다. 


어디선가 들었다. 혼자 노는게 지겨워 연애를 하다고, 연애가 지겨워지면 결혼을 하고, 둘만 알콩달콩 보내는 신혼 생활이 끝나면 이것마저 지겨워져 아이를 낳는다고. 나는 여전히 나 혼자 사는 삶이 어렵고 지난하다. 배우고 싶은건 산더미고 이루고 싶은 일들도 많다.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벌써 8년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으로 나아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진짜 나는 지금이 좋은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는 다음 스탭이 두려운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생각하니 사람들은 나 빼고 다 똑똑한 거 같다. 다들 똑똑해서 현재의 삶에 금세 익숙해지고 지루함도 느끼는 거겠지. 어려운 일은 익숙해지지도 지루함도 느끼기 어려우니. 

조카의 장난감. 요즘 장난감은 사실감이 넘친다. 그런데 꽃게와 가재는 익힌 상태의 모습.

4. 유전적 증거를 남기기 위해 


조카를 보면 정말 신기하다. 어느 날은 오빠를 닮았고, 어느 날은 언니를 닮았다. 유전자라는 게 어떻게 이렇게 조합되어 나타날 수 있는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엄마를 닮아가는 나의 얼굴과 버리고 싶은 아빠의 성격이 나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 징글징글한 유전자! 싶다가도 조카의 얼굴에 묘하게 비치는 우리 가족의 얼굴이 더 사랑스럽고 귀엽게 만들어 준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엔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근연도 (Degree of Relatedness)'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간단히 말해 나와 얼마나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하는지를 계산하는 지표다. 내가 다른 아기들보다 조카를 더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건 이 '근연도'가 높기 때문이고, 그래야 나는 나와 공유된 유전자를 보다 더 잘 보존할 수 있다. 익숙함과 안정감이 주는 행복이 여기 있나 보다.


그래서 나. 행복을 잡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적어보았지만 아마 만 명의 사람들의 만 명의 이유로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거치겠지. 분명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건 (딱히 불행하지도 않지만)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갖지 않아서는 아닌데. 요즘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조카라서 그런지 아이가 없기 때문에 불행한 걸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의 널뛰기를 해보았다. 


이유를 적어서 무엇할까 싶다가도 이 중 나를 이끄는 이유가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긴 한다. 5년 뒤 나의 미래를 그려본다. (주변 언니들 말로는 40살이 되기 전에 결혼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그땐 무언가 달라져 있을까? 아님 혼자 살겠다는 마음이 더 깊어져 있을까? 


이전 07화 병원에 늦게 가면 생기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