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이 공간은 한 뼘의 빛이 드는 창이 하나 있다. 창은 북향이다. 아침에 해가 들어오는 시간이 짧아, 식물들은 볕을 따라 해바라기하다가 거북목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나마 화분을 돌려가며 목을 잡아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유일한 위로다.
창가는 좁고 식물은 많다. 그렇다보니 창가는 언제나 새로 온 식물들의 차지일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들인 알로카시아 핑크드래곤Alocasia sp. “pink dragon”도 창가에서 ‘신입내기’의 특권을 누리는 중이다. 이름대로 핑크빛 줄기 위로 용의 거친 등껍질 같은 잎을 펴내는 매력적인 식물이다. 그러나 이 식물도 북향의 빛을 받으며 어느새 거북목이 되어가고 있다.
식물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 식물이 원하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 7살 아들래미에게 물었더니 “식물이 원하는 자리”라고 말한다. 당연해 보이는 이 답이 오늘따라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종종 내가 원하는 자리에 식물이 놓인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무슨 요망한 일인지. ‘세상의 불가사의한 일은 모두 요괴의 짓’이라는 애니메이션 <요괴워치>를 좋아하는 아들래미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건 요괴의 짓이 분명해!”
‘저 자리에 식물이 있으면 안성맞춤인데?’ 하는 생각. 요괴가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바꿔버리는 순간이다. 빈 자리를 보면 식물을 올려두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식물 키우기의 FAQ(자주 하는 질문)쯤 될 것이다.
Q. 식물은 인테리어로 훌륭한 소품 아닌가요? 플랜츠+인테리어, 플랜테리어라는 말도 있잖아요? 왜 내가 놓고 싶은 자리에 놓으면 안 되지요?
A. 네. 식물은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에요.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식물을 놓고 싶다면 그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식물을 갖다놓으세요.
수학공식 같은 ‘정답’이지만 세상 일이란 숫자만 대입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식물도 잎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잘 자란다. 나의 창가는 사각지대에 가깝다보니 식물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형광등 아래에서 잘 자라는 스킨답서스만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핑크드래곤은 내가 놓고 싶은 자리에 올려놓고 싶은 식물 중 하나였다. 큰맘 먹고 내 자리에서 잘 보이는 선반 위에 핑크드래곤을 올려보았다. 화분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본다.
‘이런, 이런. 역시 너는 존재감뿜뿜~이구나. 여태 창가 구석탱이에서 뭐하고 있었니?’
창가가 ‘구석탱이’로 전락하는 순간이라니.
햇빛만은 못하지만 식물등도 달아준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며 흡족해하고 있자니 한편에는 불편한 마음이 들어앉아 있다. 선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금세라도 이파리를 떨굴 것처럼 퍼렇게 질려 있는 것 같다. 겨우 자리 잡고 잘 자라는 식물의 자리를 옮기는 일은, 꾸역꾸역 내 욕심만 채워넣는 것인지 모르겠다.
핑크드래곤의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고 다시 원래 있던 창가에 올려놓기로 했다.
‘거북목이 안 되도록 내가 돌려줄게. 내가 잘 볼 순 없지만, 네가 잘 자라는 그곳이 너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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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카시아 Alocasia
알로카시아는 햇빛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하는 식물이다. 흙은 일반 원예용 상토가 물빠짐도 좋고 보습력도 좋다. 햇빛을 좋아하지만 직광보다는 베란다창을 거치고 들어오는 빛이면 충분하다. 여름엔 저면관수로 화분 안에 물이 충분히 스미도록 해주자. 4~6월까진 겉흙이 마르면 흠뻑 주고, 여름엔 흙이 마르지 않게 매일 줘도 좋다. 가을~겨울까지는 물주기를 제한하여 흙을 건조하게 관리해야 한다. 여름에는 22~28도가 적당하며, 겨울에는 18~22도를 유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