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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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주 먼 옛날.
하늘과 가까운 곳에 거대한 사모시르 산이 있었어요.
그 산 아래에는 맑고 깊은 또바 호수가 있었지요.
또바는 사모시르를 비추며 늘 그를 흐뭇하게 바라봤어요.
푸른 숲과 수많은 생명을 품은 사모시르의 울창한 패기와 열정이
또바를 언제나 설레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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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무시무시한 마녀가 나타났어요.
마녀는 못된 마법으로 나무를 시들게 하고, 동물들을 병들게 했어요.
그러자 사모시르는 마녀를 산에서 쫓아냈어요.
"감히 나를 쫓아내? 내 마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마!"
마녀는 사모시르에게 끔찍한 저주를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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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사모시르의 몸이 점점 뜨거워졌어요.
산의 땅은 갈라지고, 물은 점점 말라갔어요.
이 저주를 풀 방법은 단 하나,
사모시르가 물 위의 섬이 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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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사모시르는 메말라 갔어요.
푸르던 숲은 사라지고, 동물들도 모두 떠나버렸어요.
하지만 또바는 떠나지 않았어요.
잔잔한 물결로 사모시르를 쓰다듬으며 위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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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는 하늘을 향해 기도했어요.
"사모시르를 도와주세요.
이 마법을 풀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그때, 하늘이 대답했어요.
“세상에는 마법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단다."
"그게 어떤 힘이죠?"
하지만 또바는 알지 못했어요.
그저 사모시르 곁을 묵묵히 지킬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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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사모시르 안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어요.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붉게 물들었어요.
산이 떨리더니 타오르는 용암이 솟구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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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시르가 힘겹게 외쳤어요
"너도 어서 떠나!"
하지만 또바는 떠나지 않았어요.
호수가 다 마를 것 같은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또바는 사모시르를 감싸 안았어요.
"펑! 우르르 쾅!
커다란 폭발과 함께 땅이 흔들리고 사모시르가 무너졌어요.
그리고 온 세상이 깜깜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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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또바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보았어요.
사모시르 산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커다란 섬이 되어 물 위에 떠 있었어요.
"어떻게 마법을..."
사모시르가 말했어요.
"네 모습을 봐, 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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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는 깜짝 놀랐어요.
자신이 바다처럼 거대한 호수로 변해 있었어요.
사모시르가 폭발하고 세상이 흔들릴 때,
또바의 바닥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올라 거대한 호수가 되었어요.
그래서 사모시르는 산이 아니라 섬이 되었던 거예요.
마녀의 저주는 깨졌어요.
"네가 나를 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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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높은 지역에
끝없이 펼쳐진 호수와 그 한가운데 우뚝 선 섬.
사모시르 섬을 품에 안은 또바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이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요.
이 놀라운 풍경 속에 마법 같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걸, 누가 알까요?
또바가 건네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면, 큰 행운이겠죠.
"세상에는 마법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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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 호수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호수 한가운데는 싱가포르만 한 크기의 사모시르섬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곳을 다녀와서 만든 창작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