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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유이 Oct 30. 2023

봉지과자: 한 번 오픈하면 돌이킬 수 없지요.

타인의 호의를 받아본 기억이 적은 사람은

작은 호의에도 어쩔 줄 모르죠.


나를 보며 짓는 미소 하나

다정한 손짓 하나에

철옹성처럼 단단했던 마음의 벽은

아침햇살에 시나브로 사라지는

안개처럼 되어버려요.


어린 시절,

전 저한테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회색빛 과거를 끄집어내고

내면의 상처를 뒤집어 까발려서 보여주곤 했어요.


‘난 이런 암울한 과거가 있어, 괜찮아?’
‘난 이런 경험도 있다고. 감당할 수 있겠어?
난 이런 이야기도 하고 싶을 정도로
너와 친해지고 싶어.
나를 밀어낼 거면 미리 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어떤 이는 가만히 들어주면서 공감해 주기도

어떤 이는 저한테 그런 이야기는

좀 나눠서 하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어요.

어떤 이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어느새 연락이 끊기기도 했어요.

일명 저를 손절하는 거지요.


 



사실 제가 관계의 초반에

제 이야기를 꺼내게 된 계기가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꽤 오래 가까워진 친구가 있어서

할머니와 살고, 부모님이 이혼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다음 날부터 그 친구가 저를 밀어내기 시작했요.

이동수업도 같이 안 가고,

등하교도 같이 했는데

학교 정문 앞엔 아무도 없었지요.


눈치 없던 저는 계속 그 애 주변에

다른 애가 없을 때를 기다렸고,

몇 달 뒤 다른 애한테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들렸지요.

제가 가까워지는 게 부담스럽고 싫다고.


상대방에게 거부당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그리 좋지 않아요.


그럼에도 지금은 그 사람의 ‘그 당시’ 그릇이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웠나 보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지 하고, 수긍하지요.


또 한편으로는

제가 타인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않았나.

급작스럽게 행동하지 않았나 돌아봐요.

조금 더 관계가 원숙해졌을 때,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나하나

나를 알려주는 게 좋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은 아니에요.

부모의 이혼, 학창 시절 따돌림이나

제가 앓던 병에 관한 이야기,

가난 같은 건 제가 선택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피하는 거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 기억도

‘하나의 사실로서 과거’로 넘기려고 해요.




마트에 과자를 사러 가면

다양한 과자들이 열과 오를

맞춰서 진열되어 있어요.


어린 시절엔 박스에 담긴 과자들은 너무 비쌌어요.

매대를 돌아 봉지 과자 쪽을 몇 바퀴 돌면서

주머니에 쥔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걸 찾곤 했지요.


숨 가쁘게 뛰어와서 방구석에 앉아

두 손에 힘을 꽉 줘서 윗부분을 잡아 뜯거나

그것도 안되면 옆부분을 잡아 뜯으면

바삭바삭한 과자들이 제 시야를 가득 채웠어요.


손가락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기름기가 잔뜩 묻고

때때로 입천장이 까슬까슬해져도

먹는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어린 시절에는 두 봉지도 부족했는데

요즘에는 한 봉지도 다 못 먹고 남기기 일쑤예요.

그래서 대충 접어서 두고

나중에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보면요.

기름에 절여져 눅눅해지고

바삭한 맛은 온데간데없지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런 건가 싶어요.

한 번 내면의 이야기를

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것 같아요.


비싼 박스 과자처럼 종이 포장 안에

한 번 더 비닐 포장이 있는 두 겹이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봉지 과자 같아요.


한 번 뜯으면,

한 번 나를 오픈하면 다시 마음을 닫기란 어려워요.


그래서 저라는 사람이 눅눅해지지 않으려면

너무 나를 보여주기보단 중간중간에 동여 매고

나를 지키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좋다고 다 주지 말고 말하지 말자고 되뇌면서요.


그러나

아직도 제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타인의 순수한 호의란

여름날 붕어빵 파는 곳을 찾으려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럼에도 한 가지 희망은

전 눅눅한 과자도 꽤 잘 먹는다는 사실이에요.


누군가가 제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준다면 전 저와 깊은 사이가

되고 싶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럼 이 넓은 세상 어딘가

서로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꽤 오랜 시간을 같이 공유하면서도

눅눅해지면 눅눅한 대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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