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하철 승강장 사이로 내 핸드폰이?

희망과 절망의 쌍곡선

by 재원

눈을 떠보니 내가 내릴 역이었다. 허겁지겁 무릎 위에 있던 가방을 챙기면서 달려 나가는데 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핸드폰이 떨어졌다.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가방 위에 올려두었던걸 잊었다. 핸드폰은 내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관성의 힘을 받아 컬링 스톤처럼 앞으로 쭈욱 미끄러졌다. 그리고는 열차와 승강장 사이로 쏙 빠져버렸다.


‘?!!!’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잠깐 파악이 안 되었다. 주위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왠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일단, 의연하게 지하철에서 내렸다. 이 정도 일에는 놀라지 않는 담대한 사람처럼.

지하철이 떠나고 난 뒤에 핸드폰의 행방을 찾아보려는데, 이런... 스크린 도어 때문에 승강장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늦은 밤이라 아래는 그저 깜깜할 뿐.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역무원 분과의 비상통화장치(SOS)가 있었고, 사정을 설명하니 일단 올라오라고 하신다. 스크린 도어를 열고 아래에 내려가서 핸드폰을 찾아서 올라오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올라갔다.


술에 취한 사람의 판단력이란...


당연히 그건 안될 일이었다. 지하철 운행 중에는 위험해서 내려갈 수 없고 막차가 끊긴 후에 내려가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찾으면 연락을 준다며 핸드폰 번호를 적어놓고 가라는 공익요원의 말에 연락 주면 찾은 폰이 울릴 거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는 와중, 저쪽에서 남자 역무원 한분이 엄청나게 긴 집게 같은걸 들고 오시면서 지금 작업을 해보자고 하셨다.

긴 집게를 든 역무원분은 마치 관우처럼 늠름해 보였고, 갑자기 희망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핸드폰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리 역은 선로와 승강장의 높이가 꽤 높아서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히 앞면이 위로 보였다. 액정 쪽으로 떨어지진 않은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집게를 이용해서 잡아보려 했지만, 자꾸 미끄러져서 결국 막차가 끊긴 후에 작업을 해주시기로 하셨다.


다음날 아침 눈 뜨자마자 박카스 한 박스를 사들고 역으로 달려갔다. 핸드폰은 찾을 수 있었지만, 무사하진 못했다. 한쪽 모서리의 강화유리가 깨졌고 실금 여러 개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액정은 멀쩡해 보였다. 유리만 갈면 저렴하게 수리가 되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전원을 켜는데 S펜이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떨어지는 충격으로 S펜이 빠질 수 있나? 수리비가 좀 덜 저렴해졌다.


그래도 왠지 잘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회로를 돌리며 AS센터에 방문했다. 막연한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액정이 멀쩡하다 해도 센터에서는 액정 전체를 갈아야 하고, 강화유리만 교체하려면 일주일 정도 저 멀리 이송 보내야 한다고 했다. 외국에 가지 않는 이상 일주일 동안 핸드폰을 안 쓸 수가 없고, 외국에 갈 일도 없으니 액정 전체를 갈아야 하는데... 수리비용이 사악했다. S펜까지 합치면 거의 30만 원 돈인데, 문제는 내가 이 폰을 한 달 전쯤 중고로 38만 원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고민하다가 S펜만 사서 우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아내가 강화 필름을 사라고 링크를 보내줬을 때 사서 붙일걸 하는 후회를 하였는데, 이 사실을 얘기하면 분명히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며 자기 말 좀 잘 들으라는 아이톨쥬가 나올 게 분명해서 얘기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쓰니 결국 구박당할 생각에 두 배로 우울해진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keyword
이전 05화버리지 못하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