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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Nov 12. 2018

한강이 보여준 다른 세계

피 흐르는 눈 3

                                         한강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임영주 작가의 그림
















부서질 듯 아팠어도 난 살아있다. 난 아직 살아있어. 차라리 꺼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던 심장은 멀쩡히, 1분에 70회 이상의 움직임을 통해 피를 내보낸다. 거울을 보고 내가 조각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지 조각난 거울이었어. 단단한 아픔에 비해 내가 너무 물렁해서 눌려서 풍선처럼 부풀다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나도 생각보다 단단했나 보다. 눈이 온다. 버드나무에도 눈이 쌓이고, 내 마음에도 눈이 쌓이겠지. 하지만 내 마음에 쌓인 눈은 강가에 내리는 눈처럼 곧바로 녹아버릴 것이다. 쌓일 틈도 없이 스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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