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9
이 이야기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난초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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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부부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서로를 아끼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너무나 가난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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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날마다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결국, 가슴 아픈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딸을 부잣집에 보내기로 한 거예요.
"여기서 굶는 것보다는...
그 집에 가면 밥이라도 먹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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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부잣집으로 떠나는 날,
어머니는 딸을 꼭 끌어안았어요.
어머니 품에서는 따뜻하고 고운 냄새가 났어요.
"엄마, 꼭 다시 돌아올게요.
내가 크면 엄마를 꼭 만나러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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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딸은 부잣집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나날이 이어졌어요.
부잣집 주인은 무섭고 거친 사람이었어요.
딸을 종처럼 부려먹었고, 실수라도 하면 소리를 지르고 때렸어요.
하루 일을 마치면 온몸이 파랗게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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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 퍼졌고, 어머니 귀에도 전해졌어요.
어머니는 걱정과 슬픔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결국 병이 들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마음을 헤아려,
딸이 있는 부잣집 근처 산자락에 어머니를 조용히 묻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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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딸의 고생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딸은 깊은숨을 내쉬며 다짐했어요.
“이대로는 안 돼. 엄마를 만나러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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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달빛을 따라 몰래 집을 빠져나와 산속으로 달렸어요.
하지만 부잣집 주인은 금세 그 사실을 알고 종들에게 소리쳤어요.
“사냥개를 풀어! 당장 잡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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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들의 짖는 소리가 뒤따라오자,
딸은 더욱 깊은 산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엄마… 엄마…”
딸은 울면서 도망치다가 산비탈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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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사냥개들이 딸 근처까지 왔지만, 이상하게도 딸의 냄새를 맡지 못했어요.
산자락에서 나는 그 어떤 냄새가 마치 딸을 숨겨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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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딸은 코끝을 간질이는 익숙한 냄새에 눈을 떴어요.
"이건... 엄마 냄새야. 고운 엄마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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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붉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어요.
그리고 그 한가운데, 풀에 살짝 덮인 조그마한 무덤이 있었어요.
딸은 그 무덤이 어머니의 것임을 알 수 있었어요.
"여기 있었구나, 엄마가...
내가 여기로 올 줄, 어떻게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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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어머니 무덤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붉은 꽃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가 어머니 품처럼 딸을 가만히 안아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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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신의 흔적이라고 밖에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건강하고 안녕하시길.